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의 의미와 종류

수선님 2018. 6. 10. 12:48

보시의 의미와 종류

부처님은 재가자들에게 시(施), 계(戒), 생천(生天)를 강조했다. 이것을 ‘삼론(三論)’이라고 부른다. 시(施)란 보시를 말하고, 계(戒)란 지계를 말하며, 생천(生天)이란, 좋은 곳[善趣] 혹은 하늘나라[天界]에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의 생천은 보시와 지계를 통해 얻는 과보인 것이다. 이 삼론의 가르침은 초기경전의 도처에 언급되어 있다.

보시(布施,dāna)는 ‘준다’는 말이다. 보시를 ‘베풂’ 혹은 ‘나눔’으로 옮긴다. 지계(持戒, sīla)는 계율을 지킨다는 말이다. 지계를 ‘절제’ 혹은 ‘단속’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생천(生天)은 글자 그대로 ‘하늘에 태어남’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생천은 내세에 하늘에 태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는 ‘성스러운 삶’ 혹은 ‘행복한 삶’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시·계·생천은 ‘나눔과 절제의 생활을 통한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이러한 삶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소망이다. 붓다는 재가자들에게 나눔과 절제의 생활을 통해 현세에서 최상의 행복을 누리고, 내세에서는 ‘좋은 곳’에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불자의 삶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베풂’ 혹은 ‘나눔’의 덕목인 것이다.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분배의 윤리’라고 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자기의 것을 남에게 베풀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는 나눔의 미덕이 없다. 오직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눔’과 함께 강조되는 두 번째 덕목은 ‘절제’이다. 인간의 가치는 ‘절제’의 미덕에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윤리적이다. 인간사회는 윤리를 통해 질서가 유지된다. 반면 동물은 오직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동물에게 윤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동물은 오직 종족 보존을 위한 생식 본능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시는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 탐욕을 끊는 첫째 바라밀이다. 육바라밀은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에 보시행·인욕행·정진행을 추가한 것이다. 보시는 자비심으로써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보시에는 크게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 등의 세 가지가 있다.

재시(āmisa-dāna)는 물질적인 베풂을 말하고, 법시(dhamma-dāna)는 가르침의 베풂을 말하며, 무외시(abhaya-dāna)는 두려움을 제거해 주는 베풂을 말한다.

보시의 참된 의미는 나눔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비심이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자비심이 충만해지면 나보다는 먼저 남을 배려하게 된다. 그런데 베풂은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넓은 의미의 보시에 포함된다.

《잡보장경(雜寶藏經)》(《大正藏》 4권, p.479a-b)에 나오는 칠종시(七種施)가 이에 해당된다. 이것을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부르는데, ‘재물 없이 베푸는 일곱 가지 보시’라는 뜻이다.

첫째, 안시(眼施)는 언제나 좋은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드럽고 안온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시가 된다는 뜻이다.

둘째,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는 찌푸린 얼굴이 아닌 온화한 얼굴과 즐거운 낯빛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얼굴에 화기애애하고 기쁨으로 가득 찬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셋째, 언사시(言辭施)는 상대방에게 부드러운 말을 쓰고 거칠고 험한 말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에게 좋은 얘기를 해주고, 사랑의 말, 칭찬의 말, 부드러운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말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만든다.

넷째, 신시(身施)는 상대방을 위해 일어나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확대 해석하면 봉사활동이 이에 포함될 것이다. 몸으로 남을 돕는 행위 자체가 바로 큰 보시행인 것이다. 

다섯째, 심시(心施)는 비록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일들로 윗사람들에게 봉사했다 할지라도 마음이 온화하고 착하지 못하면 참다운 베풂이라고 할 수 없다. 착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정성껏 나누는 것이 바로 진정한 마음의 보시인 것이다. 이것은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착하게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보시행인 것이다.

여섯째, 상좌시(床座施)는 윗사람을 보면 자리를 펴 앉게 하고, 나아가서는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마저도 내어서 앉도록 권하는 일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노약자들이나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하나의 소중한 보시행인 것이다.

일곱째, 방사시(房舍施)는 윗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여서 마음 놓고 집안을 돌아다니고 서거나 앉고 눕게 하는 일이다. 여행자나 손님 혹은 내방객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는 최대의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보시행인 것이다. 이러한 일곱 가지 보시는 재물이 줄어들지 않으면서도 큰 복을 가져다준다. 

원래 보시는 남을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을 위해 베풀면 상대방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더 기쁨을 느낀다. 한번이라도 남에게 베풀어 본 사람이라면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보시는 삼륜(三輪), 즉 베푸는 자와 받는 자, 베푸는 물건이 청정해야 한다. 그런데 간혹 베풀고 나서 베풀었다는 ‘티’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베풀면서 기쁨을 느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큰 공덕을 지은 것이다.

그런데 ‘티’를 냄으로써 그 공덕을 까먹는다.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강조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성 스님/ 동국대 강사, 팔리문헌연구소장





수보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haha723/14000428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