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싯돌이 부딪쳐 불꽃이 튀듯, 스승의 가르침이 제자의 깨달음으로 확 타오르게 되는 계기, 그것을 가르켜 선가에서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 부릅니다.
닭이 알에서 부화될 때, 색끼가 밖으로 나가려고 안에서 주둥이로 알껍질을 톡톡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닭이 알 속의 낌새를 알아채고 알껍질을 주둥이로 탁탁 쪼아 새끼가 잘 나오도록 깨뜨리는 것을 '탁(啄)'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선사들은 새끼의 부화를 지켜보는 어미닭같이, 제자들이 수련을 통해 깨달음의 길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살펴서, 기회가 포착되면 불꽃을 일으키듯 깨달음의 동기를 제공합니다.
이 과정은 대단히 미묘하여, 어미닭과 새끼가 서로 쪼는 것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생명이 계승되지 못합니다. 새끼가 알에서 다 자라지 않았는데도 어미닭이 조급해하여 미리 쪼게되면 그만 죽게 되고, 다 자라서 안에서 쪼아대는 데도 잘 알지 못하고 밖에서 같이 쪼아주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어버리게 됩니다. 참된 깨달음, 영원한 부처님의 생명도 적합한 기회를 놓치게 되면 전수되지 않습니다.
<벽암록(碧巖錄)> 제16칙에 "무릇 수행하는 이라면 줄탁동시의 안목을 갖추고 줄탁동시의 작용이 있어야만 선사라고 할 수 있다."고 씌어 있습니다.
'줄탁동시'는 본래 중국의 민간에서 쓰던 속어였습니다. 이같은 속어들이 선이나 인생의 진실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 당시 선가의 기풍이 얼마나 서민적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속어가 선의 진수를 표현하기 위해 적절히 사용되면, 그 생생한 표현력은 그만큼 깊은 뜻과 다의성을 갖게 됩니다.
수행자의 번뇌 속에 숨어 있는 순수한 인간성을 수행자 스스로 깨닫게 하려면, 수행자를 지도하는 선사는 순수한 인간성과 접촉하는 시기를 적절하게 잘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각(自覺)과 타각(他覺)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며,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이 마음의 심층에서 만나야 합니다.
松原泰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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