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스크랩] 제22상윳따 - 제12장 설법자(법사) 품(Dhammakathika Vagga. S22:113-S22:125)

수선님 2018. 4. 8. 11:53

                                            제12장 설법자 품

                                        Dhammakathika-vagga


무명 경(S22:113)

Avijj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무명, 무명’이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이고 어떻게 해서 무명에 빠지게 됩니까?”


4.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물질(물질적 요소)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道)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느낌(감수작용)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인식(지각작용)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형성(형성작용)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의식(식별작용)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를 일어 무명이라 하고 이렇게 해서 무명에 빠지게 된다.”


명지 경(S22:114)

Vijj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명지, 명지’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명지이고 어떻게 해서 명지를 얻게 됩니까?”


4.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수행)을 꿰뚫어 안다.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느낌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인식을 꿰뚫어 알고,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인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형성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비구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의식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명지라 하고 이렇게 해서 명지를 얻게 된다.”


설법자 경(S22:115)

Dhammakathi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는 비구, 법을 설하는 비구 ’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법을 설하는 비구가 됩니까?”


4. “비구여, 만일 물질을 염오(싫어하여 떠나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물질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물질을 염오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물질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물질을 염오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느낌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느낌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느낌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느낌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느낌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느낌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인식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인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인식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인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인식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인식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형성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형성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형성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한 형성을 사라지게 하고 형성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형성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형성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의식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의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의식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의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의식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의식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설법자 경2(S22:11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는 비구, 법을 설하는 비구’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법을 설하는 비구가 되고, 어떤 것이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이며, 어떤 것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입니까?”


4. “비구여, 만일 물질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물질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물질을 염오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물질을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물질을 염오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물질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느낌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느낌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느낌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느낌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느낌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느낌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인식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인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인식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인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인식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인식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형성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형성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형성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한 형성을 사라지게 하고 형성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형성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형성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비구여, 만일 의식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의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의식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의식을 소멸하기 위해서 닦으면 그를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의식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고 의식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속박 경(S22:117)

Bandhan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모르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모르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여기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물질의 속박에 묶이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고, 이 언덕을 보지 못하고, 저 언덕을 보지 못하고, 속박되어 늙고 속박되어 죽고 속박되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모르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모르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느낌을 자아라고 여기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느낌의 속박에 묶이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고, 이 언덕을 보지 못하고, 저 언덕을 보지 못하고, 속박되어 늙고 속박되어 죽고 속박되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모르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모르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인식을 자아라고 여기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인식의 속박에 묶이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고, 이 언덕을 보지 못하고, 저 언덕을 보지 못하고, 속박되어 늙고 속박되어 죽고 속박되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모르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모르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형성을 자아라고 여기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배우지 못한 범부는 형성의 속박에 묶이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고, 이 언덕을 보지 못하고, 저 언덕을 보지 못하고, 속박되어 늙고 속박되어 죽고 속박되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모르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모르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의식을 자아라고 여기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고, 으ㅢ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의식의 속박에 묶이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고, 이 언덕을 보지 못하고, 저 언덕을 보지 못하고, 속박되어 늙고 속박되어 죽고 속박되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알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물질을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이 언덕을 보고, 저 언덕을 보아서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한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알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느낌을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느낌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이 언덕을 보고, 저 언덕을 보아서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한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알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인식을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인식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이 언덕을 보고, 저 언덕을 보아서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한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알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형성을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형성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이 언덕을 보고, 저 언덕을 보아서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한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을 알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알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의식을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의식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안팎의 속박에 묶이지 않고, 이 언덕을 보고, 저 언덕을 보아서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한다고 한다."


질문 경1(S22:118)

Paripucchi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느낌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인식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인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형성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형성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질문 경2(S22:119)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물질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느낌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느낌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인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인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형성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형성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의식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싫어하여 떠나고)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족쇄 경(S22:120)

Saṁyoja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족쇄의 대상이 되는 법들과 족쇄에 대해서 설하리라.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족쇄의 대상이 되는 법들이며, 어떤 것이 족쇄인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족쇄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족쇄이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족쇄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족쇄이다.

