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주제(S44) 설명하지 않음[無記. 무기] 상윳따
Avyākata-saṁyutta
케마 경(S44:1)
Kem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케마 비구니는 꼬살라에서 유행을 하다가 사왓티와 사께따 사이에 있는 또라나왓투에 거주하였다. 또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사께따로부터 사왓티로 가다가 사왓티와 사께따 사이에 있는 또라나왓투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어떤 사람을 불러서 말했다.
註) 케마 비구니 – 큰 통찰지를 가진 비구니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려진다. 케마 장로니는 맛다 지방에 있는 사갈라의 왕족 출신이다. 그녀는 뛰어난 외모를 가졌으며 빔비사라 왕의 첫째 왕비였다.
3. “여봐라. 가서 오늘 내가 친견할 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는지 알아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왕이시여"라고 그 사람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대답한 뒤 온 또라나왓투를 구석구석 다녀봤지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친견할 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지 못했다.
4. 그러다가 그 사람은 케마 비구니가 또라나왓투에 거주하는 것을 알았다. 그런 뒤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갔다. 가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또라나왓투에는 폐하께서 친견할 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습니다.
왕이시여, 그런데 케마라는 비구니가 있는데 그 비구니는 그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제자입니다. 그 비구니에게는 ‘그 비구니는 현명한 분이고 영민한 분이며 슬기로운 분이고 많이 배운 분이며 명료하게 표현하는 분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다.’라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케마 비구니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5. “케마 비구니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케마 비구니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케마 비구니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케마 비구니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6. “케마 비구니여, 그런데 제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케마 비구니께서는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니다. 제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7. “대왕이여, 그렇다면 이제 제가 그대에게 다시 물어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보십시오.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에게 어떤 회계사나 경리인이나 계산을 하는 자가 있는데 그가 강가 강의 모래를 헤아려서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백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천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십만의 모래알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케마 비구니여.”
“대왕이여, 그렇다면 그대에게 어떤 회계사나 경리인이나 셈하는 자가 있는데 그가 큰 바다의 물을 헤아려서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양에 해당하는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백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천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십만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케마 비구니여.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하면, 큰 바다는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기 때문입니다.”
8.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물질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물질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느낌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느낌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느낌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인식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인식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인식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형성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형성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형성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
대왕이여, 이와 같이 사람들이 의식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의식을 여래께선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의식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9.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케마 비구니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10. 그 후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대왕이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
“세존이시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대왕이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11. “세존이시여, 그런데 제가 ‘세존이시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여쭈면 세존께서는 ‘대왕이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제가 '세존이시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대왕이여,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제가 '세존이시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대왕이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제가 '세존이시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대왕이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12. “대왕이여, 그렇다면 이제 제가 그대에게 다시 물어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 보십시오.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에게 어떤 회계사나 경리인이나 계산을 하는 자가 있는데 그가 강가 강의 모래를 헤아려서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백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천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십만의 모래알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에게 어떤 회계사나 경리인이나 계산을 하는 자가 큰 바다의 물을 헤아려서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양에 해당하는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백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천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십만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하면, 큰 바다는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물질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물질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느낌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느낌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느낌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인식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인식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인식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형성으로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형성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종려나무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형성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의식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의식을 여래는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 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대왕이여, 여래는 의식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였습니다. 여래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13. 이렇게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대왕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세존이시여, 한번은 제가 케마 비구니에게 다가가서 이 뜻에 대해 물었습니다. 케마 비구니도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이런 단어와 이런 문장으로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註) ‘으뜸가는 구문‘이란 열반을 뜻한다.
14.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아누라다 경(S44:2)
Anurād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의 큰 숲[大林]에 있는 중각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아누라다 존자는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숲속의 토굴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많은 외도 유행승들이 아누라다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아누라다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외도 유행승들은 아누라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아누라다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여래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로 천명하십니다.”
4. 이렇게 말하자 아누라다 존자는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그러나 여래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로 천명하시지 않습니다.”
5. 이렇게 말하자 외도 유행승들은 아누라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비구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인 모양이다. 만일 장로라면 어리석고 우둔한 자일 것이다.”
6.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아누라다 존자에게 신참이라는 말과 어리석다는 말로 모욕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외도 유행승들이 나간 지 오래지 않아서 아누라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 외도 유행승들이 나에게 더 질문을 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여,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 될까? 세존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동료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될까?’라고.
7. 아누라다 존자는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누라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숲속의 토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외도 유행승들이 저에게 찾아와서 '도반 아누라다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여래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로 천명하십니다.”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저는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그러나 여래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로 천명하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외도 유행승들은 제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비구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인 모양이다. 만일 장로라면 어리석고 우둔한 자일 것이다.’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제게 신참이라는 말과 어리석다는 말로 모욕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습니다.
