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스크랩] 무비스님, 임제록 강설-행록(行錄) 40-1. 40-2. 40-3. 40-4

수선님 2018. 2. 18. 12:50

무비스님, 임제록 강설-행록(行錄) 40-1. 40-2. 40-3. 40-4

 

행록(行錄)

 

(강의)

임제스님의 행장에 대한 기록이다.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깨닫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법담을 나누고

누구를 어떻게 교화하였는가를 자세히 기록한 내용이다.

기록은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

아무리 그와 같은 사실이 그 때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뒷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금석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팔만장경도 또한 그 기록이다.

 

 

40-1 세 번 묻고 세 번 맞다

師初在黃檗會下(사초재황벽회하)하야 行業純一(행업순일)이어늘 首座乃歎曰(수좌내탄왈), 雖是後生(수시후생)이나 與衆有異(여중유이)로다 遂問(수문), 上座在此多少時(상좌재차다소시)오 師云(사운), 三年(삼년)이니다 首座云(수좌운), 曾參問也無(증참문야무)아 師云(사운), 不曾參問(불증참문)이니 不知問箇什麻(부지문개십마)오 首座云(수좌운), 汝何不去問堂頭和尙(여하불거문당두화상)호되 如何是佛法的的大意(여하시불법적적대의)

 

임제스님이 처음 황벽스님의 회하에 있을 때 공부하는 자세가 매우 순일하였다.

수좌 소임을 보는 목주(睦州)스님이 찬탄하여 말하기를,

비록 후배이긴 하나 다른 대중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묻기를, “스님이 여기에 있은 지 얼마나 되는가?”

“3년 됩니다.”

공부에 대하여 물은 적이 있는가?”

아직 묻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방장스님을 찾아뵙고무엇이 불법의 분명한 대의입니까?’ 하고 왜 묻지 않는가?”

 

(강의)

수좌스님은 자신의 소임을 매우 훌륭하게 이행하였다.

7, 8백 명이 모여 공부하는 대중들 중에 그릇이 빼어난 사람을

잘 살펴서 방장스님에게로 인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목주스님은 일평생 수좌 소임을 보면서 임제스님을 놓치지 않고

알아보았다는 사실은 불교의 역사를 바꿔놓은 계기가 되었다.

대중들 속에 섞여있을 때 지금 같은 임제스님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목주스님의 사람을 알아보는 무서운 안목과

황벽스님의 사람을 단련하는 뛰어난 솜씨가 오늘날의 임제를 있게 하였다.

그와 같은 극적인 만남은 인류역사상 흔치 않다.

 


師便去問(사편거문)한대 聲未絶(성미절)에 黃檗便打(황벽편타)하다 師下來(사하래)에 首座云(수좌운), 問話作?(문화자마생)고 師云(사운), 某甲問聲未絶(모갑문성미절)에 和尙便打(화상편타)하니 某甲不會(모갑불회)니다 首座云(수좌운), 但更去問(단갱거문)하라하니 師又去問(사우거문)이라 黃檗又打(황벽우타)하야 如是三度發問(여시삼도발문)하고 三度被打(삼도피타)하니라 師來白首座云(사래백수좌운), 幸蒙慈悲(행몽자비)하야 令某甲問訊和尙(영모갑문신화상)하야 三度發問(삼도발문)에 三度被打(삼도피타)니다 自恨障緣(자한장연)으로 不領深旨(불령심지)하니 今且辭去(금사차거)하노이다 首座云(수좌운), 汝若去時(여약거시)에는 須辭和尙去(수사화상거)하라 師禮拜退(사예배퇴)하니라

 

임제스님이 바로 가서 물으니 묻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벽스님께서 대뜸 후려쳤다.

임제스님이 내려오자 수좌가 물었다.

법을 물으러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내가 묻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상이 느닷없이 때리니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가서 묻도록 하게.”

임제스님이 다시 가서 물으니, 황벽스님이 또 때렸다.

이렇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았다[三度發問(삼도발문) 三度被打(삼도피타)].