비구들이여, 인식은 족쇄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족쇄이다.

비구들이여, 형성은 족쇄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족쇄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족쇄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족쇄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족쇄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이것이 족쇄이다.”


취착 경(S22:121)

Upad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들과 취착에 대해서 설하리라.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들이며, 어떤 것이 취착인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취착이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취착이다.

비구들이여, 인식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취착이다.

비구들이여, 형성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취착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이며, 거기에 대한 욕탐이 취착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들이며, 이것이 취착이다.”


계 경(S22:122)

Sīl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띠따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있었다.


2. 그 무렵 마하꼿띠따 존자가 저녁 무렵에 삼매에서 깨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따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계를 지키는 비구는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까?”

“도반 꼿띠따여, 계를 지키는 비구는 다섯 가지 무더기(오취온)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어떤 것이 다섯입니까? 

물질의 무더기, 느낌의 무더기, 인식의 무더기, 형성의 무더기,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도반 꼿티따여, 계를 지키는 비구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계를 지키는 비구가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니면 예류과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4.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예류자가 된 비구는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까?”

“도반 꼿띠따여, 예류자가 된 비구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그런데 예류자가 된 비구가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잘 지니면 일래과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5.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일래자가 된 비구는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됩니까?”

“도반 꼿띠따여, 일래자가 된 비구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그런데 일래자가 된 비구가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니면 불환과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6.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불환자가 된 비구는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까?”

“도반 꼿띠따여, 불환자가 된 비구도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그런데 불환자가 된 비구가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니면 아라한과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7.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아라한은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됩니까?”

“도반 꼿띠따여, 아라한도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아라한이 다시 더 해야 할 것이란 없고 더 보태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법들을 닦고 많이 수행하면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고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이 있게 됩니다.”

 

잘 배움 경(S22:123)

Sutav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띠따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2. 그 무렵 마하꼿띠따 존자가 저녁 무렵에 삼매에서 깨어나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따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잘 배운 비구는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까?”

“도반 꼿띠따여, 잘 배운 비구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어떤 것이 다섯입니까? 

물질의 무더기, 느낌의 무더기, 인식의 무더기, 형성의 무더기,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도반 꼿티따여, 계를 지키는 비구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잘 배운 비구가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니면 예류과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4.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예류자가 된 비구는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까?”

“도반 꼿티따여, 예류자가 된 비구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그런데 예류자가 된 비구가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잘 지니면 일래과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5.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일래자가 된 비구는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됩니까?”

“도반 꼿띠따여, 일래자가 된 비구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그런데 일래자가 된 비구가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니면 불환과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6.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불환자가 된 비구는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까?”

“도반 꼿띠따여, 불환자가 된 비구도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그런데 불환자가 된 비구가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니면 아라한과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7.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아라한은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됩니까?”

“도반 꼿띠따여, 아라한도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 꼿띠따여, 아라한이 다시 더 해야 할 것이란 없고 더 보태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법들을 닦고 많이 수행하면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고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이 있게 됩니다.”

 

깝빠 경1(S22:124)

Kapp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깝빠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깝빠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하여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까?”

 

4.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형성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보아야 한다.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깝빠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야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깝빠 경2(S22:125)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깝빠 존자가 세존께 찾아왔다. 와서는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깝빠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마음은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제거하게 되고,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넘어 원만하게 잘 해탈하게 됩니까?”


4.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지혜)로 본 뒤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 뒤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 뒤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형성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 뒤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 


깝빠여,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 뒤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 


깝빠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야 마음은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하여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번뇌를 제거하게 되고,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넘어 원만하게 잘 해탈하게 된다.”



제12장 설법자 품이 끝났다. 두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무명 ② 명지 ③ ~ ④ 설법자 ⑤ 속박 ⑥ ~ ⑦ 질문 ⑧ 족쇄 ⑨ 취착 ⑩ 계 ⑪ 잘 배움 

⑫ ~ ⑬ 깝빠이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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