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임제록 강설-감변(勘辨) 27. 28. 29. 30
27 왕상시를 점검하다
王常侍(왕상시)가 一日訪師(일일방사)하야 同師於僧堂前看(동사어승당전간)할새 乃問這一堂僧(내문자일당승)이 還看經?(환간경마)아 師云(사운), 不看經(불간경)이니라 侍云(시운), 還學禪?(환학선마)아 師云(사운), 不學禪(불학선)이니라 侍云(시운), 經又不看(경우불간)하며 禪又不學(선우불학)하고 畢竟作箇什?(필경작개십마)오 師云(사운), 總敎伊成佛作祖去(총교의성불작조거)니라 侍云(시운), 金屑雖貴(금설수귀)나 落眼成?(낙안성예)하니 又作?生(우자마생)고 師云(사운), 將爲?是箇俗漢(장위이시개속한)이로다
하루는 왕상시가 방문하여 승당 앞에서 임제스님을 뵙고 여쭈었다.
“이 승당에 계시는 스님들은 경을 보십니까?”
“경을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을 배우십니까?”
“선도 배우지 않습니다.”
“경도 보지 않고 선도 배우지 않는다면 결국 무얼 하십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게 합니다.”
“금가루가 비록 귀하기는 하나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대를 일개 속인으로만 여겼느니라.”
(강의)
대단한 왕상시다.
임제스님을 알아보고 큰 절에 모시어 마음껏 법석을 펴게 하였다.
그리고 자주 찾아가서 법을 논하였다.
또 하북부의 부중에 모시어 법을 선양하게도 하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법석에 인연을 맺게 하였다.
법안(法眼)이 밝고 불법에 대한 신념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다.
평생에 이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다.
큰 힘이다.
선지식이 교화를 펴는 데는 시주의 인연, 외호의 인연, 도의 인연, 납자의 인연,
토지의 인연 이렇게 다섯 가지의 인연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임제스님은 왕상시를 얻음으로서 그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한 평생 교화활동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왕상시가 있으므로 임제스님은 더욱 빛이 났다.
왕상시의 공덕은 참으로 만대에 뻗쳐있다고 하겠다.
법을 거량하는 소재도 왕상시에게 딱 어울리는 내용이다.
수행하는데 모든 조건을 제공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외호하였다.
그런데 그 외호를 받고 승당에 앉아 무엇들을 하는가?
이렇게 시작하여 스스로 점검을 잘 받은 것이다.
임제스님이 예상한대로 왕상시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임제록을 편찬한 이는 교묘하게 왕상시의 역할과 그의 안목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왕상시에 대한 은혜를 갚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합격점을 받았다.
28 행산스님을 점검하다
師問杏山(사문행산), 如何是露地白牛(여하시노지백우)오 山云(산운), ??(우우)한대 師云(사운), 啞那(아나)아 山云(산운), 長老作?生(장노자마생)고 師云(사운), 這畜生(자축생)아하니라
임제스님이 행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넓은 땅의 흰 소입니까?”
“음매에, 음매에!” 하자, “벙어리냐?” 하셨다.
“장로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하니 “이놈의 축생아!” 하셨다.
(강의)
흰 소는 일불승(一佛乘)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 질문은 “무엇이 부처입니까?” 가 된다.
그렇다. 소의 모습 그대로 부처이다.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그대로가 부처인데 부처가 아닌 것이 무엇이랴?
그러나 부처라는 속뜻은 숨고 축생들만 날뛴다.
동도(同道)라야 가지(可知)라는 말이 있다.
두 스님이 약속이나 한 듯이 관중들을 희롱하고 있다.
무대가 좋아서 점검하는 일은 그쯤으로 해 두었다.
천 이백 육십년 뒤에 그 틈을 엿보는 것은 임제도 몰랐을 거다.
29 낙보스님을 점검하다
師問樂普云(사문낙보운), 從上來(종상래)로 一人行棒(일인행방)하고 一人行喝(일인행할)하니 阿那箇親(아나개친)고 普云(보운), 總不親(총불친)이니다 師云(사운), 親處作?生(친처자마생)고 普便喝(보편할)하니 師乃打(사나타)하다
임제스님이 낙보스님에게 물었다.
“예로부터 한 사람은 방을 쓰고 한 사람은 할을 썼는데 누가 친절한가?”
“둘 다 친절하지 못합니다.”
“그럼 친절한 것은 어떤 것인가?”
낙보스님이 “할!”을 하자 임제스님이 후려쳤다.
(강의)
임제스님이 황벽스님에게 불법의 대의를 물으러 갔다가 세 번에 걸쳐
60방망이나 얻어맞고 대우스님에게 가서 호소하였더니
“황벽스님이 그렇게도 노파심절로 친절하였거늘 여기까지 와서 하소연을 하는가?”라는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아마도 그 생각이 나서 친절을 가지고 점검해 본 것이리라.
그래서 후생들에게 확실한 교훈을 남기려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30 어떤 스님을 점검하다
師見僧來(사견승래)하고 展開兩手(전개양수)한대 僧無語(승무어)어늘 師云會?(사운회마)아 云不會(운불회)니다 師云(사운), 渾崙擘不開(혼윤벽불개)하니 與汝兩文錢(여여양문전)하노라
임제스님이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두 손을 펼쳐 보였다.
그 스님이 아무런 대꾸가 없으므로 “알겠는가?” 하시니 “모르겠습니다.” 하므로
“곤륜산을 쪼갤 수 없으니 그대에게 돈이나 두어 푼 주겠노라.” 하셨다.
(강의)
중생들의 미혹의 두께가 어찌 곤륜산과 같겠는가?
이 지구의 두께보다도 더 두꺼울지 모른다.
임제의 청룡도로도 쪼갤 수가 없구나.
나도 헛수고요, 그대도 헛수고로다.
차라리 돈이나 두어 푼 줘서 신발값에나 보태 쓰게 할 뿐이로다.
쓸데없이 돌아다니느라 신만 달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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