임제스님이 와서 수좌에게 말하였다.

다행히 자비하심을 입어서 제가 큰스님께 가서 불법을 물었는데 세 번 묻고, 세 번 맞았습니다.”

장애로 인하여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한탄하고 지금 떠나려고 합니다.”

그대가 만약 떠나려거든 큰스님께 가서 하직 인사나 꼭 하고 가게.”

임제스님은 예배하고 물러났다.

 

(강의)

불법의 대의를 묻는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황벽스님의 몽둥이가 날아왔다.

그것도 무려 20방망이씩 세 번이나. 불법치고는 기상천외의 불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법의 분명한 대의임에 틀림없다.

임제가 어떻게 이해를 하든 황벽스님은 자신의 불법에 대해서 소신껏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팔만장경은 무엇인가? 이 임제록을 포함하여 모두가 금강산 안내문이다.

그러면 금강산은 무엇인가? 때리고 맞는 그 사실이다.

즉 대기대용(大機大用)이며 전체작용(全體作用)이다.

이 말도 그 사실은 아니고 한갓 설명이다.

선과 교의 다른 점을 굳이 말한다면 이와 같이 나누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임제스님은 여기서 삼도발문 삼도피타(三度發問 三度被打),

즉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그것이 세존의 6년 고행이 되고,

달마의 9년 면벽이 되고, 조주의 80년 부잡용심(不雜用心)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임제스님 자신의 모든 것이 되었다.

 

 

40-2 황벽의 불법이 별것이 아니다

首座先到和尙處云(수좌선도화상처운), 問話底後生(문화저후생)이 甚是如法(심시여법)하니 若來辭時(약래사시)에는 方便接他(방편접타)하소서 向後穿鑿(향후천착)하야 成一株大樹(성일주대수)하야 與天下人作?凉去在(여천하인작음양거재)리이다 師去辭(사거사)한대 黃檗云(황벽운), 不得往別處去(부득왕별처거)요 汝向高安灘頭大愚處去(여향고안탄두대우처거)하라 必爲汝說(필위여설)하리라

 

수좌가 먼저 황벽스님의 처소에 가서 말하였다.

법을 물으러 왔던 후배가 대단히 여법(如法)합니다.

만약 와서 하직 인사를 드리거든 방편으로 그를 이끌어 주십시오.

앞으로 잘 다듬으면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것입니다.”

임제스님이 가서 하직 인사를 드리니 황벽스님이 말씀하였다.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자네는 고안의 물가에 사는 대우스님 처소에 가도록 하여라.

반드시 너를 위하여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강의)

임제의 그릇됨을 알아보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시는

목주스님의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그 노력이 눈에 선하다.

선정후교(先情後敎)라고 했던가.

사람을 제도함에 있어서 먼저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그 뒤에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임제라는 걸출한 선지식을 만들기까지 황벽스님 못지않은

목주스님의 밝은 안목과 후배를 위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제를 논한다면 반드시 목주스님을 잊어서는 안된다.

누군가가 있어서 사람을 이렇게 이끌어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목주스님에게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공양, 공경, 존중, 찬탄해 드리고 싶다.

 


師到大愚(사도대우)한대 大愚問(대우문), ?處來(십마처래)오 師云(사운), 黃檗處來(황벽처래)니다 大愚云(대우운), 黃檗有何言句(황벽유하언구)오 師云(사운), 某甲(모갑)이 三度問佛法的的大意(삼도문불법적적대의)라가 三度被打(삼도피타)하니 不知某甲(부지모갑)이 有過無過(유과무과)닛가 大愚云(대우운), 黃檗與?老婆(황벽여마노파)하야 爲汝得徹困(위여득철곤)이어늘 更來這裏(갱래자리)하야 問有過無過(문유과무과)

 

임제스님이 대우스님에게 이르자 대우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황벽스님의 처소에서 왔습니다.”

황벽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저가 세 번이나 불법의 분명한 대의를 물었다가 세 번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에게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황벽스님이 그토록 노파심이 간절하여 그대를 위해 뼈에 사무치게 하였거늘

여기까지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가?