외도 유행승들이 나간 지 오래지 않아서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그 외도 유행승들이 나에게 더 질문을 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여,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 될까? 세존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동료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될까?’라고.”
8.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9. “아누라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아누라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아누라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아누라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형성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아누라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10. “아누라다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서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떠한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11.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을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느낌을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 그대는 인식을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 그대는 인식을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형성을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의식을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2.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 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느낌 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인식 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형성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의식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3.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과 느낌과 인식과 형성과 의식이 모두 합해진 것이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4.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면 그대는 물질도 아니요 느낌도 아니요 인식도 아니요 형성도 아니요 의식도 아닌 것이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5. “아누라다여, 이처럼 그대는 지금 여기(現法, 현재)에서도 여래는 실재하고 견고하다고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대가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즉 ‘도반들이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여래께서는 이러한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로 천명하십니다.’라고.”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6. “장하고 장하구나, 아누라다여. 아누라다여, 나는 이전에도 지금에도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천명할 뿐이다.”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1(S44:3)
Sāriputtakoțțhi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따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 다.
2. 그 무렵 마하꼿티따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따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4. “ 도반 사리뿟따여, 그런데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5. “도반 꼿티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물질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물질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물질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물질에 대한 것입니다.
도반 꼿티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느낌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느낌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느낌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느낌에 대한 것입니다.
도반 꼿티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인식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인식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인식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인식에 대한 것입니다.
도반 꼿티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형성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형성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형성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형성에 대한 것입니다.
도반 꼿티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의식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의식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의식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의식에 대한 것입니다.”
6. “도반 꼿티따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2(S44:4)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따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2. 그 무렵 마하꼿티따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따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4. “도반 사리뿟따여, 그런데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5. “도반 꼿티따여, 물질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물질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道)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꽃티따여,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느낌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꼿티따여, 인식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인식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인식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꼿티따여, 형성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형성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꼿티따여, 의식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의식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6. “도반 꼿티따여, 물질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물질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물질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꼿티따여,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느낌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느낌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느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꼿티따여, 인식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인식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인식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인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꼿티따여, 형성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형성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형성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형성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꼿티따여, 의식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의식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의식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의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7. “도반 꼿티따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3(S44:5)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따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2. 그 무렵 마하꼿티따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따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4. “도반 사리뿟따여, 그런데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 꼿티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5. “도반 꼿티따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열의를 여의지 못하고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열병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꼿티따여, 느낌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열의를 여의지 못하고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열병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꼿티따여, 인식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열의를 여의지 못하고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열병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꽃티따여, 형성에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열의를 여의지 못하고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열병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꼿티따여, 의식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열의를 여의지 못하고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열병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6. “도반 꼿티따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열의를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열병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꼿티따여, 느낌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열의를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열병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꽃티따여, 인식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열의를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열병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꽃티따여, 형성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열의를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열병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꽃티따여, 의식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열의를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열병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7. “도반 꼿티따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4(S44: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따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2.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하꼿티따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마하꼿티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마하꼿티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꼿티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
“도반 사리뿟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꼿티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꼿티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꼿티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4. “도반 꼿티따여, 그런데 제가 ‘도반 꼿티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 사리뿟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꼿티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도반 사리뿟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 꼿티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도반 사리뿟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 꼿티따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 사리뿟따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5. “도반 사리뿟따여, 물질을 즐거워하고 물질을 탐닉하고 물질을 기뻐하는 자는 물질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느낌을 즐거워하고 느낌을 탐닉하고 느낌을 기뻐하는 자는 느낌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인식을 즐거워하고 인식을 탐닉하고 인식을 기뻐하는 자는 인식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형성을 즐거워하고 형성을 탐닉하고 형성을 기뻐하는 자는 형성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의식을 즐거워하고 의식을 탐닉하고 의식을 기뻐하는 자는 의식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6. “도반 사리뿟따여, 물질을 즐거워하지 않고 물질을 탐닉하지 않고 물질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물질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느낌을 즐거워하지 않고 느낌을 탐닉하지 않고 느낌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느낌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인식을 즐거워하지 않고 인식을 탐닉하지 않고 인식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인식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형성을 즐거워하지 않고 형성을 탐닉하지 않고 형성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형성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의식을 즐거워하지 않고 의식을 탐닉하지 않고 의식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의식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7. “도반 사리뿟따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8. “도반 꼿티따여 그러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존재를 즐거워하고 존재를 탐닉하고 존재를 기뻐하는 자는 존재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존재를 즐거워하지 않고 존재를 탐닉하지 않고 존재를 기뻐하지 않는 자는 존재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9. “도반 사리뿟따여, 이것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10. “도반 꼿티따여, 그러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또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취착을 즐거워하고 취착을 탐닉하고 취착을 기뻐하는 자는 취착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취착을 즐거워하지 않고 취착을 탐닉하지 않고 취착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취착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1. “도반 사리뿟따여, 이것도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12. “도반 꼿티까여, 그러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또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갈애를 즐거워하고 갈애를 탐닉하고 갈애를 기뻐하는 자는 갈애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갈애를 즐거워하지 않고 갈애를 탐닉하지 않고 갈애를 기뻐하지 않는 자는 갈애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3. “도반 사리뿟따여, 이것도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14. “도반 꼿티따여, 그러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또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서 그대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을 원하십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갈애를 부수어 해탈한 비구에 대해서는 그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목갈라나 경(S44:7)
Moggal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2. 그 무렵 왓차곳따 유행승이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유한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유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무한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무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생명은 몸과 같은 것입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생명은 몸과 같은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생명과 몸은 다른 것입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4. “목갈라나 존자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까?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나 사문 고따마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5. “왓차여, 외도 유행승들은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합니다.
