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관사상

[스크랩] 8.행위와 행위자를 관찰하는 장[觀作作者品] 12偈

수선님 2018. 3. 11. 12:37

8.행위와 행위자를 관찰하는 장[觀作作者品] 12

 

 

[] 지금 분명히 행위가 있고 행위자가 있고 행위 수단(所用作法)이 있다. 세 가지가 결합해서 과보가 있다. 그러므로 행위자[作者]와 행위[作業]가 있다.

[] 이제까지 매 장에서 모든 법을 타파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3()을 타파하는 경우를 보자. 3상이 있지 않기에 유위가 있지 않고, 유위가 있지 않기에 무위가 있지 않다. 유위와 무위가 있지 않기에 모든 법이 있지 않다. 만약 행위와 행위자가 유위라면 유위를 다룰 때 이미 타파되었고 만약 무위라면 무위를 다룰 때 이미 타파되었다. 다시 묻지 않아야 하는데 그대는 집착하는 마음이 깊어 다시 묻고 있다. 이제 다시 답하겠다.

 

실재하는 행위자는 실재하는 행위를 하지 않네.

실재하지 않는 행위자는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하지 않네. (1)  

 

만약 먼저 행위자가 실재한다면 행위가 실재할 것이니, 행위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먼저 행위자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행위가 실재하지 않을 것이니, 또한 행위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러한가?

 

실재하는 행위에는 지음[]이 없네. 이 행위에는 행위자가 없네.

실재하는 행위자에게는 지음이 없네. 행위자에게 또한 행위가 없네.(2)   

 

만약 먼저 행위가 실재한다면 다시 행위자가 있지 않을 것이다. 또 행위자 없이 행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다. 만약 먼저 행위자가 실재한다면 다시 행위가 있지 않을 않을 것이다. 또 행위 없이 행위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실재하는 행위자와 실재하는 행위에는 지음[]이 있을 수 없다. 실재하지 않는 행위자와 실재하지 않는 행위에도 지음이 있을 수 없다. 왜 그러한가? 본래 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위자가 있고 행위가 있어도 지음이 없거늘, 하물며 행위자가 있지 않고 행위가 있지 않은 경우이겠는가?

 

만약 행위자가 실재하고 또한 행위가 실재한다면

행위자와 행위는 원인이 없는 것에 떨어지고 말리라. (3)   

 

또 만약 먼저 행위자가 실재하고 행위가 실재하는데 그대가 행위자에게 지음이 있다고 말한다면, 원인이 없는 되리라. 행위를 떠나 행위자가 있고 행위자를 떠나 행위가 있는 것이니, 인연에 의존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 만약 인연에 의존하지 않고서 행위자가 있고 행위가 있다고 한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 만약 원인이 없는 것에 떨어진다면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는 것이네.

지음이 없고 행위자가 없고 행위 수단이 없는 것이네. (4)

 

만약 지음 등이 없다면 죄와 복이 없네.

죄와 복 등이 없으니 죄와 복의 과보(果報)도 없네. (5)

 

만약 과보가 없다면 또한 열반도 없네.

모든 있을 수 있는 지음이 모두 공허해서 결과가 없게 되네. (6)   

 

만약 원인이 없는 것에 떨어진다면 모든 법들은 원인이 없고 결과가 없는 것이 된다. ‘발생하게 하는 법을 원인이라 하고 발생하는 법을 결과라 하는데 이 둘이 없게 된다. 이 둘이 없기 때문에 지음이 없고 행위자가 없고 행위 수단이 없다. 또한 죄와 복도 없다. 죄와 복이 없기 때문에 죄와 복의 과보 및 열반의 도()가 없다. 그러므로 원인이 없는 것에서 생길 수 없다.

[] 만약 행위자가 실재하지 않으면서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일으킨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 하나가 없어도 행위를 일으킬 수 없는데 하물며 둘 다 없음이겠는가? 마치 화인(化人)이 허공으로 집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저 말[言說]이 있을 따름이지 행위자와 행위는 없다.

[] 만약 행위자가 없고 행위가 없다면 지음[所作]이 있을 수 없다. 이제 행위자가 있고 행위가 있으니 지음[]이 있을 것이다.

