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에 대한 긴 경
Mn122 MAJJHIMA NIKâYA III III. 3. 2. Mahàsu¤¤atasutta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게서는 삭까의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원림에 머물고 계셨다.
2.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깟빌라왓투로 탁발을
가셨다. 깟빌라왓투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낮 동안 명상을 하기 위해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건립한 승원으로 가셨다.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건립한 승원에는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세존께서는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건립한 승원에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시고 이런 생각이 드셨다.
'참으로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건립한 승원에는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구나. 여기에 많은
비구들이 머물고 있는가?'
3.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여러 비구들과 함게 삭까 사람 가따가 건립한 승원에서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명상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삭까 사람
가따가 건립한 승원으로 가셔서 마련해 드린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셔서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참으로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건립한 승원에는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많은 비구들이 머물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건립한 승원에는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많은 비구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가사를 만드는 시기입니다."
"아난다여, 참으로 비구가 대중과 사는 것을 좋아하고 대중과 사는 것을 즐기고 대중과 사는 즐거움에 몰두하며, 대중을 좋아하고 대중을 즐기고 대중의 즐거움에 몰두하면 그는 빛나지 않는다.
아난다여, 참으로 비구가 대중과 사는 것을 좋아하고 대중과 사는 것을 즐기고 대중과 사는
즐거움에 몰두하며, 대중을 좋아하고 대중을 즐기고 대중의 즐거움에 몰두하면서, 출리의
즐거움과 떨쳐버림의 즐거움과 고요함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려움 없이 얻으리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나다여, 그러나 비구가 대중에서 멀리 벗어나 혼자 머물 때 출리의 즐거움과 떨쳐버림의
즐거움과 고요함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려움
없이 얻으리라는 것은 가능하다."
"아난다여, 참으로 비구가 대중과 사는 것을 좋아하고 대중과 사는 것을 즐기고 대중과 사는
즐거움에 몰두하며, 대중을 좋아하고 대중을 즐기고 대중의 즐거움에 몰두하면서 일시적이고
고요한 마음의 해탈이나 일시적이지 않고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을 구족하여 머물 것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난다여, 그러나 비구가 대중에서 멀리 벗어나 혼자 머물 때 일시적이고 즐거운 마음의 해탈이나
일시적이지 않고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을 구족하여 머물 것이라는 것은 가능하다."
"아난다여, 형색을 즐기고 그것에 애착을 가질 때, 형색은 변하고 바뀌어가므로 거기에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형색은 단 하나도 나는 본 적이
없다."
5. "아난다여, 여래는 어떤 표에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안으로 공을 구족하여 머무는 것을 바르게 깨달았다.
아난다여, 여래가 이렇게 머물 때에 비구나 비구니나 청신사나 청신녀나 왕이나 대신이나 외도나 외도의 제자들이 찾아오면, 여래는 자신의 마음을 멀리 떠남으로 향하고 멀리 떠남으로 기울이고 멀리 떠남에 기대고 은둔하고 출리를 기뻐하고 번뇌의 원인이 될 모든 법들을 제거한 뒤, 반드시 그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과 관련된 말을 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비구가 만일 안으로 공을 증득하여 머물리라고 원한다면 그는 안으로
마음을 고정시키고 안정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해야 한다.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안으로 마음을 고정시키고 안정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하는가?"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해로운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 미세한 사유 지속적 고찰)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희열(기쁨)과 행복(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 고찰.伺)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여기 비구는 희열이 떠나 평정(평온)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
(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여기 비구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희열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안으로 마음을 고정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한다."
"아난다여, 그는 안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한다.
그가 안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그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내가 안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나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는 밖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한다.
그가 밖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그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내가 밖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나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는 안팎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한다.
그가 안팎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그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내가 안팎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나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는 흔들림 없음에 마음을 집중한다.
그가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집중할 때 그의 마음이 흔들림 없음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내가 안으로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집중할 때 나의 마음이 흔들림 없음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러면 그 비구는 이전처럼 그 처음 삼매의 표상에 안으로 마음을 고정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해야 한다."
