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얻은 이 인간의 몸을 보배롭게 쓰기 위해 어떻게 하는지 봅시다. 우리에게는 불성-일체지-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의식이 있어 행복과 고통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은 무엇이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며,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것은 부처의 경지-모든 것을 아는 지혜인 일체지를 이루는 근간이 됩니다. 이는 진제와 속제로 모든 것은 ‘한순간에’ ‘한 번에’ ‘하나의 의식’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는 일체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 우리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은 의식을 가진 자에게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이는 의식의 본성이 바로 대상을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일체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근본 바탕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의식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지 능력을 가진 의식으로 일체지를 이룰 수 있는 이것을 불성이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음은 본래 공한 것이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것에 의해 이루어졌는가 하고 구체적으로 찾아보아도 그것도 아닙니다. 과거의 의식과 현재의 의식과 미래의 의식과 마음과 마음의 작용(심소心所)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관찰해 보아도 의식이라는 것을 찾아내기란 어렵습니다.
의식의 흐름을 ‘흐름이 있는 실재로 존재하는 법(실유법實有法)’이라고 합니다. ‘흐름이 있는 실유법’은 다른 것-다섯 무더기(오온五蘊)-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의 흐름을 없애면 의식의 흐름은 있을 수도 없으며, 찾아낼 수도 없습니다.
어떤 물건이 그것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부분에 의해서 생겼다고 가정하면, 그 각각을 떼어내어 버리면 그 물건을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의식의 흐름이 되는 그 각각의 것을 없애버리면 그 의식의 흐름이 없고, 의식의 흐름이 없으면 그것에 대응하는 의식의 흐름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 복잡하거니와 어떻게 말을 해도 어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이 의식 자체도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공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의식은 연기에 의지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의식은 그 어떤 것에 의지하지 않고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는 실체가 없는 공(空)입니다.
그런 것을 공성(空性)이라 합니다.
마음은 밝음 그 자체이고 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있다고 믿는 것은 뒤집힌 의식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허물을 정화할 수 있는 것이며, 그를 통해 일체지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허물을 없애서 궁극적으로 번뇌가 정화된 객진청정의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허물을 버리지 못했어도 자성을 불성이라 하는 것입니다.
명확하게 인지하는 그 의식 자체에서 삼신-법신. 보신. 화신-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삼신을 이루는 근원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에 있는 이 식(識)을 바탕으로 부처의 경지를 이룰 수 있으며
그 근원은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이미 스스로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불성이라 합니다.
불성이라는 것이 본래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이라는 분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에 불성이 없다면 부처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내면도 타타가타(tathaagata,여래)가 될 수 있는 불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리시고 중생에게 이 길을 보이신 까닭은 우리들 내면에도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성을 덮고 있는 허물을 없애는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행방편을 부처님께서 몸소 체득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불성이 있으므로 불성을 덮어 어둡게 하는 번뇌를 버림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이 길을 가면 번뇌를 다 버릴 수 있고 최고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은 분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불성이 있음을 명상하자마자 부처가 된 것은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인 삼 아승지 동안 공덕을 지으셨습니다. 불성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불성을 덮고 있는 허물을 없애기 위해서 차례로, 지혜와 방편의 길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차츰차츰 마음의 허물들이 없어지며, 아주 미세한 허물까지도 없앨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차례로 되는 것입니다.
입보리행론 해설 20. 의식은 연기에 의지하여 이루어진 것
'입보리행론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입보리행론 해설 22. 일체지는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0) | 2018.07.01 |
---|---|
[스크랩] 입보리행론 해설 21. 거친 번뇌를 없애고나서 섬세한 번뇌를 없애라. (0) | 2018.07.01 |
[스크랩] 입보리행론 해설 19. 자신을 보배롭게 하라. (0) | 2018.07.01 |
[스크랩] 입보리행론 해설 18. 분노는 空性의 지혜로 완전히 없앨 수 있다. (0) | 2018.07.01 |
[스크랩] 입보리행론 해설 17. 마음을 바꾸려면, (0) | 2018.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