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계에서 호흡의 들고 나고 시작, 중간 끝이라는 개념이 모두 사라진다. 이러한 것들은 물리적 육체의 호흡과 관련되었던 조악한 개념이다. 이제 그런 것들은 사라져 버렸다. 당신이 아직 여전히 들고 나는 숨을 쉬고 있지만 숨을 쉬는 것에서 숨을 아는 것으로 초점이 바뀌었다. 이것은 한 방향으로만 아주 부드럽고 완만하게 지속된다.
이것은 톱질을 하는 목수에 비유될 수 있다. 목수가 나무 조각을 자르려 할 때 목수는 손잡이서부터 톱날 끝까지 보고는 있다. 그가 이제 나무를 자르려 하는데 집중하면서 그의 주의는 톱날이 나무에 닿아있는 그 부분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선다. 손잡이와 톱날의 다른 부분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잠시 후, 그는 나무와 맞닿아있는 그 부분의 톱날만을 볼 수 있다. 다른 부분의 톱날은 그의 왼쪽이나 오른 쪽에 던져지며 그의 인지권 밖으로 떨어진다. 그는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 톱날이 시작점에 있던지 그 중간에 있든지 아니면 끝에 있든 지는 이제 관심 밖이다. 그런 개념들은 초월되어진다.
같은 방법으로 이 일곱째 단계에서는 수행자는 이제 호흡의 한점만을 알고 있다. 그대는 그것이 들숨인지 날숨인지 시작인지 중간인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마음이라는 감각기관으로 호흡을 명료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호흡으로 인한 이 투명한 환희심과 행복감은 마음 깨어있음(sati )을 예리하고 명료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단순명료함은 참으로 깊은 평화를 준다.
니미타의 출현 ; 이것은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선정수행에 있어서 밝고 고정되고 선명한 니미타는 필수조건이다.
니미타가 왜 탁하고 더럽고 고정되지 않는가 ?
이것은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니미타는 그대 마음의 반영이다.
여기서 우리는 계율의 중요성을 상기해야 한다. 니미타가 더럽고 탁하고 고정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신-구-의 삼업을 돌아보고 그들을 청정하게 해야한다.
베푸는 성향의 사람, 자비로운 사람, 강한 신심의 사람, 소위 말하는 순수한 사람은 아주 밝고 고정된 니미타를 얻게 된다.
니미타가 선명치 않을 때는 자신의 과거 선행을 떠올리거나 메타 수행을 하거나 불법승 삼보를 관조하며 마음을 고양시킨다. 마음이 고양되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간다.
-아잔 브라흐마왕소의 아나빠나사띠 숟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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