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스크랩] 무비스님, 임제록 강설-감변(勘辨) 31. 32. 33. 34. 35

수선님 2018. 2. 18. 12:49

무비스님, 임제록 강설-감변(勘辨) 31. 32. 33. 34. 35

 

31 도반인 대각스님이 방문하다

大覺到參(대각도참)에 師擧起拂子(사거기불자)하니 大覺敷坐具(대각부좌구)라 師擲下拂子(사척하불자)한대 大覺收坐具(대각수좌구)하고 入僧堂(입승당)하다 衆僧云(중승운), 這僧(자승)은 莫是和尙親故(막시화상친고)아 不禮拜(불예배)하고 又不喫棒(우불긱방)이로다 師聞令喚覺(사문영환각)하니 覺出(각출)이라 師云(사운), 大衆道(대중도)호되 汝未參長老(여미참장노)라 覺云(각운), 不審(불심)하고 便自歸衆(편자귀중)하니라

 

대각스님이 와서 뵈었다.

임제스님이 불자를 세우니 대각스님이 좌구를 폈다.

임제스님이 불자를 던져버리니 대각스님이 좌구를 거두어 승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중스님들이이 스님은 큰스님의 친구이신가. 절도 안하고 또 얻어맞지도 않는구나.” 하였다.

임제스님이 이 말을 듣고 대각스님을 불러오게 하였다.

대각스님이 나오자, “대중들이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아직 참례하지 않았다고 하네.” 하였다.

그러자 대각스님이안녕하십니까?” 하고는 곧 대중 속으로 돌아가 버렸다.

 

(강의)

좀 싱겁긴 해도 웃음이 나오는 한 폭의 좋은 그림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대중들이 점검을 받았다.

이 법을 점검하는 것은 본래 대중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일대 일로 이루어진다.

혹 도가 같은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함께 동참한다.

하지만 대중들이 등장하는 것이 처음이다.

 

 

32 조주스님이 방문하다

趙州行脚時(조주행각시)에 參師(참사)할새 遇師洗脚次(우사세각차)하야 州便問(주편문), 如何是祖師西來意(여하시조사서래의)오 師云(사운), 恰値老僧洗脚(흡치노승세각)이로다 州近前作聽勢(주근전작청세)어늘 師云(사운), 更要第二杓惡水潑在(갱요제이표악수발재)니라 州便下去(주편하거)하다

 

조주스님이 행각할 때 선사를 찾아뵈었다.

그때 발을 씻고 있었는데 조주스님이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마침 내가 발을 씻고 있는 중이요.”

조주스님이 앞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여 듣는 시늉을 하자,

다시 또 두 번째 구정물 세례를 퍼부어야겠군요.” 하였다.

그러자 조주스님은 곧 내려가 버렸다.

 

(강의)

천하의 임제도 차마 조주에게 발을 씻던 구정물을 바로 퍼붓지는 못했다.

말로만 퍼붓고 말았다.

만약 이 자리에 보화가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이 좋은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임제스님은 한 회상의 지도자가 되고 보화스님은 조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보화스님은 법을 쓰는 것이 과도해서 대중성이 없다.

그러나 임제스님은 법을 쓰는데 완급과 강약의 조절이 가능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33 정상좌가 크게 깨닫다

有定上座(유정상좌)하야 到參問(도참문), 如何是佛法大意(여하시불법대의)오 師下繩床(사하승상)하야 擒住與一掌(금주여일장)하고 便托開(편탁개)하니 定佇立(정저립)이라 傍僧云(방승운), 定上座(정상좌)야 何不禮拜(하불예배)오 定方禮拜(정방예배)에 忽然大悟(홀연대오)하니라

 

정상좌(定上座)가 임제스님을 뵙고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라고 물으니,

임제스님이 자리에서 내려와 멱살을 움켜쥐고 한 대 후려갈기며 밀쳐버렸다.

정상좌가 멍하여 우두커니 서 있으니 곁에 있던 스님이 말하였다.

정상좌여! 왜 절을 올리지 않는가?”

정상좌가 절을 하려는 순간 홀연히 크게 깨달았다.

 

(강의)

무엇이 불법의 대의인가? 라는 질문은 임제스님이 가장 원수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 질문을 황벽스님에게 했다가 실컷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불교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역시 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모든 불교인들의 천형과 같은 것이다.

얻어맞을 때 얻어맞더라도 안가질 수 없는 의문이다.


석가세존으로부터 역대 조사들이 모두 그 소중한 인생을 바쳐 찾고 궁구하였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착하고 순수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정진하는 정상좌는 이 질문을 임제스님에게 하였다.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다.

이 질문을 마치 몇 십 년을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대뜸 멱살을 잡고 후려갈기며 또 밀쳐버렸다.

