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해설

[스크랩] [碧巖錄] 제8칙 翠巖夏末示衆 - 취암 화상의 눈썹

수선님 2018. 6. 24. 12:15

관련 이미지 <벽암록(碧巖錄)> 제8칙은 취암 화상이 하안거를 마칠 때에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하고 있다.

 

취암 화상이 하안거 끝에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했다. “하안거 동안에 형제 여러분들을 위해서 설법 했는데, 잘 보게! 나(취암)의 눈썹이 붙어 있는가?” 보복(保福) 화상이 말했다. “도둑놈은 늘 마음이 편치 못하지.” 장경(長慶) 화상은 말했다. “(눈썹이) 생겼네!” 운문(雲門) 화상이 말했다. “관문이다.(關)”


擧. 翠巖, 夏末示衆云, 一夏以來, 爲兄弟說話. 看, 翠巖眉毛在?, 保福云, 作賊人心虛. 長慶云, 生也, 雲門云, 關.


여기에 등장하는 취암, 보복, 장경, 운문은 모두 당대 설봉의존(雪峰義存) 문하의 대표적인 제자들이다. 〈전등록〉에는 설봉의 법을 이은 제자 45명을 싣고 있는데, 운문(雲門), 현사(玄沙), 장경(長慶), 보복(保福), 경청(鏡淸) 등의 순서로 열거하고 있다.

 

취암 화상은 하안거를 마치는 날 대중에게 “나는 90일간 여러분들이 불법의 대의를 깨닫도록 여러 가지 많은 설법을 하였다. 여러분들은 나의 얼굴을 잘 보게! 나의 눈썹이 남아 있는가?” 수행승들에게 자기의 눈썹이 남아 있는지 확인시키고 있는 말이다.

 

취암 화상이 이러한 법문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조당집〉 제7권 암두장에 협산 화상이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으니 노승이 두 줄기 눈썹을 아끼지 않고 말해야 겠다.”라는 말처럼, 중생을 위해서 방편문(第二義)에서 여러 가지 설법을 하는 것을 말한다. 불립문자의 경지인 불법의 근본(第一義)정신을 언어 문자로 표현한 죄로 눈썹이 빠지는 과보를 받는다는 일반적인 속신(俗信)이 있었다.

 

〈임제록〉에도 보면 “나의 얼굴을 잘 보게! 눈썹이 몇 개 남아 있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조당집〉 4권에 단하천연이 혜림사에서 목불(木佛)을 쪼개어 불 피우고 잠자고, 암자의 주지가 천연선사를 꾸짖은 죄로 눈썹이 다 빠졌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벽암록〉제27칙에는 ‘눈썹을 아끼지 않고(不惜尾毛)’라는 말도 있는데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여 눈썹이 빠지는 벌칙을 받는다고 해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설법하는 자비심을 말한다.

 

취암 화상도 하안거 90일간 매일 눈썹이 빠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중을 위해서 설법했다. 그래서 해제 날, 눈썹이 하나도 없어졌는지 대중에게 확인시키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대중을 위해 불법을 깨닫도록 설했는데 그대들은 나의 설법을 듣고 불법의 대의를 체득했는가? 각자 반성하라는 각성의 설법인 것이다.

 

취암 화상의 설법에 대하여 원오는 “아니 눈썹뿐만 아니고, 눈까지 땅에 떨어졌네. 그 뿐인가. 코(鼻孔:본래면목)도 없네.”라고 착어(코멘트)하고 있다. 즉 취암 화상의 얼굴이 없어진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취암 화상은 아상(我相)과 인상(人相) 등 자아에 대한 일체의 분별심을 텅 비워버린 경지(身心脫落)에서 중생을 위해 불법을 설한 것이라는 언급을 하고 있다.

 

보복 화상은 “도둑놈은 늘 마음이 편치 못하지.”라고 말하고 있다. 보복 화상은 이러한 법문을 한 취암 화상을 천하와 우주를 훔친 도둑질 하는 사람으로 평하고 있다. 자아의식과 상대적인 차별심, 번뇌 망념을 텅 비운 무심도인(취암)은 만법과 하나가 된 경지에 사는 사람이기에 일체의 만법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든 도둑으로 평가하고 있다. 〈임제록〉에도 선승을 도둑놈이라고 평하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 데 이는 불법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천하를 훔치는 도둑의 기질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보복 화상이 “도둑의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한 것은 취암 화상의 설법은 만법을 자기 것으로 훔친 도둑(취암)에게도 눈썹이 있는가를 대중에게 확인시키고 있는 말이다. 즉 도둑놈이 뭔가 꺼림칙해서 하는 말이라고 코멘트하고 있다. 이러한 보복의 평가에 원오는 “분명히 그렇다(灼然)”라고 하면서 “도적은 도적을 잘 안다”라고 착어하고 있다. 즉 보복은 취암이 만법을 훔친 도적이라는 사실을 도적의 입장에서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

