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거 & 혼침의 극복방법 - 람림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그래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놨는데.. 내용이 길어서 좀 오랫동안 타이핑해야겠네요.
선정을 닦을 때의 다섯 가지 허물
바른 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단지 어떤 스승의 어록을 요의법이라 여겨서
그에 의지해서 수행하는 경우 평생 선정을 닦더라도
미세한 혼침(惛沈)을 깨우침으로 착각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마음을 그러한 것에 의지해서 혼침을 깨우침으로 착각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다.
그러한 방법으로 아무리 정진해도 이는 인생을 낭비하는 일일 뿐이다.
아주 옛날부터 유명한 수행자들도 그러한 것을 혼동하고 착각한 일들이 많았다.
그에 대한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는 경을 찾아야 하며, 스승으로부터 자세히 배워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부터 많은 위대한 고승들의 법맥과 그들의 가르침인 요법들에 근거하여 배워야 한다.
‘쫑카빠’ 대사께서는 견해나 관상과 행들을 배워나갈 때 그 이전에 인도에서 증명된 것에 의지했을 뿐만 아니라 문수보살을 직접 친견할 때 의심나는 부분을 묻고 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우리도 그러한 법에 의지해야 한다.
만일 증명되지 않은 법에 의지하여 수행한다면 전에 누구도 깨우친 적이 없는 깨우침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밀교적인 심오한 수행에서부터 하기 쉬운 수행의 선정을 닦더라도 그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살펴서 선정을 수행할 때 ‘착각으로 말미암은 다섯 가지 잘못된 점[五錯誤]’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가. 게으름의 허물
이는 선정 닦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쉽게 피곤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 대한 치료제로는 선정의 공덕을 알고,
신심으로 선정을 닦고 싶은 마음을 내어서 정진하는 것과
심신이 평안하며 융통성이 있는 경쾌한 마음인 경안(輕安)이다.
선정을 닦을 때 관상하기 싫은 마음과 비록 하더라도 오래하지 못하는 원인은 ‘게으름’ 때문이며,
이에 대한 실질적인 치료제는 경안이다.
처음부터 경안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시작할 때 신심이 필요하다.
선정의 공덕을 생각하고 산란심의 허물을 알고서 선정을 닦으면 망상없이 잘 집중할 수 있다.
집중이 잘 되면 빨리 성취할 수 있으며, 심안통과 같은 신통력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밟아서 수행하면 잠을 자면서도 선정을 닦을 수 있고,
번뇌를 줄일 수 있으며 기초부터 순서대로 관상함으로써 빨리 성취할 수 있는 등의 이득이 있으므로
먼저 신심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신심이 생기면 기꺼이 구하고자 하는 희구심(希求心)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정진력이 생기며 경안(輕安) 상태에 이른다.
이 네 가지가 순서대로 원인과 결과처럼 이어져서 일어난다.
나. 요의법을 잊어버리는 허물
이는 선정을 닦는 동안 집중해야 할 목표를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놓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선정을 닦을 때 가장 큰 허물이다.
이를 물리치는 방편으로는 마음의 코끼리를 단단한 기둥에 묶고서 집중하는 것인데,
이럴 때 어떤 대상을 목표로 삼더라도 선정을 성취할 수 있다.
티벳에 불교가 전파되기 전에 있었던 ‘뵌교’에서는
‘아’자를 의지하거나 어떤 외도들은 돌을 선정의 대상으로 삼아서 닦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선정 닦는 방법을 잘못 이해해서 대상을 눈앞에 놓고 그 대상을 보면서 닦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선정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쫑카빠’ 대사께서는 선정을 부처님의 몸을 대상으로 하여 닦는다면 공덕을 쌓거나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큰 특징이 있으며, 이는 밀교에서 자신을 부처님으로 관상할 때도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방법은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방법으로도 도움이 된다.
관상하는 방법은 처음 자신의 정수리 한 뼘쯤 위에 근본 스승이 계시다고 관상하고, 다시 근본 스승의 가슴에서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와서 자신의 양미간 중앙의 바로 앞 공간이나 배꼽 주변에 있는 것을 관상하여 선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방법이 아니면 자기 자신이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변하여 선정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신체와 같은 형상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다른 것을 대상으로 삼아서 닦는 것이 쉬운 경우도 있다. 한편 ‘생기차제’ 에서는 ‘여래의 몸’을, ‘구경차제’에서는 ‘아’자를 대상으로서 의지하여 관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대상을 삼아도 가능한데 처음 정할 때 잘 살펴서 정해야 하며, 진전이 없다고 해서 대상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나무를 태울 때 태워야 할 나무를 계속 옮기면 불이 붙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관상할 때 잠 자거나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일 외에는 꾸준하게 쉼 없이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정도 성취할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해 나가야 한다.