 

(강의)

임제는 이렇게 착하고 순수하고 선량한 사람이다.

불법에 대해서 있는 정성을 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을 화반탁출(和盤托出)하여 선지식에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단지 불법을 물었을 뿐인데 저를 그토록 때리니 저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이러한 마음의 청정무구하고 순일무잡하며 더없이 순수한 임제를 한번 상상해보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이요, 이른 봄의 여리고 여린 새싹이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다.

그런데 대우스님의 대답은 너무나도 기상천외하다.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아직 그 잘못을 몰라 마냥 죄송한 마음으로 전전긍긍할 뿐인데,

황벽스님이 그렇게도 노파심절로 그대를 위하여 뼈에 사무치는 사랑을 베풀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와서 잘못이 있고 없는 것을 묻는가?”

참으로 어느 정도 정진을 한 사람이면 여기서는 눈을 뜨게 될 곳이다.

어찌 임제뿐이겠는가?

 


師於言下(사어언하)에 大悟云(대오운), 元來黃檗佛法(원래황벽불법)이 無多子(무다자)니다 大愚?住云這尿牀鬼子(대우추주운자요상귀자)야 適來道有過無過(적래도유과무과)러니 如今却道黃檗佛法(여금각도황벽불법)이 無多子(무다자)라하니 ?見箇什?道理(이견개십마도리)오 速道速道(속도속도)하라 師於大愚脅下(사어대우협하)에 築三拳(축삼권)한대 大愚托開云(대우탁개운), 汝師黃檗(여사황벽)이요 非干我事(비간아사)니라

 

임제스님이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황벽의 불법이 간단하구나.”

대우스님이 멱살을 움켜쥐며, “이 오줌싸개 같은 놈!

방금 허물이 있느니 없느니 하더니 이제 와서는 도리어

황벽스님의 불법이 간단하다고 하느냐?

그래 너는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빨리 말해봐라, 빨리 말해!” 하였다.

이에 임제스님이 대우스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번이나 쥐어박았다.

대우스님이 임제스님을 밀쳐 버리면서 말하였다.

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강의)

황벽의 불법이 간단하구나.”

그렇다. 황벽의 불법만 간단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불법도 간단하다.

엉터리 부연 설명을 하면, 아무런 조작이 없다는 뜻이다.

닦은 것도 아니고 깨달은 것도 아니고 증득한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육도만행을 닦아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본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이다. 전혀 손을 댈 것이 없는 물건이다.

그저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듣는 일이다. 느끼고 아는 일이다.

식사하고 대소변 보는 일이다. 웃을 때 웃고 울 때 우는 일이다.

즐거우면 즐거워하고 아프면 아파하는 일이다.

세존이 꽃을 드니 가섭이 미소하는 일이다. 그 사실 외에 다른 별 것은 아니다.

대우스님이 다그치는 질문에 임제의 대답이 또한 걸작이다.

대우스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번 쥐어박았다.

임제스님의 불법은 더 간단하다. 스승에게서 간단하게 깨달아서 일까?

본래로 불법은 간명직절하다. 시끄럽지 않고 매우 고요하다.

저절로 그러하다. 그러면서 유현하다. 고고하다.

선문답에서 이처럼 철두철미하게 맞아 떨어진 일은 보기 드물다.

황벽스님에게서 흠씬 얻어맞은 값을 이렇게 멋지게 하였다.

참으로 총명하고 열리한 사람이다. 영혼이 밝은 거울처럼 환한 사람이다.

가을 하늘처럼 끝없이 툭 트여있는 사람이다.

