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잡)

제47상윳따 - 제2장 날란다 품(S47:11-S47:20. Nālanda-vagga)

수선님 2018. 5. 6. 11:53

제2장 날란다 품

Nālanda-vagga


대인 경(S47:11)

Mahāpuris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2. “세존이시여, ‘대인(大人), 대인’이라고들 합니다. 어떻게 해서 대인이 됩니까?

註) 대인 - [앙굿따라 니까야] 아누룻다 경은 여덟 가지 대인의 사유를 들고 있다. 간추리면 ① 이 법은 원하는 것이 적은[小慾] 자를 위한 것이고 ② 만족하는[知足] 자를 위한 것이고 ③ 한거(閑居)하는 자를 위한 것이고 ④ 열심히 정진하는 자를 위한 것이고 ⑤ 마음 챙김을 확립한 자를 위한 것이고 ⑥ 삼매에 든 자를 위한 것이고 ⑦ 통찰지(지혜)를 갖춘 자를 위한 것이고 ⑧ 사량분별(思量分別) 없음을 좋아하고 사량분별없음을 즐기는 자를 위한 것이라는 여덟 가지이다.


“사리뿟따여, 마음이 해탈했기 때문에 대인이라고 나는 말한다. 마음이 해탈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인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사리뿟따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마음이 해탈하는가?


사리뿟따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그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면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사리뿟따여,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그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면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사리뿟따여,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그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면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사리뿟따야,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면 마음은 탐욕이 사라지고,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사리뿟따여, 마음이 해탈했기 때문에 대인이라고 나는 말한다. 마음이 해탈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인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날란다 경(S47:12)

Nāland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다고.”

“사리뿟따여,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구나.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하신 분들이셨다.’라고 과거의 모든 아라한.정등각자들의 마음을 그대의 마음으로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실 것이다.’라고 미래의 모든 아라한.정등각자들의 마음을 그대의 마음으로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나는 지금 시대에 아라한.정등각자다. 그러면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이시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이시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이시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해탈을 성취한 분이다.’라고 나의 마음을 그대의 마음으로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3. “사리뿟따여, 그렇다면 참으로 그대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정등각자들에 대해서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가 없다. 

사리뿟따여, 그런데 어떻게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가?”

“세존이시여, 제게는 분명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정등각자들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들은 튼튼한 기초와 튼튼한 성벽과 망루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지혜롭고 입지가 굳고 현명한 문지기가 모르는 자들은 제지하고 아는 자들만 들어가게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도시의 모든 통로를 다 순찰하면서 성벽의 이음매와 갈라진 틈으로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것까지는 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도시를 들어오고 나가는 큰 생명체는 누구든 모두 이 대문으로 들어오고 나간다.’라고. 

세존이시여, 그와 마찬가지로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과거의 모든 세존.아라한.정등각자들께서는 다섯 가지 장애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미래의 모든 세존.아라한.정등각자들께서도 다섯 가지 장애들을 제거하시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시고,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시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실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지금의 세존께서도 아라한.정등각자시니 다섯 가지 장애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았습니다.”


“장하고 장하구나,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 법문을 자주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에게 설해야 한다. 

사리뿟따여, 배우지 못한 범부들에게 여래에 대한 의심과 혼란이 생기게 되면 그들은 이 법문을 듣고 여래에 대한 의심과 혼란이 제거될 것이다.”


쭌다 경(S47:13)

Cund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마가다의 날라까가마까에 머물고 있었는데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당시 쭌다 사미가 사리뿟따 존자의 시자로 있었다. 사리뿟따 존자는 그 병으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註) 쭌다 사미는 사리뿟따의 동생이었다. 구족계를 받기 전에 불리던 이름이었는데 장로가 된 후에도 이렇게 불렸기 때문에 쭌다 사미라고 하는 것이다. 쭌다 사미는 마하쭌다 존자로도, 쭌다 존자로도, 쭌다까 존자로도 불렸다고 한다.


2. 쭌다 사미는 사리뿟따의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사왓티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으로 가서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발우와 가사입니다.”

“도반 쭌다여, 이것은 세존을 뵙고 말씀드려야 할 문제입니다. 