관상 방법은 그 대상인 부처님의 모습을 그린 탱화나 불상, 부처님 삼십이상 등의 특징을 마음에 생겨두면 관상할 때 그 대상이 마음속에 나타나기가 쉽다. 또는 스승이 알려주는 대상을 마음속에 그려서 나타나게 한다. 대상을 관상할 때 대상이 비록 거칠고 반 정도만 나타나더라도 이는 대상을 찾은 것이 된다. 이렇게 찾은 대상을 기억에서 놓치는 것이 ‘요의 법을 잊어버리는 허물’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치료제는 정념(正念)이다. 손에 염주를 꼭 쥐고 있는 것처럼, 강한 정념으로써 선정의 대상을 잘 잡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정념이라 하면 본인이 익숙해진 물건이나 대상을 마음속에서 잊어버리지 않는 행을 말한다.
만약 부처님을 대상으로 삼아 선정을 닦아 간다면 선정의 목표인 부처님[대상]과 관상하는 부처님[대상]은 차이가 있다.
첫째 선정의 목표인 부처님 [대상]은 정에 본 적이 있어서 그 형태나 색깔이 마음속에 기억된 것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관상하는 부처님[대상]은 마음속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감수경(感受境)이라고도 한다. 앞에서 설명한 자신의 미간 사이에 조성한 부처님을 선정의 대상으로 하여 산란하지 않게 잘 관상할 수 있게 되면 이제 혼침과 도거의 장애가 생기기 시작한다.
다. 혼침(惛沈)과 도거(掉擧)의 허물
혼침과 도거를 구별할 줄 모르면
원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큰 허물이 생기니 이 둘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
혼침은 몸과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고 잠과 같은 몽롱한 상태에 빠지면서 이로 인해 마음이 가리어지는 것으로서, 이는 수번뇌(隨煩惱)중의 하나이다.
혼침은 결코 선행이 아니며, 이에는 거친 혼침과 미세한 혼침 두 가지가 있다.
정념으로 선정의 대상인 감수경(感受境)을 잡고 있을 때
그 대상이 떠올려졌으나 선명하지 않으면 이는 거친 혼침이다.
감수경을 놓치지 않으며 그것이 선명하더라도
감수경의 힘이 약해서 그 선명함이 강하지 않으면 이는 미세한 혼침이다.
이러한 혼침은 선정을 닦을 때 가장 큰 장애이다.
여기서 그 선명함이 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그 대상인 감수경에 안주하여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을 말한다.
또 떠올려진 감수경이 너무 확실해져도 이는 다시 미세한 혼침의 원인이 된다.
선명함이 강하다는 것은 감수경에 마음이 너무 깊이 집중하여 있는 것을 말한다.
감수경의 선명함과 그 선명함이 강한가, 강하지 않은가를 보는 것은 손에 염주를 쥐거나 잔을 잡을 때 부드럽게 쥐는 것과 강하게 잡는 것의 차이를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것들은 경험을 통해서 살피지 않으면 말로써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을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대상이 얼마나 선명하고 투명한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염(念)이 얼마나 선명하고 투명한지를 말하는 것이다. 염(念)이 선명하지 않은 이유는 염(念)을 가리지 않고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미세한 혼침과 선정을 볼 때 대상에 안주하는 것과 염이 선명해져 있는 것,
이 둘은 비슷하기 때문에 선정과 혼침을 분리시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미세한 혼침을 쌓으면 들이마신 호흡을 하루 동안 멈출 수 있을 만큼 집중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예전에 많은 수행자들이 이를 선정의 상태로 혼동하여
최고의 수행이라 찬탄했으나 이는 본래 그 의미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
미세한 혼침을 선정으로 혼동하는 과보는 색계/무색계에 태어나는 원인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번 생조차도 치매에 걸릴 위험이 크며,
두뇌가 명석하지 못하여 축생으로 태어나는 원인을 쌓는 것일 뿐이다.