 

 

40-3 호랑이 수염을 뽑는구나

師辭大愚(사사대우)하고 却回黃檗(각회황벽)하니 黃檗見來(황벽견래)하고 便問(편문), 這漢來來去去(자한내내거거)에 有什?了期(유십마요거)리요 師云(사운), 祇爲老婆心切(지위노파심절)이니다 便人事了侍立(편인사요시립)하니 黃檗問(황벽문), ?處去來(십마처거래)오 師云(사운), 昨奉慈旨(작봉자지)하야 令參大愚去來(영참대우거래)니다 黃檗云(황벽운), 大愚有何言句(대우유하언구)오 師遂擧前話(사수거전화)한대 黃檗云(황벽운), ?生得這漢來(자마생득자한래)하야 待痛與一頓(대통여일돈)고 師云(사운), 說什?待來(설십마대래)오 卽今便喫(즉금편긱)하소서 隨後便掌(수후편장)하니 黃檗云(황벽운), 這風顚漢(자풍전한)이 却來這裏?虎鬚(각래자리날호수)로다 師便喝(사편할)하니 黃檗云(황벽운), 侍者(시자)야 引這風顚漢(인자풍전한)하야 參堂去(참당거)하라

 

임제스님이 대우스님을 하직하고 다시 황벽스님에게 돌아오자

황벽스님께서 보고는, “이놈이 왔다 갔다 하기만 하니 언제 공부를 마칠 날이 있겠느냐?”

오직 스님의 간절하신 노파심 때문이옵니다.”

인사를 마치고 곁에 서 있으니 황벽스님이 물었다.

어디를 갔다 왔느냐?”

지난번에 스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듣고 대우스님을 뵙고 왔습니다.”

대우가 무슨 말을 하더냐?”

임제스님이 지난 이야기를 말씀드리니 황벽스님이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대우 이놈을 기다렸다가 호되게 한 방 줄까?”

무엇 때문에 기다린다 하십니까?

지금 바로 한방 잡수시지요.” 하며 바로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황벽스님께서이 미친놈이 다시 와서 호랑이의 수염을 뽑는구나.” 하였다.

그러자 임제스님이을 하였다.

황벽스님이시자야, 이 미친놈을 데리고 가서 선방에 집어넣어라.” 하였다.

 

(강의)

임제는 태산의 무게 같은 불법의 대의라는 짐을 짊어지고

대우스님에게로 가서 거기서 그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아마도 발이 땅에 닫지 않고 날듯이 왔을 것이다.

불법을 물으러 갔다가 호되게 얻어맞은 황벽스님에게 보란 듯이 돌아와

이 미친놈이 다시 와서 호랑이의 수염을 뽑는구나.”라는 멋진 인가를 받았다.

거기에 더하여 임제는로써 쐬기를 밖아 버렸다.

너무나 간단하게. 황벽스님의 불법이 보래로 간단하기[無多子(무다자)] 때문이다.

이렇게 대장부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선방에 앉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0-4 호랑이 꼬리를 잡다

?(후위산)이 擧此話(거차화)하야 問仰山(문앙산)하되 臨濟當時(임제당시)에 得大愚力(득대우력)가 得黃檗力(득황벽력)가 仰山云(앙산운), 非但騎虎頭(비단기호두)요 亦解把虎尾(역해파호미)니다

 

뒷날 위산스님이 이 이야기를 하시며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임제가 그때 대우의 힘을 얻었는가? 황벽의 힘을 얻었는가?”

범의 머리에 올라앉았을 뿐만 아니라, 범의 꼬리도 잡을 줄 안 것입니다.”

 

(강의)

당대의 범 같은 선지식들을 참례하고 비로소 오늘 날의 임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힘을 모두 입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 사람과 관계없이 자신의 힘으로 눈을 떴다 고도 할 수 있다.

예컨대 만약 생감이라면 아무리 두들겨 팬다 한들 홍시가 되어 떨어지겠는가.

가을이 되어 홍시가 잘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일체지, 자연지, 무사지(無師智)라고 한다.

그러나 앙산스님의 대답은 너무 멋지다.

위산스님은 사랑하는 제자 앙산의 공부를 점검하는 뜻에서 물었는데 뜻밖의 명답을 받아냈다.

이렇게 되면 제자에 대한 사랑은 몸살이 날 지경이다.


출처 : 제이제이
글쓴이 : 제이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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