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합니다.
코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합니다.
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합니다.
몸을 두고‘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합니다.
마노[마음.意]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왓차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서는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합니다.
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합니다.
코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합니다.
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합니다.
몸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합니다.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여래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6. 왓차곳따 유행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7.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세상은 유한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유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세상은 무한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무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생명은 몸과 같은 것입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은 몸과 같은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생명과 몸은 다른 것입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8.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고따마 존자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9. “왓차여, 외도 유행승들은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코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몸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그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왓차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코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혀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몸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그래서 여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10. 이렇게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저는 사문 마하목갈라나에게 다가가서 이 뜻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문 마하목갈라나도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이런 단어와 이런 문장으로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11.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으뜸가는 구문(열반을 뜻함)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왓차곳따 경(S44:8)
Vacchago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세상은 유한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유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세상은 무한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무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생명은 몸과 같은 것입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은 몸과 같은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생명과 몸은 다른 것입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4.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고따마 존자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5. “왓차여, 외도 유행승들은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왓차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6. 왓차곳따 유행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7.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유한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유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무한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무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목갈라나 존자여, 생명은 몸과 같은 것입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은 몸과 같은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목갈라나 존자여, 생명과 몸은 다른 것입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목갈라나 존자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에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8. “목갈라나 존자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까?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나 사문 고따마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9. “왓차여, 외도 유행승들은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왓차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서는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래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10. 이렇게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말하자 왓차꼿다 유행승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이롭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놀랍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여기 저는 사문 고따마께 다가가서 이 뜻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문 고따마께서도 목갈라나 존자가 설명한 것처럼 이런 단어와 이런 문장으로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11. 경이롭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놀랍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토론장 경(S44:9)
Kutūhalasāl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3. “고따마 존자시여, 근래에 며칠간 여러 외도 사문⦁바라문⦁유행승들이 토론장에 모여서 함께 자리를 했는데 그때 이런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그분 뿌라나 깟사빠는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스승)로 인정됩니다. 그는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나는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도 그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분 막칼리 고살라도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스승)로 인정됩니다. 그는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나는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도 그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분 니간타 나따뿟따도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스승)로 인정됩니다. 그는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나는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도 그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분 산자야 벨랏티뿟따도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스승)로 인정됩니다. 그는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나는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도 그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분 까꾸다 깟짜야나도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스승)로 인정됩니다. 그는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나는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도 그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분 아지따 께사깜발리도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스승)로 인정됩니다. 그도 제자가 임종한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도 그 제자가 임종한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4. “그분 사문 고따마도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스승)로 인정됩니다. 그도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는 그 제자가 임종한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갈애를 잘라버렸다. 족쇄를 풀어버렸다. 자만을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어버렸다.’라고만 설명합니다.’라고.”
5. “고따마 존자시여, 그래서 제게는 ‘도대체 사문 고따마의 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있고 의심이 있습니다.”
“왓차여, 그대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대가 의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의문스러운 것에 대해서 그대의 의심이 일어난 것이다.
왓차여, 나는 천명하노니 취착이 있는 자에게 다시 태어남은 있지만 취착하지 않는 자는 그렇지 않다.
왓차여 예를 들면 연료가 남아있는 불은 타오르지만 연료가 없으면 타오르지 않는 것과 같다.