도거는 마음에 드는 형상에 끌리는 애착의 한 부분으로서 들뜨면서 흐트러진 미세한 마음 상태를 말하며, 선정을 방해하는 일종의 정신 작용을 말한다. 즉 낮에 연극을 본 후 밤에 그 형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처럼, 탐욕의 대상을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마음을 분출시키는 ‘산란’과는 차이가 있다. 대상인 원수를 싫어해서 해치고 싶어 할 때의 산란함, 선정을 닦을 때 보시, 지계 등 공덕을 쌓고자 할 때의 산란함 등은 명백하게 마음을 방사하는 것이지 도거는 아니다.
이때 도거만을 선정의 장애물로 여기는 이유는 이러한 산란함들이 평상시에는 자주 탐을 내어 마음을 방사해서 그 강도도 매우 크지만 선정을 닦는 동안은 공덕의 대상과 화냄 등의 대상에 마음을 방사하는 힘이 작고 짧기 때문에 도거만을 선정의 장애물로 여기는 것이다.
마음의 대상으로 삼은 부처님의 몸, 즉 감수경을 놓침으로써 관상할 때 처음에 관상했던 부처님의 몸이 선명하지 않은 것은 ‘거친 도거’에 해당한다. 후에 얼음 밑에서 물이 흐르는 것처럼, 감수의 경계를 놓치지 않으면서 이제 관상해 나가는 대상이 뚜렷해졌다고 기뻐함이 미세한 도거이다.
이러한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서 정지(正知)가 실질적인 치료제는 아니지만 혼침과 도거가 일어나는지 일어나지 않는지를 전쟁을 지켜보는 것과 같이 정지(正知)로 지켜보아야 한다. 만약 정지(正知)로 너무 오래 지켜본다면 이는 감수경에 안주하게 되는 원인이 되어 오히려 장애로 변하게 된다. 그렇지만 정지(正知)로 지켜보지 않으면 선정에 허물이 생겨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마치 도둑이 물건을 모두 가져가 버린 꼴이 된다.
이와 같이 정지(正知)로써 혼침과 도거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이는 잔을 들 때 드는 것과 세게 잡는 것과 비뚤어지지 않았는지를 눈으로 살피는 것처럼, 먼저 염(念)이 대상을 잡아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수경을 확실하게 한 다음, 정지(正知)로 혼침과 도거가 일어나는지 아닌지를 살펴서 그러한 장애들로부터 관상의 대상을 살펴야 한다. 정지(正知)는 지혜의 한 부분이다.
라. 혼침과 도거의 치료제 사용
혼침이나 도거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한쪽이 생겼을 때 그 치료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허물이 되니 반드시 치료제를 사용해야 한다. 혼침과 도거가 일어나면 그것을 그대로 두지 말고 거칠거나 미세한 혼침과 도거 어떤 것이 생기더라도 각각의 치료제를 사용해야 한다. 이는 원수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원수를 쳐부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같다.
어떤 치료제를 써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미세한 혼침은 마음을 가라 앉혔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므로 혼침과 마음 가라앉힘의 두 가지는 같은 것이다. 비록 선명함과 안주함이 있을 지라도 감수경의 강도[상태]가 낮아지면 선명함의 강도가 사라지는 ‘미세한 혼침’이 일어난 것이니 이 때는 우선 관상을 멈추되 대상을 놓치지 않으면서 감수경에 대한 마음 작용을 더욱 조이면 된다. 그러나 너무 조이면 도거가 일어나므로 적당하게 조여야만 한다.
부처님께서 비파 줄을 너무 조이거나 너무 느슨하게 하면 소리가 나지 않으니, 적당하게 조여야 제대로 소리가 난다고 하셨던 것처럼, 미세한 혼침이 생겼을 때 마음을 너무 조이면 도거가 생길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적당하게 조여야 한다. 이 정도로 하면 혼침이 생기겠다 싶은 마음이 들면 조금 더 조여준다.