도반 쭌다여, 같이 세존을 뵈러 갑시다. 뵙고서 이 문제를 세존께 말씀드립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3. 아난다 존자와 쭌다 사미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쭌다 사미가 이렇게 말합니다.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발우와 가사입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는 말을 듣고 저의 몸은 무겁기만 합니다. 방향 감각도 잃어버렸고 법들도 제게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난다여, 사리뿟따가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계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삼매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통찰지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해탈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해탈지견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저의 계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저의 삼매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저의 통찰지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저의 해탈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저의 해달지견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만 사리뿟따는 저를 교계하고 감싸주고 일깨워주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습니다. 법을 가르치기에 피로한 줄 몰랐으며 동료 수행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자였습니다. 저희는 사리뿟따 존자가 베풀어준 법의 자양분과 법의 재물과 법의 도움을 기억합니다.”


4. “아난다여, 참으로 내가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예를 들면 속재목[心材]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가 꺾어진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비구 승가에서 사리뿟따가 완전한 열반에 든 것이다.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5.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6.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7. “아난다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 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욱까쩰라 경(S47:14)

Ukkacel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왓지에서 욱까쩰라의 강가 강 언덕에 고귀한 비구 승가와 함께 머무셨는데 그것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한 열반에 든 뒤 오래지 않았을 때였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노지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침묵하고 침묵하는 비구 승가를 둘러보신 뒤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註) 주석서에 의하면 목갈라나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임종한 지 보름 후에 반열반했다고 한다. 사리뿟따 존자는 깟띠까 달(음10월)의 보름에 입적하였고 목갈라나 존자는 그 다음 달의 초하루에 입적하였다고 한다. 세존의 입적이 웨사카 달(음4월) 보름이기 때문에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보다 6개월 먼저 입적하였고 목갈라나 존자는 5개월 보름 먼저 입적한 셈이다.


2. “비구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한 열반에 들자 내게는 회중이 텅 빈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의 회중은 텅 비지 않았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머물던 그 방향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


비구들이여, 지금의 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듯이 과거의 세존⦁아라한⦁정등각자들께도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지금의 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듯이 미래의 세존.아라한.정등각자들께도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을 것이다.”


3. “비구들이여,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경이롭다. 

비구들이여,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놀랍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 따라 행할 것이고 스승의 교계에 따를 것이며, 사부대중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며 존중하고 높이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경이롭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놀랍다. 왜냐하면 이러한 두 제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었는데도 여래에게는 근심과 탄식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들이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가 꺾어진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비구 승가에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한 열반에 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5.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 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바히야 경(S47:15)

Bāhi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바히야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히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내고자 합니다.”


“바히야여, 그렇다면 그대는 유익한 법들[善法]의 처음 시작점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유익한 법들의 처음 시작점인가? 아주 청정한 계와 올바른 견해이다. 

바히야여, 그런 다음 그대는 계를 의지하고 계에 굳게 서서 세 가지 방법으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바히야여, 여기 그대는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바히야여, 여기 그대는 안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밖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안팎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바히야여, 여기 그대는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밖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바히야여, 여기 그대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바히야여, 그대가 계를 의지하고 계에 굳게 서서 이처럼 세 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으면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쇠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3. 바히야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바히야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바히야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웃띠야 경(S47:16)

Utti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웃띠야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웃띠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내고자 합니다.”


웃띠야여, 그렇다면 그대는 유익한 법들[善法]의 처음 시작점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유익한 법들의 처음 시작점인가? 아주 청정한 계와 올바른 견해이다. 

웃띠야여, 그런 다음 그대는 계를 의지하고 계에 굳게 서서 세 가지 방법으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웃띠야여, 여기 그대는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웃띠야여, 여기 그대는 안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밖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안팎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웃띠야여, 여기 그대는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밖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웃띠야여, 여기 그대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웃띠야여, 그대가 계를 의지하고 계에 굳게 서서 이처럼 세 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으면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쇠퇴는 예상되지 않고 오직 향상이 예상된다.”


3. 웃띠야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웃띠야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웃띠야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성스러움 경(S47:17)

Ari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익히면 그것은 성스러운 것이고 출리로 인도하며,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면 괴로움의 멸진으로 인도한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익히면 그것은 성스러운 것이고 출리로 인도하며,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면 괴로움의 멸진으로 인도한다.”


범천 경(S47:18)

Brahm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처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나서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있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마음에 일어났다.


‘이 길은 한 길이자 유일한 길로서, 존재(중생)의 청정을 위함이며,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함이여,괴로움과 고통을 소멸시키기 위함이며, 진리의 길을 얻기 위함이며, 열반을 직접 경험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무엇이 넷인가?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한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한다.