"아난다여, 그는 안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한다.
그가 안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그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기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내가 안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나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긴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는 밖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한다.
그가 밖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그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기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내가 밖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나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긴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는 안팎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한다.
그가 안팎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그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기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내가 안팎으로 공을 마음에 집중할 때 나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긴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는 흔들림 없음에 마음을 집중한다.
그가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집중할 때 그의 마음이 흔들림 없음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기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알아 차린다.
'내가 안으로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집중할 때 나의 마음이 흔들림 없음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미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학신이 생기다'라고.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6. "아난다여,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그의 마음이 경행으로 기울면 그는 '이와 같이 내가
경행할 때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경행한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만일 그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그의 마음이 서 있는 것으로 기울면 그는 '이와
같이 내가 서 있을 때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서 있는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만일 그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그의 마음이 앉는 것으로 기울면 그는 '이와 같이 내가 앉아 있을 때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앉아 있는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만일 그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그의 마음이 눕는 것으로 기울면 그는 '이와 같이 내가 누울 때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눕는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7. 아난다여,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만일 그의 마음이 이야기 하는 것으로 기울면 그는 이렇게 결심한다.
'이런 이야기는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며,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것은 왕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들 이야기, 군대 이야기, 공포에 관한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수
이야기, 옷 이야기, 침대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수레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 이야기, 옛적 유령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는 하지
않으리라.'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오염원을 지워 없애고 마음을 활짝 여는 데 도움이 되며
염오(싫어하여 떠남)로 인도하고, 탐욕의 사라짐으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즉 소욕(小慾)에 대한 이야기, 지족(知足)에 대한 이야기, 한거(閑居)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 불굴의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통찰지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나는 하리라.'라고 결심한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8. "아난다여,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만일 그의 마음이 사유하는 것으로 기울면 그는 '이런
사유는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며,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나니, 그것은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와 악의와 관련된 사유와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이다. 이런 사유를 나는 하지 않으리라.'라고 결심한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는 '이런 사유는 성스럽고, 해탈로 인도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바르게
괴로움의 종결로 인도하나니 출리와 관련된 사유와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와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이다. 이런 사유를 나는 하리라.'라고 결심한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9. "아난다여,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다.
… 귀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다.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아난다여, 이들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다."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매순간 '나에게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 마음속에 흥분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라고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 보고 살펴봐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비구가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 보고 살펴보는 도중에 '나에게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 마음속에 흥분이 일어난다.'라고 꿰뚫어 알면, 그는
'나에게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탐이 제거되지 않았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만일 비구가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 보고 살펴보는 도중에 '나에게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마음속에 흥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꿰뚫어 알면, 그는 '나에게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탐이 제거되었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10. "아난다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들[五取蘊]이 있다.
여기에 대해 비구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형성이다.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형성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마노. 마음)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아난다여, 그가 취착의 대상인 이들 다섯 가지 무더기들에 대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머물 때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들에 대해 '내가 있다.'라는 자만이 제거된다.
아난다여, 그러면 그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에 대해 '내가 있다.'라는 자만이 나에게 제거되었다.'
라고 꿰뚫어 안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이런 법들은 전적으로 유익함에 기반을 두며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사악한 마라가 근접할 수 없다."
11.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난다여? 어떤 유익함을 보기에 제자는 설령 스승이 내치더라도
스승을 따라야 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뿌리)으로 하며, 세존에 의해 이끌어 지는 것이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그 뜻을 친히 설명해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세존의 말씀을 잘 듣고 비구들은 마음에 새겨 지닐 것입니다."
