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알아야 해탈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게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라후라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린 뒤,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저의 이 식신(識身)과 바깥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과 같은 번뇌의 얽매임 따위가 없어지겠습니까?
世尊。云何知.云何見我此識身及外境界一切相。得無有我.我所見.我慢繫著使。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괴롭다는 느낌 · 즐겁다는 느낌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즐겁다는 느낌을 관찰해 즐겁다는 느낌의 탐하는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梵行)을 닦고, 괴롭다는 느낌의 성내는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을 닦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의 어리석은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을 닦는 것이다."
"만일 비구가 즐겁다는 느낌의 탐하는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롭다는 느낌의 성내는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의 어리석은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안다면, 이것을 비구가 애욕의 결박을 끊어 없애고 모든 결박과 교만을 버리며 빈틈없고 한결같아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즐겁다는 느낌을 받을 때 즐겁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면
탐욕이라는 번뇌에 휘둘려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리.
樂受所受時 則不知樂受
貪使之所使 不見出要道
괴롭다는 느낌이 받을 때 괴롭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면
성냄이라는 번뇌에 휘둘려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리.
苦受所受時 則不知苦受
瞋恚使所使 不見出要道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바르게 깨친 이의 말씀대로
자세히 잘 관찰하지 못하면 끝내 저 언덕으로 건너가지 못하리.
不苦不樂受 正覺之所說
不善觀察者 終不度彼岸
비구들아, 부지런히 정진하여 바르게 알고 흔들리지 말라.
이와 같이 모든 느낌을 지혜로운 사람은 깨달아 아나니
그 모든 느낌을 깨달아 아는 자, 현세에서 모든 번뇌 다하리.
比丘勤精進 正知不動轉
如此一切受 慧者能覺知
覺知諸受者 現法盡諸漏
밝고 지혜로운 자 목숨 마치면 중생의 부류로 떨어지지 않나니
중생으로의 윤회가 이미 끊어져 영원히 반열반(般涅槃)에 머무느니라.
明智者命終 不墮於衆數
衆數旣已斷 永處般涅槃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라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상윳따니까야 36.1.3.Pahānasutta 버림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역경
3. 비구들이여, 이들 세 가지가 느낌이나니, 무엇이 그 셋인가?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
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이들이, 비구들이여, 곧 세 가지 느낌이니라.
4. 비구들이여, 즐거움을 느낄 때 탐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원주8】을 버려야 한다. 괴로움을 느낄 때 저항(염오)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려야 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경우, 무지(無知)해지려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려야 한다.
5. 비구가 즐거운 느낌을 대하여 탐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렸고, 괴로운 느낌을 대하여 저항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렸으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대하여 무지해지려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렸다면, 그 때 그는 고질적 잠재성향에서 벗어나 올바로 보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는 갈애를 끊었고 (=다음 생에 다시 몸을 받게끔 묶는) 족쇄를 풀어 버렸으며, 아만【원주9】을 철저히 꿰뚫어 보아 고(苦)를 끝낸 것이다.
6.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느낌의 본성은 알지 못한다면
그는 탐욕에 마음이 쏠려 해탈을 얻지 못하리라. 1
“Sukhaṃ vedayamānassa,
vedanaṃ appajānato;
so rāgānusayo hoti,
anissaraṇadassino.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느낌의 본성은 알지 못한다면
그는 미움에 마음이 쏠려 해탈을 얻지 못하리라. 2
“Dukkhaṃ vedayamānassa, vedanaṃ appajānato;
paṭighānusayo hoti, anissaraṇadassino.
그리고 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주9), 대지혜자 그것을 평화롭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것 또한 맛들여 매달린다면, 그는 결코 고(苦)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라. 3
“Adukkhamasukhaṃ santaṃ, bhūripaññena desitaṃ;
tañcāpi abhinandati, neva dukkhā pamuccati.
그러나 비구가 열심이어서 분명히 알아차리는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
그는 모든 느낌의 본성을 꿰뚫게 될 것이다. 4
“Yato ca bhikkhu ātāpī, sampajaññaṃ na riñcati;
tato so vedanā sabbā, parijānāti paṇḍito.
또 그렇게 됨으로써 그는 바로 이생에서 번뇌가 다할 것이며,
지혜가 성숙하고, 법의 길에 확고하며 (언젠가) 수명이 다하여 몸이 무너질 때엔
어떤 헤아림으로도 개념으로도 그를 가늠할 길은 없으리라. 5
“So vedanā pariññāya, diṭṭhe dhamme anāsavo;
kāyassa bhedā dhammaṭṭho, saṅkhyaṃ nopeti vedagū”ti.
주해9) 영역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여기서부터는 거의 대부분
원주8). 고질적 잠재성향: anusaya를 영역에서는 the underlying tendency로, 한역에서는 使隨眠으로 옮긴다. 여기서는 niranusaya의 뜻으로 고질적 잠재성향으로 옮겼다.
원주9). `자만'(conceit)은 특히 아만(asmimaano) 즉 지知, 정情 양면의 인격체의 대한 믿음[有身見].
- [잡아함경 468. 삼수경(三受經) 빠알리삼장 : s.36.3.Pahān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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