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렷이 깨달은 산 가운데 나무 한 그루 있어서
꽃은 피었는데 천지가 아직 나눠지기 이전이네.
푸른 색도 아니고 흰 색도 아니고 검은 색도 아닌데
봄바람에도 있지 않고 하늘에도 있지 않네.
圓覺山中生一樹 開花天地未分前
원각산중생일수 개화천지미분전
非靑非白亦非黑 不在春風不在天
비청비백역비흑 부재춘풍부재천
- 석문의범
용학스님 사진
두렷이 깨달은 산이란 다름 아닌 우리들 마음의 산이다. 우리들 마음의 산에 나무 한 그루가 났고 그 나무에 꽃이 피었다. 세존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고 가섭존자가 미소했다는 그 꽃이다. 화엄(華嚴)의 그 꽃이며, 묘법연화(妙法蓮花)의 그 꽃이다. 마음의 본체는 본래로 공적한데 공적한 대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작용한다. 그 작용은 변화무쌍하고 예측불허다. 활발발 그 자체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다.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다. 규정을 지을 수 없기에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공적하면서 활발발한 큰 작용은 한 순간도 멈추는 법이 없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이 나눠지기 이전부터 피어 있다고 했으니 청정심체의 그 활발발한 작용이 놀랍다. 그리고 그 꽃은 청. 황. 적. 백이 아니다.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참으로 신묘불측한 작용이다. 그 꽃이 봄바람을 타고 핀 것도 아니다. 독존무비다. 세상에 있다고 하는 것은 오직 이것이 있을 뿐이다. 세상은 온통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피어있는 한 송이의 꽃이다. 선의(禪意)가 아니면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 게송은 산사에서 이른 새벽에 목탁석을 끝내고 다음으로 종성을 할 때 외우는 글이다. 예부터 염불의 백미는 새벽종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수한 생을 동진출가로 이어져 거듭하며 살아온 동자승의 청아하면서도 애조를 띤 음성으로 길게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염불소리에 가끔 한 번 씩 두드리는 종소리와 어울리면, 여명이 아직 밝기도 전의 어둠이 깔린 산사의 정취는 무어라고 표현할 길이 없는 미지의 천상세계가 된다. 그야말로 천지가 나눠지기 전의 소식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진흙소가 물위를 걸어간다]
'100편의 명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햇빛과 그림자 (0) | 2018.06.24 |
---|---|
[스크랩] 목숨 바쳐 지키리라 (0) | 2018.06.24 |
[스크랩] 위는 밝으나 아래는 어둡다 (0) | 2018.06.17 |
[스크랩] 가섭이 어찌 전할 수 있으랴 (0) | 2018.06.17 |
[스크랩] 대장부(大丈夫) (0) | 2018.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