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가 없는 것이 풍류이다 - 벽암록(碧巖錄)
풍류가 없는 것 같지만 거기에 뭐라 말할 수 없는 풍류가 있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파격(破格)의 묘미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고정된 관념이나 형식만을 버린다고 풍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 함께 올바른 수행이 뒤따를 때 비로소 풍류가 되는 것입니다.
선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무궤도(無軌道)의 궤도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깊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야 가능한 상태입니다. 선승이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면서도 자제할 것은 자제하는 모습, 곧 풍류가 아닌 듯이 풍류를 즐기는 경지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풍류는 모방이 불가능ㅎㅂ니다.
다도(茶道)를 예로 들어봅시다. 다도에서 일부러 찌그러진 찻잔을 좋아하는 것은 차라리 나쁜 취미입니다. 정확하게 다도를 배우고 올바른 눈을 기른 다음에, 모양새가 좋지 않아 버려질 운명에 놓인 찻잔에서 참된 것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어야 비로소 풍류라 할 수 있습니다.
다도에서는 풍류의 도를 특히 '수기(數寄)'라고 부릅니다. 수기는 기수(奇數)를 거꾸로 한 말입니다. 기수는 나눠지지 않는 숫자로서 무한히 많습니다. 나눠지지 않는 데에 풍류가 있고 또 멋도 있습니다.
인생살이가 모두 자로 잰 듯 나눠지는 합리성(合理性)만으로 이뤄진다면 멋이 없을 것입니다. 다소 부조리하고 모순이 있기 때문에 풍류가 있는 것입니다. 근대 일본 선불교 연구의 대가였던 스즈키 다이세츠는 자기가 살고 있는 방의 이름을 '야풍류암(也風流庵)'이라 불렀습니다. 그의 풍모가 눈에 어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풍류를 찾아 풍류에 집착하면 오히려 풍류를 잃게 돕니다. 이른바 풍류라는 것에 구애되지 않는 데서 풍류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야(也)'는 바로 집착을 부정하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찾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은 더욱 큰 사랑의 힘입니다. 볼품없는 찻잔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랑의 힘이 작용해야 버린 찻잔도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찻잔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이런 멋과 풍류가 있어야 합니다.
松原泰道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
'선(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4. 無 - 없음 (0) | 2018.02.18 |
---|---|
[스크랩] 23. 關 - 좁은 문 (0) | 2018.02.18 |
[스크랩] 21. 銀椀裏盛雪 - 은그릇 속에 눈을 담는다 (0) | 2018.02.18 |
[스크랩] 20. 白馬入芦花 - 백마가 흰꽃으로 들어간다 (0) | 2018.02.11 |
[스크랩] 19. 實相無相 - 실상은 무상이다 (0) | 2018.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