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파나사띠

[스크랩] 안반수의경 - 해인사 승가대 교수 승오스님 해설

수선님 2018. 3. 18. 12:41



안반수의경 - 해인사 승가대 교수 승오스님 해설

 

 

깨달음 얻는 호흡 수행법
산란한 마음쉬고 건강 찾을 수 있어

 

선수행에 관한 많은 지침서들이 있으나, 이중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경전이나 논서(論書)는 많지 않다. 이 경전의 이름은 모두 갖추어서 부르면 <불설대안반수의경>이고, 줄여서는 <대안반수의경> <안반수의경> <대안반경> <안반경> <수의경> 등으로 불리운다. 상·하 두 권으로 이루어졌다.

 

이 경전은 후한(後漢) 시대의 안세고(安世高) 스님에 의하여 최초로 한역되어 인도 밖으로 소개되었는데, 수많은 불제자들의 저술에 인용되고 있다. 경의 앞에 적은 강(康)의 승회(僧會)의 서문은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수행법으로 받아들여졌는가를 짐작케 하고 있다. 이 경전은 매우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아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경전이다.

 

이 경의 내용은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을 통해서 정신의 안정을 가져오고 더 나아가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수행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방법을 원어로는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라고 하는데, 이것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안반수의(安般守意)’로 적은 것이다.

 

‘안반수의’의 수행방법을 살펴보면,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는 수행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아나(ana)’는 들숨이고 ‘아빠나(apana)’는 날숨이며 ‘사띠(sati)’는 의식의 집중이다. 이러한 안반(安般)을 번역하면 수식관(數息觀, 소승선의 수행의 다섯 가지 관법 ‘오정심관 (五停心觀)인 부정관(不淨觀)·자비관(慈悲觀)·인연관(因緣觀)·계분별관(界分別觀)·수식관(數息觀)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좌선을 하면서 호흡의 들이쉬고(入息) 내쉬는(出息) 수를 세는 것으로서 산란한 마음을 쉬고 뜻을 지키는 방법을 말한다. 수식관은 옛날부터 불교 수행자의 전용물로만 알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방법 또한 올바르게 전수되지 않았다.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 것이 선가(禪家)의 가풍(家風)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소승의 수행법이라고 하여 낮추어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호흡법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되어야 할 소중한 가르침인 것이다. 이 수행법을 익힌다면 정신의 피폐(疲弊)와 건강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건강과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상권에는 호흡의 수련에 임하여 여섯 가지 진전의 단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 들숨과 날숨의 수를 헤아리는 수(數),

- 호흡에 의식을 같이 하여 하나가 되는 상수(相隨),

- 더 나아가서 마음이 호흡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고요히 안정되는 지(止),

- 모든 사물을 관찰함에도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된 상태인 관(觀),

- 다시 고요한 상태인 자기의 주체로 돌아오는 환(還),

- 밖의 사물이나 내면의 그 어떤 경계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세계인 정(淨)이 그것이다.

 

하권에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의 단계를 내용적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 수(數)를 헤아리는 수식의 단계에서는 네 가지 마음의 힘을 얻게 된다는(四意止)것과,

- 상수(相隨)의 단계에서는 또 다른 네 가지 마음의 힘으로써 악을 없애게 된다는 (四意斷) 것과,

- 지(止)의 단계에서는 네 가지 신통력을 얻게 된다는(四神通) 것과,

- 관(觀)의 단계에서는 다섯 가지의 정신력(五力)을 얻게 되고,

- 환(還)의 단계에서는 일곱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되고(七覺意),

- 정(淨)의 단계에서는 여덟 가지 올바른 길(八正道)을 얻게 된다는 것과,

 

