본래의 모습 - 육조단경(六祖壇經)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혜능(慧能)선사는 "선이라고 생각지 않고 악이라고 생각지 않을 때 그대의 본래 모습은 어떤 것인가?"하고 혜명(慧明)에게 묻습니다.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인식이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의 혜명의 본래 모습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본래의 모습[本來面目]'이란 본래의 저ㅏ기, 참된 자기,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러니까 태어날 때 자기 안에 있던 순수산 인간성, 다시 말해서 자기 속에 있는 또 한 사람의 자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선가에서는 이를 '본지풍광(本地風光)', '주인공(主人公)', 또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본래면목'이라는 이는 이 세상을 상대적인 지식으로 사는 인테리가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무지함 때문에,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입장이 아닌 절대적인 경지에서 비롯되는 지혜를 재빨리 개발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혜능이 홍인(弘忍)선사의 법을 계승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의미의 무지를 그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미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 순결한 절대의 아름다움 곧 '본래면목'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송나라 때의 굉지(宏智)선사는 좌선을 계속하면 내면의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는 선법을 주장했습니다. "삼라만상은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토로한 것도 굉지선사입니다. 도원선사가 그 뜻을 이어 "봄에는 꽃, 여름에는 두견, 가을에는 달, 겨울에는 눈이 내려 서늘하도다"하고 노래한 것도 본내 모습을 표현한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유교에서도 "희로애락이 아직 발생하지 않음이 버로 중용(中鏞)"이라 하여,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고 있습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각각 대립적입니다. 그것이 발생하기 이전, 즉 부모가 아직 세상에 오기 이전의 공(空)이 바로 중용입니다. '본래의 모습'에 대한 유교적인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松原泰道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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