 

[] 실재하면서 실재하는 않는 행위자가 두 행위를 할 수 없네.

존재와 비존재는 모순되기 때문에 한 곳에 둘이 있지 않네. (7)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행위자가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왜 그러한가? 존재와 비존재는 모순되기 때문에 한 곳에 둘이 있지 않다. 존재는 확정된 것[決定]이고 비존재는 확정되지 않은 것[不決定]이다. 한 사람 한 사물에 어떻게 존재와 비존재가 있겠는가?

 

존재하는 행위자는 존재하지 않는 행위를 하지 않으며,

존재하지 않는 행위자는 존재하는 행위를 하지 않네.

만약 행위와 행위자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과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네. (8)  

 

또 만약 행위자가 존재하는데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만약 행위자가 존재하지 않는데 행위가 존재한다면 또한 지음이 있을 수 없다. 왜 그러한가? 행위자가 존재하는데 만약 행위가 먼저 존재한다면 행위자가 다시 무엇을 짓겠는가? 만약 행위가 먼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같다면 죄와 복 등의 인연과 과보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존재하는 행위자는 존재하지 않는 행위를 하지 않으며, 존재하지 않는 행위자는 존재하는 행위을 하지 않네. 만약 행위와 행위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 과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네라고 말한 것이다.

 

행위자는 실재하는 행위를 하지 않네.

실재하지 않는 행위도 하지 않네.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행위도 하지 않네.

그 과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네. (9)

 

또 실재하는 행위는 이미 타파되었다. 실재하지 않는 행위도 타파되었고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행위도 타파되었다. 지금은 일시에 모든 것을 타파하고자 이 게송을 읊은 것이다. 그러므로 행위자는 세 가지의 행위를 짓지 않는다. 이제 세 가지의 행위자 또한 행위를 짓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행위자가 실재하든, 실재하지 않든,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든

행위를 하지 못하네. 그 과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네. (10)

 

 

행위자가 실재하든, 실재하지 않든,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든 행위를 짓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앞에서 세 가지 과실의 이유를 든 것과 같이 여기서도 말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행위자와 행위를 구해 보아도 모두 얻을 수 없다.

[] 만약 행위가 없고 행위자가 없다면 다시 원인이 없는 것에 떨어질 것이다.

[] 이 행위는 뭇 연()에 의존해서 생긴 것이다. 가명(假名)으로 있다고 하는 것이지 확정된 것[決定]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말하는 바와 같지 않다. 왜 그러한가?

 

행위에 의존해서 행위자가 있고 행위자에 의존해서 행위가 있네.

행위를 성립시키는 이치가 이와 같으니, 이 밖에 다른 것이 없네. (11)

 

 

행위에 미리 확정된 것[決定]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 의존해서 행위를 일으키고 행위에 의존해서 행위자가 있다. 행위자 또한 확정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행위에 의존해서 행위자라고 하는 것이다. 둘이 화합하기 때문에 행위와 행위자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화합에 의존해서 생긴 것이라면 자성이 없는 것이다. 자성이 없기에 공()하고 공하기에 발생하는 것[所生]이 없는 것이다. 그저 범부가 기억하고 표상해서 분별하는 대로 행위가 있고 행위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제일의(第一義)에는 행위가 있지 않고 행위자가 있지 않다.

 

행위와 행위자와 같이 취착(取著)과 취착하는 자도 타파되네.

그리고 모든 법들도 이와 같이 타파되네. (12)

 

 

또 행위와 행위자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서로 분리되지 않기에 확정되지 않으며 확정된 것이 없기에 자성이 없는 것과 같이, 취착과 취착하는 자도 이와 같다. ‘취착(取著)’이란 5()의 몸[]을 말한다. ‘취착하는 자(그러한) 사람을 말한다. 이렇듯이 사람을 떠나 5온이 있지 않으며 5온을 떠나 사람이 있지 않으니, 단지 뭇 연()에 의존해서 생기는 것일 따름이다. 취착과 취착하는 자와 같이 그 밖의 모든 법도 이와 같이 타파된다.

 


출처 : 청산백운
글쓴이 : mangu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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