왓차여, 그와 같이 취착이 있는 자에게 다시 태어남은 있지만 취착하지 않는 자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천명한다.”
6. “고따마 존자시여, 불이 바람에 날려서 멀리 가서 붙을 때는 어떤 것이 연료라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천명하십니까?”
“왓차여, 불이 바람에 날려서 멀리 가서 붙을 때는 바람이 연료라고 나는 천명한다.
왓차여, 그때는 바람이 연료이기 때문이다.”
7.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중생이 이 몸을 내려놓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을 때는 어떤 것이 연료라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천명하십니까?”
“왓차여, 중생이 이 몸을 내려놓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을 때는 갈애가 연료라고 나는 천명한다.
왓차여, 그 경우에는 갈애가 연료이기 때문이다.”
아난다 경(S44:10) - 자아는 있는가?
Ānand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자아는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침묵하셨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자아는 없습니까?”
두 번째에도 세존께서는 침묵하셨다.
그러자 왓차곳따 유행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2. 아난다 존자가 왓차곳따 유행승이 나간 지 오래지 않아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왜 왓차곳따 유행승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난다여, 왓차곳따 유행승이 ‘자아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내가 만일 ‘자아는 있다.’라고 대답했다면 이것은 영속론자인 사문.바라문들을 편드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아난다여, 왓차곳따 유행승이 ‘자아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내가 만일 ‘자아는 없다.’라고 대답했다면 이것은 단멸론자인 사문.바라문들을 편드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3. “아난다여, 왓차곳따 유행승이 ‘자아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내가 만일 ‘자아는 있다.’라고 대답했다면 이것은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든 법들은 무아다[諸法無我].’라는 지혜를 일어나게 하는 것과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왓차곳따 유행승이 ‘자아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내가 만일 ‘자아는 없다.’라고 대답했다면 이미 미혹에 빠져있는 왓차곳따 유행승은 ‘오, 참으로 이전에 있던 나의 자아가 지금은 없구나.’라고 하면서 다시 더 크게 미혹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비야 깟짜나 경(S44:11)
Sabhiyakacc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사비야 깟짜나 존자가 냐띠까에서 벽돌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왓차곳따 유행승이 사비야 깟짜나 존자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사비야 깟짜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사비야 깟짜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깟짜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깟짜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깟짜나 존자여, 세상은 유한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유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깟차나 존자여, 세상은 무한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무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깟차나 존자여, 생명은 몸과 같은 것입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생명은 몸과 같은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깟차나 존자여, 생명과 몸은 다른 것입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깟차나 존자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깟차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깟차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깟짜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2. “깟짜나 존자여,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물질을 가졌다[有色].’라거나 ‘물질을 가지지 않았다[無色].’라거나 ‘인식을 가졌다[有想].’라거나 ‘인식을 가지지 않았다[無想].’라거나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非有想非無想].’라고 천명하는 데는 원인과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과 조건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남김없이 소멸해버린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를 두고 ‘물질을 가졌다.’라거나 ‘물질을 가지지 않았다.’라거나 ‘인식을 가졌다.’라거나 ‘인식을 가지지 않았다.’라거나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할 수 있겠는가?”
5. “깟짜나 존자여, 그대는 출가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벗이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삼년 되었습니다.”
“깟짜나 존자여, 이 정도 된 분이 이렇게 보는 것은 많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를 넘어선 분에 대해서는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S44)가 끝났다. 여기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케마 ② 아누라다 네 가지 ③ ~ ⑥ 사리뿟따와 꼿티따 ⑦ 목갈라나 ⑧ 왓차곳따 ⑨ 토론장
⑩ 아난다 ⑪ 사비야 깟짜야나이다.
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S44)가 끝났다.
'상윳따 니까야(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45상윳따 - 제2장 머묾 품(S45:11-S45:20. Vihāra-vagga) (0) | 2018.04.29 |
---|---|
[스크랩] 제45상윳따 - 도 상윳따(Magga-s35:aṁyutta) - 제1장 무명 품(S45:1-S45:10. Avijjā-vagga) (0) | 2018.04.29 |
[스크랩] 제43상윳따 - 제2장 두 번째 품 Dutiya-vagga (0) | 2018.04.22 |
[스크랩] 제43상윳따 - 무위 상윳따 (Asaṅkhata-saṁyutta) - 제1장 첫 번째 품(S43:1-S43;11. Paṭhama-vagga) (0) | 2018.04.22 |
[스크랩] 제42상윳따 - 우두머리 상윳따(S42:1-S42:13. Gāmaṇi-saṁyutta) (0) | 2018.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