전에 혼침과 도거가 생겼던 경험에 의지하여 오직 정지(正知)로써 살피지 않으면 본인의 상황이 혼침에 빠져있는지 도거가 일어났는지 정확한 상황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렇지만 원수 중에서 자기 식구로 혼동하는 원수가 있다면 이를 알아차리기 힘들어 위험한 것처럼, 혼침을 선정과 착각하는 허물이 생길 큰 위험이 있으므로 특히 마음 조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조여도 선명한 힘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감수경(感受境)이 선명하지 않으면서 가라앉아 보이지 않으면 거친 혼침이 생긴 것이다. 이는 마음을 너무 조인 허물이므로 대상을 조금 느슨하게 하여 관상한다. 이렇게 하여도 대상이 선명해지지 않으면 대상을 버려서 마음이 가라앉은 것을 올려주는 방편을 쓰거나, 삼보나 보리심에 대한 공덕 등을 관상하여 마음에 용기를 주고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 다른 방편은 밝은 것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으며, 보리심으로 ‘주고받기’ 수행 등을 관상하여 마음의 상태를 올려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가라앉은 마음이 사라지면 대상을 다시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방편들이 처음에는 익숙해지지 않아서 빨리 도움이 되기가 어렵지만 익숙해진 자라면 이 귀한 몸 얻기가 어려운 것만 생각해도 얼굴에 시원한 물을 뿌린 것처럼, 환희로운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하여도 혼침을 없애지 못하면 혼침을 강제로 없애는 방법이 있다. 자신의 심장에 무척 밝은 형태의 하얀 빛이, ‘팻!’ 소리와 함께 정수리를 통해서 몸밖으로 뽑아져 나와서 하늘 높이 올라간 후 그것이 하늘과 같게 됨을 관상하는 것을 몇 번 반복한다.
이것으로도 없애지 못하는 경우는 관상을 멈추고 혼침이 생기는 원인인 어둠과 잠, 그리고 무거운 마음 등을 없애는 방법으로 시원한 곳에 앉거나 조금 높은 곳에 앉아서 관상하면 해결될 수 있다. 주변 이곳 저곳을 청소하거나 찬물로 세수하는 것도 시도해 본다. 그래서 혼침이 사라지면 곧바로 다시 관상에 들어가도록 한다.
미세한 도거는 비록 그 감수경을 놓치지 않았어도 산란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마음을 너무 많이 조여서 생기는 허물이므로 우선 너무 조인 마음을 약간 풀어줌으로써 조금 느슨해진 감수경의 상태가 되도록 한다. 이러한 방법이 도움이 되지 않고 계속 들뜨면 이는 다시 거친 도거가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현상은 마음이 지나치게 들뜬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들뜬 마음을 조절해야 한다.
마음을 조절하는 방법으로는 관상하고 있는 상태를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에 대한 무상, 윤회세계의 허물, 삼악도의 고통 등을 생각하여 지나치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한다. 개인적으로 슬펐던 일이나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는 등을 방편으로 삼아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해서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경우 도거를 강제로 가라앉히는 방법으로는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에 집중하여 내쉴 때는 ‘나가고 있구나!’ 들이마실 때는 ‘들어오고 있구나!’를 알아차리거나,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숫자를 마음속으로 세는 방법이 있다. 이때 처음에 셋/넷 정도밖에 셀 수 없을 수도 있는데 숫자를 잊어버리면 곧바로 다시 처음부터 세도록 한다. 그런 방법으로 스물 한번 정도 셀 때까지 산란해 하지 않고 마음을 집중할 수 있다면 이는 구주심(九住心)의 첫 번째인 ‘마음이 안으로 머물기 시작하는 단계’인 안주심(安住心)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도 도거를 제거하지 못하면 관상을 잠시 멈춘 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용맹심을 갖고 짧은 시간 동안 관상한다. 발전이 없는 상태에서 만약 오래 관상하면 다음에 관상할 때 앉는 방석만 보아도 피곤해지고 고개를 돌리게 되니 관상하고 싶은 마음이 진실로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선명하면 선명한 대로, 선명하지 않으면 선명하지 않은 대로 멈춘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관상이 잘 된다 싶을 때 관상을 멈추면 다시 시작할 때 하고 싶은 마음과 관상이 잘 되는 마음이 일어난다. 선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명하게 되도록 노력하여도 선명하게 되지 않을 때 고집을 부려서 관상을 계속 하다가 멈추면 다시 시작할 때 관상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 어려우며 관상도 잘되지 않는다.