넘어진 사람을 사정없이 밟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사정없이 밟았더라면 그 때 깨달았을 텐데 곁에 있던 스님들의 말을 빌어서 깨달았다.


정상좌와의 관계는 마치 임제스님과 황벽스님과의 관계를 생략해서 그려 논 작은 그림 같다.

간략하면서도 아름답다. 추사의 세한도 같다.

선은 고고(枯槁)하고 간소(簡素)하다.

소위 선서(禪書)니 선화(禪畵)니 하는 것은 이래야 하는데 요즘 선서나 선화는 너무 칙칙하다.

번뇌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34 어느 것이 바른 얼굴인가

麻谷到參(마곡도참)하야 敷坐具問(부좌구문), 十二面觀音(십이면관음)이 阿那面正(아나면정)고 師下繩牀(사하승상)하야 一手收坐具(일수수좌구)하고 一手?麻谷云(일수추마곡운), 十二面觀音(십이면관음)이 向什?處去也(향십마처거야)오 麻谷轉身(마곡전신)하야 擬坐繩牀(의좌승상)이라 師拈?杖打(사염주장타)한대 麻谷接却(마곡접각)하야 相捉入方丈(산착입방장)하니라

 

마곡스님이 임제스님을 찾아뵙고 좌구를 펴며 물었다.

“12면 관세음보살은 어느 얼굴이 바른 얼굴입니까?”

그러자 임제스님이 자리에서 내려와 한 손으로는 좌구를 거두고

한 손으로는 마곡스님을 붙잡으며, “12면 관세음보살이 어디로 갔는가?” 하였다.

마곡스님이 몸을 돌려 자리에 앉으려 하므로 임제스님이 주장자를 들어 후려쳤는데

마곡스님이 이를 받아 쥐니 서로 붙잡고 방장실로 들어갔다.

 

(강의)

아무리 생각해도 12면 관음보살의 바른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12면 관음보살이 주장자를 맞잡고 방장실로 들어온다.

마곡스님이 임제스님을 점검하려갔다가 버러진 상황이다.

임제스님이 좀 밀리는 듯한 느낌이다.

두 분의 동작을 수차례 그려봐야 한다.

그리고 한 장면 한 장면을 느린 동작으로 띠워놓고 검토해야

조금 맛이 나는 법거량이다.

 

 

35 여러 가지 할

師問僧(사문승)호되 有時一喝(유시일할)은 如金剛王寶劍(여금강왕보검)이요 有時一喝(유시일할)은 如踞地金毛獅子(여거지금모사자)요 有時一喝(유시일할)은 如探竿影草(여탐간영초)요 有時一喝(유시일할)은 不作一喝用(부작일할용)이니 汝作?生會(여자마생회)오 僧擬議(승의의)한대 師便喝(사편할)하다

 

임제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은 금강왕의 보검과 같고,

어떤은 땅에 웅크리고 앉은 금빛 사자 같으며,

어떤은 어부가 고기를 찾는 장대와 도둑이 그림자를 드리워보는 풀 같고,

어떤은 할로서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임제스님이을 하였다.

 

(강의)

할의 주인은 임제 자신이거늘 누구보고 묻는가?

덕산 방, 임제 할이라는 소리도 임제는 못 들었는가?

이 기회에 당신의 전문인 할에 대하여 힌트를 주려는 것인가?

천기누설은 아닌가? 강설하는 자는 천기누설이 전문이다.

금강왕의 보검은 사람을 죽여도 피도 안 묻는 칼이다.

지구를 쪼개어도 날이 전혀 상하지 않는 칼이다.


땅 보다도 더 두꺼운 사람들의 번뇌무명을 단칼에 날려 보내는 칼이다.

임제의 할은 대개 이런 할이다.

땅에 웅크리고 앉은 금빛 사자는 먹이를 노리고 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미동도 없이 있다가 먹이가 사정거리 안에 들면 일거에 잡아 챙긴다.

지극히 조심해도 임제의 곁에 가면 순식간에 먹이가 되고 만다.

이런 할도 자주 쓰는 할이다.


어부가 고기를 찾는 장대[探竿]와 도둑이 남의 집 문 앞에서 풀로 그림자를 드리워보고

주인이 잠이 들었는지를 알아보는 것[影草]은 시험 삼아 한 번 해 보는 할이다.

납자가 눈을 뜨거나 걸려들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어부가 장대질을 어디 한 두번 하는가.

도둑이 남의 집을 한 두번 기웃거리는가.

열 번 해서 한 번 걸려들면 그것도 괜찮은 소득이다.


할로써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 라는 뜻은 하나마나한 아무런 소득도 없는 할이다.

또 생명도 없는 죽은 할이다.

법이 없는 맹인들의 할이다.

의미도 모르고 하는 소리에 불과한 할이다.

그렇다면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임제스님이 한 할은 무슨 할인가?


출처 : 제이제이
글쓴이 : 제이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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