이 호흡법의 수련 공덕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안반수의’는 우주의 도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인도의 동북부인 실크로드의 서쪽에 있었던 월지국 등에서 결가부좌를 하시고 90일 동안 안반수의를 행하면서 시방의 모든 인간들과, 날고 꿈틀대는 새와 동물들까지도 구제하고자 하였다. 요컨대 부처님은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안반수의를 닦고서 이것을 전하여 모든 인간들과 동물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반수의는 즉 수식관이기 때문에 호흡의 출입을 통한 조화로써 안심입명(安心立命)하여 구경열반(究竟涅槃)에 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 한 단면을 살펴보자. 부처님께서는 <안반수의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안은 생하는 것이고, 반은 멸하는 것이며, 마음은 인연을 짓는 것이고, 수는 도가 되느니라.”(安爲生 般爲滅 意爲因緣 守者爲道也) 이것을 설명하자면, 호흡함에 있어서 들숨을 생(生)이라 한다면 날숨은 곧 멸(滅)인 것이다. 멸이란 단순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음에 오는 생을 위해서 쉬는 것이라고 본다면 생과 멸은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을 가지게 되므로 멸을 통해서 생이 있고 생은 멸에 의해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생과 멸은 대립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相互依存)하는 관계이며 둘이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은 들숨과 날숨 속에 우리의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게 되면 곧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고, 이렇게 되었을 때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의식이 집중되지 않으면 곧 마음이 산란하게 되고 마음이 산란하면 들숨과 날숨을 볼 수 없게 된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호흡이 일정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안정되어 숨의 들어오고(入) 나감(出)을 보아 하나가 되면 호흡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은 무의식중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의식이 집중되는 것이 곧 인연이 성숙되는 것이요 이것을 지키는 것이 곧 도(道)라고 하는 것이다.

 

숨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정신을 집중하게 되면 그 숨은 길고도 깊게 들어오고 나간다. 이것이 생명의 창조와 휴식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자연의 도리를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들숨과 날숨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때, 안반수의는 그대로 우주의 진리 자체이며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실상인 것이다.

 

부처님은 <잡아함경(雜阿含經)> 제29권 10에서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여, 들숨과 날숨을 생각하는 것을 잘 익혀야 한다. 그러면 몸이 피로하지 않게 되고 눈이 아프지도 않으며 관(觀)하여 즐거움에 머물 수가 있고 애착에 물들지 않게 되리라. 이와 같이 들숨과 날숨을 닦으면 좋은 결실과 큰 복의 이익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선정(禪定)에 들면 드디어는 자비심을 얻을 것이며 미혹을 떠나 깨달음에 들어갈 것이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호흡을 통하여 우주의 실상을 알았고 우주의 뜻이 바로 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나의 삶이 중생의 삶인 것처럼 모든 중생들이 호흡을 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모든 생명은 호흡을 통해서 생겨나고 멸하게 되는 것이다. 올바른 호흡이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인 동시에 곧 도(道)다. 화두참선을 할 때에도 역시 수식관(數息觀)은 매우 중요하다. 수식관이 가장 기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기(上氣)가 되어 수행하기가 힘들게 된다. 상기병(上氣病)은 수식관으로만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사성제 등 10가지 지혜 제시
깨달음 얻게 하는 37가지 수행방편 눈길


<안반수의경>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인 세계는 앞에서 설명한 10힐(十詰) 가운데 앞의 육사(六事) 즉, 수식(數息)·상수(相隨)·지(止)·관(觀)·환(還)·정(淨)의 여섯 가지와 네 가지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들어서 10힐이라 말하며, 이것이 이루어질 때 37도품경(三七道品經)에 합일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안반수의에는 열 가지 지혜가 있다. 숨을 세는 수식(數息), 숨과 마음이 서로 따르는 상수(相隨), 마음이 숨에 머무는 지(止), 자재로운 상태인 관(觀), 자기에게 돌아오는 환(還), 깨끗한 상태인 정(淨) 그리고 네 가지 진리인 사제(四諦)이다. 열 가지 지혜가 이루어지면 이른바 삼십칠도품경(三十七道品經)에 부합되어 그 행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안반수의는 들숨과 날숨에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열 가지를 들고 있는데 청정한 본심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일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괴로움의 원인을 알게 되며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올바른 길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열 가지가 모두 이루어지면 안반수의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으로 설법하고 있는 내용과 합일되는 것이다.