예전에 ‘롭상남곌’ 스승이 ‘까담빠’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할 때 우리가 오랫동안 관상에 안주하기를 희망하지만 목표물에 살짝 건드리는 정도밖에 머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요즈음 시대는 자기 마음을 정화시킬 때이지 남의 마음을 정화시킬 때가 아니다.” 하고 빗대어 말하면서 울었고, 울음을 그치지 못해서 다음 날까지도 법문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루에 열여덟 번 정도 관상에 들고 나는 방법으로 비록 시간이 짧더라도 혼침과 도거가 섞이지 않은 정확한 관상을 자주 여러 번 반복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해서 자신에게 힘이 생기면 관상에 안주하는 시간을 길게 늘이도록 한다.
마. 치료제의 지속적인 사용과 사용을 멈추는 것
이는 혼침과 도거 두 가지를 없애는 방법으로 치료제를 계속 사용할 경우의 단점을 말한다. 이러한 단점에 대한 치료제로는 ‘계속 행하지 않음의 평등’을 사용해야 한다.
혼침과 도거의 흐름은 구주심(九住心)에서 여덟 번째 단계인 성주심(性住心)의 상태에 이르러야 끊어지게 된다. 이 때에 혼침과 도거가 완벽하게 없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것이 일어나는지, 일어나지 않는지를 살펴서 지속적으로 치료제인 정지(正知)를 사용하면 이는 선정의 잘못된 점 다섯 가지 중에서 하나에 해당한다. 이제 염두에 두고 있는 정지(正知)를 마음으로부터 버려도 되니 ‘계속 행하지 않음의 평등’한 마음을 가져도 된다.
예전에 많은 선지식들이 ‘버려야 한다. 놓아야 한다.’고 한 모든 것은 구주심 중에서 여덟 단계인 성주심(性住心)의 혼침과 도거가 사라진 상태에서 정지를 놓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혼침과 도거가 완전하게 사라지는 상태인 구주심의 여덟 번째 단계 전까지는 염(念)이나 감수경(感受境)의 힘을 놓으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감수경에 안주함은 빨리 올 수 있지만 미세한 혼침을 제거하지 않아서 선정과 멀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감수경의 대상은 다양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와 같이 선정을 닦는 방법은 밀교의 ‘구경차제’ 전까지는 거의 모두 비슷하다.
관상 방법으로는 위에서 살펴 본 수행에 갖추어야 할 적합한 환경 다섯 가지를 비롯한, 선정을 닦기 위해서 필요한 지자량(止資糧) 여섯 가지를 모두 잘 갖춘 후에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방석 위에 비로자나칠법의 자세로 앉는다.
정수리에 모신 근본 스승으로부터 손가락 한마디의 크기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와서 양미간 중앙의 앞 허공에 계신 것을 관상한다. 이러한 목표물이 처음부터 선명하게 떠오르지는 않으니 그것을 처음부터 선명하게 하려고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관상하고 있는 부처님의 머리/손/발들이 황금빛으로 대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염(念)으로 알아차려야 하며, 그런 후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이 단단해지도록 산란하지 않은 마음으로써 오직 염(念)으로 목표물을 키우는 이 방법은 혼침과 도거 둘 다를 제거하는 방법이 된다. 이는 선정을 닦는 사람들이 마음에 간직해야 할 최고의 요법이다.
혼침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단단하게 조이면 제거되고, 도거는 산란하지 않은 마음으로써 제거된다. 한편 이와 같은 방법으로 관상했을 때 대상에 안주하게 되면 혼침과 가까워지므로 선명함과 그것을 떠올리는 방법이 단단해지도록 조금씩 조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너무 선명해지면 도거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므로 다시 대상에 안주해야 한다. 선정을 닦는 체하면서 닦아야 할 선정이 무엇인지 모르면 시도하지 말 것이며, 머무는 방법과 선명하게 떠올리는 방법, 이 두 가지 특징을 반드시 사용하여 선정을 닦아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염(念)으로 감수경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때에 거칠거나 미세한 어떤 혼침과 도거가 생기려고 해도 곧바로 정지(正知)로 살펴서 각각의 치료제로 막아야 한다. 그런 방법으로 혼침이나 도거가 제거되면 더 이상 치료제를 사용하지 말고 오직 대상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강도가 매우 높은 선명함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대상과 대상에 집중하는 마음, 이 두 가지를 하나로 해서 관상한다. 마치 목동이 산으로 양들이 올라가는지 올라가지 않는지를 모두 살피는 것처럼, 의심이 생기면 그 실체를 살펴서 각각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 마음에 의지하여 선정을 닦고 싶은 자라면 치료제로써 의심을 제거하여 닦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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