이 길은 한 길이자 유일한 길로서, 존재(중생)의 청정을 위함이며,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함이여,괴로움과 고통을 소멸시키기 위함이며, 진리의 길을 얻기 위함이며, 열반을 직접 경험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2. 그때 사함빠띠 범천이 마음으로 세존께서 마음에 일으키신 생각을 알고서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재빠르게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서 세존 앞에 나타났다.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세존을 향해 합장하여 인사를 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선서시여. 세존이시여, 이 길은 한 길이자 유일한 길로서, 존재(중생)의 청정을 위함이며,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함이여,괴로움과 고통을 소멸시키기 위함이며, 진리의 길을 얻기 위함이며, 열반을 직접 경험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무엇이 넷인가요?


세존이시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합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합니다.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합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합니다.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합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합니다.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러야 합니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물러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길은 한 길이자 유일한 길로서, 존재(중생)의 청정을 위함이며,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함이여,괴로움과 고통을 소멸시키기 위함이며, 진리의 길을 얻기 위함이며, 열반을 직접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입니다." 


3.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했다.


   “태어남의 소멸을 보고 중생의 이익을 위하고

   연민심을 가진 분께서는 유일한 길인 이 길을 아시도다.

   그들은 이전에도 이 길을 따라 저 폭류를 건넜고

   미래에도 이 길을 따라 건널 것이며 현재에도 건너도다.”


세다까 경(S47:19)

Seda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숨바에서 세다까라는 숨바들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옛날에 대나무타기 곡예사가 대나무 막대기를 세우고 메다까탈리까라는 제자를 불러서 말했다.

‘오라, 착한 메다까탈리까여. 그대는 대나무 막대기에 올라가서 나의 어깨위에 서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님.’이라고 대나무타기 곡예사에게 대답한 뒤 제자 메다까탈리카는 대나무 막대기에 올라가서 스승의 어깨 위에 섰다.

그러자 대나무타기 곡예사는 제자 메다까탈리까에게 이렇게 말했다.

‘착한 메다까탈리까여, 그대는 나를 보호하라. 나는 그대를 보호하리라. 이와 같이 우리는 서로서로를 지키고 서로서로를 보호하면서 우리의 곡예기술을 보여주고 돈을 벌고 안전하게 대나무 막대기로부터 내려오자.’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제자 메다까탈리까는 대나무타기 곡예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이것은 바른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자신을 보호하셔야 하고 저는 제 자신을 보호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지키고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우리의 곡예기술을 보여주고 돈을 벌고 안전하게 대나무 막대기로부터 내려와야 합니다.’라고.”


3. “비구들이여, 제자 메다까탈리까가 스승에게 말한 것이 바로 바른 방법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비구는 마음 챙김의 확립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

‘나는 남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비구는 마음 챙김의 확립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면서 남을 보호하고, 남을 보호하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보호하면서 남을 보호하는가?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받들어 행하고 닦고 많이 익힘을 통해서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면서 남을 보호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남을 보호하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가?

인욕과 해치지 않음과 자애와 연민을 통해서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남을 보호하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비구는 마음 챙김의 확립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남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비구는 마음 챙김의 확립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면서 남을 보호하고, 남을 보호하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


경국지색 경(S47:20)

Janapadakalyāṇī-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숨바에서 세다까라는 숨바들의 성읍에서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라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하자. 이제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傾國之色]가 세련되게 춤을 추고 세련되게 노래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춤을 춘단다,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노래한단다.’라고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곳에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행복을 바라고 괴로움을 혐오하는 사람이 거기에 온다고 하자. 그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이 사람아. 그대는 이 기름으로 가득 찬 단지를 저 많은 사람들과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 사이로 가져가시오. 칼을 빼든 사람이 그대 뒤를 따라갈 것이오. 만일 그대가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흘리면 그는 그대의 머리를 잘라버릴 것이오.’라고 한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도 그 사람이 그 기름단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함부로 가져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3. “비구들이여, 이 비유는 뜻을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것이다. 그 뜻은 이와 같다. 

비구들이여, 기름으로 가득 찬 단지는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닦고 익혀야 한다. 

‘우리는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익히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리라.’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닦고 익혀야 한다.”



제2장 날란다 품이 끝났다. 두 번째 품에 포함된 경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대인 ② 날란다 ③ 쭌다 ④ 욱까쩰라 ⑤ 바히야 ⑥ 웃띠야 ⑦ 성스러움 ⑧ 범천 ⑨ 세다까 

⑩ 경국지색이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837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