 

<삼십칠도품경(三十七道品經)>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서른일곱 가지 수행 방법인데, 삼십칠도품이라고도 한다. 도품은 깨달음의 종류라는 뜻이다. 도는 지혜, 곧 깨달음이며 품은 종류이다. 먼저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방법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사념처라고 부른다. 부모에게서 받은 육신이 부정하다고 관(觀)하는 신념처(身念處), 우리의 마음이 받아들이는 즐거움이나 괴로움은 참된 것이 아니라고 관하는 수념처(受念處), 우리의 마음은 항상 변하고 있다는 무상(無常)을 관하는 심념처(心念處),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법념처(法念處)이다. 다음은 네 가지 올바른 노력을 뜻하는 사정근(四正勤)이 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나쁜 습성이나 마음을 끊기 위해 애쓰는 율의단(律儀斷), 이미 나타난 악행이나 마음을 끊는 노력인 단단(斷斷), 아직 나타나지 않은 선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수호단(隨護斷), 이미 나타난 선함을 더욱 증대하기 위해 힘쓰는 수단(修斷)이다. 이 네 가지 노력들은 마음의 해태함을 끊음으로서 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다음에는 다섯 가지의 훌륭한 힘인 오근(五根)이 나타나게 된다. 뛰어난 믿음이 생기는 힘인 신근(信根), 부지런히 노력하는 힘인 정진근(精進根), 올바른 것을 생각하는 힘인 염근(念根), 한결같이 마음을 고요히 하는 선정의 힘인 정근(定根), 지혜로서 세상을 보는 힘인 혜근(慧根) 인 것이다.

 

다음으로 또 다른 힘으로서, 믿는 힘인 신력(信力), 부지런히 노력하는 힘인 근력(勤力), 올바른 것을 생각하는 힘인 염력(念力), 선정의 힘인 정력(定力), 지혜의 힘인 혜력(慧力)을 얻게 된다.

 

이어 깨달음의 지혜를 도와주는 일곱 가지를 닦게 되는데, 모든 법을 가려서 선악을 선택하는 택법각지(擇法覺支), 수행의 바른 길로 정진하는 정진각지(精進覺支), 마음에 선함을 얻어서 기뻐하는 희각지(喜覺支), 그릇된 번뇌를 제거하고 능히 선한 것으로 나아가는 제각지(除覺支), 밖의 세계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사각지(捨覺支), 명상에 들어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정각지(定覺支), 생각을 잘 가다듬어 지혜로 가는 생각만을 하는 염각지(念覺支)가 그것이다. 이것을 칠각지라고 한다.

 

 

 

생로병사 ‘苦’ 녹이는 안반념

부처님 수행후 자재·자비의 경지 얻어


팔정도(八正道)는 수행이 모두 이루어져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있어서 가장 올바르고 거룩한 상태에 도달한 경지이다. 곧 깨달은 자의 삶이다. 팔정도는 인생이나 세계에 대한 견해가 공(空)한 그대로 받아들여져 지혜로써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정견(正見),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올바른 생각을 지니고 결의하는 정사유(正思惟), 올바른 생각에 의해서 남을 이롭게 하는 말을 하는 정어(正語), 일상의 삶에서 스스로 그릇된 행위를 하지 않고 진리만을 행하는 정업(正業), 일상 생활에서 정당하고 남에게 해가 없는 생계수단으로 살아가는 정명(正命), 극단에 떨어지지 않는 중도로서 올바르게 부지런히 애쓰는 정정진(正精進), 항상 무상함과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과 실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는 정념(正念), 고요하고 또렷한 마음가짐인 정정(正定)의 여덟 가지이다.

 

이상의 것들을 합하면 서른일곱 가지의 수행이 된다. <삼십칠도품경>에서 설하고 있는 이들 수행은 <안반수의경>의 십힐(十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상응 관계는 다음과 같다.

 