 

다음 장경 화상은 “(눈썹이) 생겼다.”라고 평하고 있다. 즉 취암 화상 그대는 얼굴의 눈썹을 가지고 말하는가? 나는 우주에 가득 찬 눈썹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즉 장경 화상은 취암 화상이 일체의 번뇌 망념을 텅 비우고 본래면목을 체득한 것처럼, 나도 그러한 경지를 체득하고 있다는 본인의 입장을 표명한 말이다.

 

선어록에 “거북의 꼬리에 털이 생겼다.” “토끼의 머리에 뿔이 생겼다.” “불타는 숯불 속에 연꽃이 피었다.”라는 표현이 있다. 장경의 독설은 무엇이 생겼다고 밝히지 않고 있지만, 원오는 “장경의 혀가 땅에 떨어졌다.”라고 착어했다. “장경 화상 당신의 혀도 너무 길어. 지나치게 잔소리 많이 하고 있네!”라고 하면서 “잘못을 가지고 잘못에 나아감(將錯就錯)‘이라고 착어하고 있다.

 

원래 취암 화상이 대중에게 설법한 것 자체가 불법의 근본에서 벗어난 잘못이 있는데, 또 장경화상이 쓸데없이 눈썹이 생겼다고 말한 것은 잘못에 또 잘못이 첨가된 꼴이라고 한 평가이다.

 

마지막에 운문 화상이 ‘관(關)’이라는 한 글자로 취암의 설법을 평했다. 운문의 설법은 한 글자로 선의 요지를 대답하여 수행자를 지도하는 일자관(一字關)으로 유명하다. 즉, 어떤 것이 정법안장입니까? 라는 질문에 “보(普)”라고 대답하고,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면 어디서 참회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로(露)”라고 대답했다. 보(普)는 절대 보편의 진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정법안장이며, 로(露)는 자신의 본래면목 전체를 숨김없이 들어내어 참회해야 하는 불성의 지혜작용을 주장하고 있다.

 

관(關)은 관문으로 반드시 누구나 타파해야 할 관문 즉 벽(壁)과 같은 의미이다. 관문은 미혹과 깨달음, 중생심과 불심의 차별을 초월하는 관문으로 본래면목를 밝히는 고정된 문이 없는 관문이다. 불법의 수행자는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불법의 대의와 절대 깨달음의 경지(본래면목)를 체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앞에서 취암과 보복, 장경이 자신의 경지에서 이 공안의 견해를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운문은 그대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있지만 내가 제시한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안된다는 입장에서 독자적인 관문을 설치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운문은 ‘관(關)’이라는 일자관의 공안을 제시하여 천하 선승들이 제멋대로 주장하는 입을 봉쇄해 버리고, 불법을 체득하는 유일한 관문을 설치한 것이다.

 

원오는 “천하의 납승도 이 관문을 통과 할 수 없다.”고 코멘트 하고 있다. 이는 수행자가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지혜의 안목을 갖춘 선승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운문의 관문을 통과하면 천하를 활보하며 자유자재한 경지를 체득 할 수가 있다. 지금 이 공안을 읽고 있는 수행자는 이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깊이 반조하고 사유하여 본래면목을 체득해야 한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취암 화상이 수행자들에게 “눈썹이 있는가?”라고 자신의 본래면목을 제시했지만, 천고 만고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네. 운문이 “관문”이라고 대답하자, 취암, 보복, 장경 세 사람은 돈도 잃고 죄까지 지었네. 노련한 보복 화상은 취암 화상을 칭찬한 것인가, 꾸짖은 것인가? (본래면목은 칭찬해도 훌륭하게 되지 않고, 욕을 해도 보잘것없는 것이 아닌데.)


수다쟁이 취암 화상은 분명히 천하를 자기 것으로 훔친 훌륭한 도적이다. 흰 구슬(본래면목)에 티가 없으니 누가 진짜인지 거짓인지 구별하랴. 아니 장경 화상이 알아 차렸으니 눈썹이 생겼다고 말했네. 장경은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한 줄기 눈썹(본래면목)이 천지에 들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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