12. "아난다여, 제자는 경이나 응송(應誦)이나 수기(授記) 때문에 스승을 따라서는 안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오랜 세월을 그대들은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간직하고 말로 외우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었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그러나 오염원을 지워 없애고 마음을 활짝 여는 데 도움이 되며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사라짐으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즉 소욕(小慾)에 대한 이야기, 지족(知足)에 대한 이야기, 한거(閑居)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 불굴의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통찰지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난다여, 이러한 이야기를 위해서 제자는 설령 스승이 내치더라도 스승을 따라야 한다."
13. "아난다여, 이럴 경우 스승의 재난이 있고, 이럴 경우 제자의 재난이 있고, 이럴 경우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이 있다."
아난다여, 어떤 것이 스승의 재난인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스승은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이처럼 은둔하여 머물 때에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온다.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오면 그는 미혹에 빠지고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고 탐욕의 노예가 되고 사치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 스승은 스승의 재난에 의해 재난에 빠졌다고 한다.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며, 고민을 가져다주고, 괴로운 과보를 초래하며,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으로
인도하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를 무너뜨린다.
아난다여, 이것이 스승의 재난이다.
아난다여, 어떤 것이 제자의 재난인가?
아나다여, 여기 스승의 제자는 그 스승의 한거를 본받아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이처럼
은둔하여 머물 때에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온다.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오면 그는 미혹에 빠지고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고 탐욕의 노예가
되고 사치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 제자는 제자의 재난에 의해 재난에 빠졌다고 한다.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며, 고민을 가져다주고, 괴로운 과보를 초래하며,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으로
인도하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를 무너뜨린다.
아난다여, 이것이 제자의 재난이다.
아난다여, 어떤 것이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인가?
아난다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나니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올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깨달은 분[佛]이며, 세존(世尊)이다.
그는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이처럼 은둔하여 머물 때에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온다.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오더라도 그는
미혹에 빠지거나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거나 탐욕의 노예가 되거나 사치하지 않는다.
아나다여, 그런데 여기 스승의 제자가 그 스승의 한거를 본받아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이처럼 은둔하여 머물 때에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온다.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오면 그는 미혹에 빠지고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고 탐욕의 노예가 되고 사치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 청정범행을 닦는 자는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에 의해 재난에 빠졌다고 한다.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며, 고민을 가져다주고, 괴로운 과보를 초래하며,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으로 인도하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를 무너뜨린다.
아난다여, 이것이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이다.
아난다여, 여기서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은 스승의 재난이나 제자의 재난보다 더 괴로운
과보를 초래하고, 더 쓴 과보를 가져오며, 악처에 떨어지게도 한다."
14.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자애로 나를 대하고 적대감으로 나를 대하지 마라. 그러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제자들이 적대감으로 스승을 대하고 자애로 스승을 대하지 않는가?
아난다여, 여기 스승은 제자들을 애민히 여기고 이익을 바라며 연민의 정을 일으키어 법을 설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를 기우리지 않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한참 벗어나 버린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제자들이 적대감으로 스승을 대하고 자애로 스승을 대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제자들이 자애로 스승을 대하고 적대감으로 스승을 대하지 않는가?
아난다여, 여기 스승은 제자들을 애민히 여기고 이익을 바라며 연민의 정을 일으키어 법을 설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그러면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를 기우리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제자들이 자애로 스승을 대하고 적대감으로 스승을 대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자애로 나를 대하고 적대감으로 나르 대하지 마라. 그러면 그대들은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아난다여, 나는 도기공이 완전히 굽지 않은 도기(陶器)를 다루는 방식으로 그대들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아난다여, 나는 거듭해서 그대들을 제어하고 그대들에게 말할 것이다.
아난다여, 거듭해서 그대들의 결점을 없애도록 할 것이니 근기가 수승한 자는 머물러 있을
것이다."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ānand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Mahāsuññatasuttaṃ niṭṭhitaṃ dutiyaṃ.
공(空)에 대한 긴 경(M122)이 끝났다.
*본 경은 대림 스님이 번역하신 맛지마 니꺄야를 기초로 하여 寫經한 것입니다.
*팔리 경 출처: http://www.tipitaka.org/r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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