수식(數息)-사념처(四念處), 상수(相隨)-사정근(四正勤), 지(止)-사여의족(四如意足), 관(觀)-오근(五根), 환(還)-오력(五力), 정(淨)-칠각지(七覺支), 사제(四諦)-팔정도(八正道)이상과 같은 과정으로 안반수의 즉 수식관으로 선악(善惡)·내외(內外)·음양(陰陽)·정사(正邪)·직곡(直曲)·귀천(貴賤)·고금(古今)·고저(高低)·정예(淨穢)·생사(生死)·승침(昇沈)·유루무루(有漏無漏)·강약(强弱)·동리(同異)·일다(一多)·단복(單複)·평등차별(平等差別)·극락지옥(極樂地獄)·남북(南北)·동서(東西)·표리(表裏)·미오(迷悟)·시비(是非)·화복(禍福)·심천(深淺)·능소(能所)·문답(問答)·병약(病藥)·성괴(成壞)·명암(明暗)·흑백(黑白)·피차(彼此)·본말(本末)등의 상대적인 것을 수식(數息)의 조화통일로 선정(禪定)을 수행하면 청정무위(淸淨無爲)의 경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6년 동안의 고행 끝에 고행을 포기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의 고행자들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누리고자 했지만,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인생고(人生苦)를 해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침내 고행을 버리고 즐거운 수행을 창안하였다. 극기가 아니라 삶 속에서 그대로 삶과 죽음의 모순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방법을 선보인 것이다.

 

이 안반념법(安般念法)은 불교의 독특한 수행법의 하나로서 호흡에 정신을 집중시키면서 처음에는 수를 세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수를 떠나서 무아(無我)의 세계로 들어가 삼매(三昧)에 이르는 선법(禪法)의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밑 금강보좌(金剛寶座)에 앉으시어 마지막 깨달음을 얻으시게 되는 동기가 되는 것도 이 안반념법이었던 것이다.

 

<안반수의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이 안반수의를 수행하면서 자재와 자비를 얻었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자재(自在)란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어 서로 대립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어디에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유로움이다. 주관이 객관에 끌리면 객관적인 어떤 대상에게 부림을 당하게 되어 자재를 잃게 된다.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면 대립이 없어지므로 객관이 주관의 세계로 들어와 나의 것이 된다. 이러한 세계를 자재의 세계라고 하며, 그 어떤 대상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와 객이 없는 이 세계에서는 너와 내가 대립되지 않기 때문에 자비심이 솟아난다.

 

 

 

이타의 자비심이 근본마음
짧은 들숨 긴 날숨 습관되게 정진


자비심(慈悲心)이란 일체 중생이 나와 한 몸인 그런 사랑이며, 모든 생명에 대한 공감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환희 속에서 삶의 존엄성을 공감하면서 숨의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삶의 가치가 새롭게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세계인 것이다. 안반수의를 통해 얻은 자비심은 인간 모두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근본 마음이며, 나 이외의 모든 것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이타(利他)의 마음이다. 불교에서의 이와 같은 궁극의 세계가 호흡이라는 생명 현상 속에 있음을 부처님께서는 가르쳐 주고 있다.

 

청정한 것이 밖으로부터 들어와 나의 것이 되고, 안에서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들은 호흡을 통하여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면서 호흡을 하게 되면 반드시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호흡을 중요시하는데, 이러한 수식(數息)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죄에 이르는 것이요, 둘째는 행이 공교롭지 않은 것이요, 셋째는 정진하지 않는 것이다. 들숨은 짧고 날숨은 길고, 생사에 따르는 바가 없는 것을 도의 마음으로 삼으며,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을 죄로 삼는다.

 

죄는 밖에 있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호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세 가지 원인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호흡이란 내적으로 건강과 정신상태에 따라서 좌우될 뿐만 아니라 외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첫째의 원인은 호흡을 방해하는 장애가 닥쳐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잡념이 생기거나 불안할 때는 호흡이 흐트러진다. 둘째 호흡의 방법이 잘못되었을 경우이다. 셋째는 바르게 호흡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호흡에 장애가 되는 것을 여기서는 생각이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혼란하면 호흡이 흩어진다. 그 원인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들어오는 자극에 있다. 생각이 일어나서 없어지고, 없어졌다가는 다시 일어나서 정신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호흡의 장애가 죄이다. 죄는 마음 속에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외부로부터 오게 된다.

 

호흡의 방법이 공교롭지 않다는 것은 들숨이 짧고 날숨이 길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올바른 방법을 취해야만 복압력이 생겨 자율신경을 강화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정신을 안정시키게 된다. 짧은 들숨과 긴 날숨을 습관화시킬 때까지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호흡을 위해서는 그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 방법이 실행되려면 조건 또한 갖추어져야 한다. 또한 실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진(精進)이다. 이상의 조건들이 호흡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활 전반에도 적용된다.

 

들어오는 숨이 길어질 때가 있는데, 이는 마음이 수식을 떠나 다른 곳에 가 있을 경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경우, 어떤 사물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경우, 수를 세다가 까먹었을 경우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경우들은 모두 숨을 세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다른 곳에 있으면 호흡은 평상시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들어오는 숨은 짧고 급하게 들어오는 것이어야 하며, 나가는 숨은 길고도 충분하면 들어오는 숨은 자연히 그 반동에 의해서 급하고 짧아지게 된다. 이때 마음이 절대 숨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긴 날숨은 횡경막의 압축력을 주어 모든 장기의 정맥혈을 심장으로 유입시키고, 숨이 들어오면서 자동적으로 많은 산소를 내포한 동맥혈을 여러 장기로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호흡은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나고드는 숨에 해탈의 길이…

호흡 청정해지면 일체 행동이 곧 道


<안반수의경>의 수행법인 안반념법(安般念法)은 먼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장애물을 없애기 위하여 숨을 세는 수식(數息)과, 호흡이 원만하고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조건을 맞추어주는 상수(相隨)와, 우리의 마음이 호흡과 하나가 되어 조화 통일되어 한 곳으로 머물게 하는 지(止) 등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이 셋이 연(緣)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면서 그 숨과 더불어 마음과 몸의 움직임을 그에 따라서 관찰하고, 몸과 정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이러한 관(觀)을 통해서 일체의 신상을 알게 되면, 이것에 의해서 호흡이 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순일한 자아로 돌아와서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된다. 이것이 환(還)이다.

 

여기에서 오온(五縕)이 모두 공(空)하게 되고, 호흡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고 전혀 의식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의식되지 않고 출입하는 호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면, 그 자체가 안락이고 즐거움에 머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가 이루어질 때 일거수 일투족이 있는 그대로 도(道)가 되는 것이다. 이때의 호흡은 모든 것을 정화하고, 어떠한 장애나 번뇌가 없는 깨달음에 머물게 되는데, 이것이 정(淨)이다. 이러한 여섯 단계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데, 이러한 과정을 경전에서는 땅(地, 數)과 쟁기(犁, 隨)와 멍에(車+巨, 止)와 씨앗(種, 觀)과 비(雨, 還)와 근행(勤行, 淨)에 비유하고 있다.

 

이처럼 <안반수의경>의 상권에서는 호흡 명상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원론(原論)을 이야기하였고, 하권은 각각을 설명하는 각론(各論)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상권은 주로 호흡의 원리와 호흡의 수련 단계에 대한 설명에 초점을 두고 있고, 하권은 보다 세분화시켜서 수련의 단계와 각각의 단계에 상응되는 깨달음의 경지를 이야기하고, 그 효과와 공덕 등을 상세히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권에서는 불도 수행의 서른일곱 가지의 단계인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의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 삼십칠도품의 수행이 완성되었을 때 호흡의 청정함을 얻게 되는 것이고,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고 설하고 있다. 이것은 높은 곳을 올라가려는 사람이 37개의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서 드디어는 정상에 도달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부처님께서는 안반수의의 요지를 “비구들이여,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마음을 두는 것을 수습하여 널리 익히면 큰 효과를 얻고 큰 공덕이 있느니라. 여러 비구여, 입출식을 수습하고 널리 익히면 칠각지를 원만히 한다.

 

칠각지를 수습하고 널리 익히면 명(明)·신통(神通)과 해탈(解脫)을 원만케 한다.”이것은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에 마음이 같이 머물면, 이것이 사념처에 원만한 것으로서 입출식념(入出息念)은 행하고 머물고 눕고 앉음에 항상 마음이 대상과 떠나지 않으면서 마음이 그것과 같이하여 들어오는 숨 속에서 신·수·심·법이 나와 하나가 되고, 모든 것에 걸리지 않으며 심신이 움직이지 않는 속에서 승묘한 법 그대로의 세계에 머물게 된다. 여기에서 지혜를 얻으며, 이 지혜를 얻어서 해탈, 곧 열반적정(涅槃寂精)에 이르러 깨달음의 대 광명을 발하게 되는 것으로 그 끝을 맺고 있다.

 

■해인사 승가대 교수

 

 

 



출처 : 무인아제
글쓴이 : 무인아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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