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무섭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보리심에 의지하면 찰나에 업을 벗는다.
용맹하게 보리심을 일으키면 모든 공포가 사라지니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이것에 의지하지 않겠는가?
14 보리심은 말 겁(末劫)의 불처럼
한순간에 반드시 (죄를) 태운다.
(보리심의) 헤아릴 수 없는 이로움을
미륵보살께서 지혜로 선재동자께 말씀하셨노라.
평소 우리가 어떤 행위를 ‘악’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과보로 불행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선’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결과로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행복을 ‘선’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행복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므로 고통이나 불행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원하지 않는 고통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짓누르고 있습니다. 악업의 과보를 받는 사람은 고통을 받고 슬퍼합니다. 자신이 당하는 불행의 원인을 ‘악’이라 합니다.
이런 ‘악’이 생길 때마다 네 가지 힘(사력四力) 즉 네 가지의 대치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사력은 삼보에 귀의하는 힘, 해독제를 통해 잘못된 행동을 극복하는 힘, 뉘우치는 힘, 잘못된 점을 다시 행하지 않는 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로 삼보와 스승께 지은 악업과 아래로 중생에게 해악을 끼친 악업,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로 삼보의 물건을 훔쳤거나 부처님 몸에 피가 흐르게 했거나 부처님의 법은 없다고 여기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삼보를 대상으로 짓는 악이 있고, 중생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 - 중생의 목숨을 빼앗거나 도둑질. 삿된 음행. 거짓말. 악언으로 몸과 입과 마음으로 중생에게 해를 끼쳐 지은 악업들 - 이 있습니다.
반면, 보살심은 어떤 중생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나 자신보다도 모든 중생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오직 중생을 돕겠다는 마음이 보살심입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면 그동안 중생에게 지은 죄악을 소멸하는 데에도 이롭습니다. 보살심은 다른 중생에게 해를 끼치는 악업과는 반대로 중생을 부처의 경지로 이끌며 오직 허공계에 가득 찰만큼 수많은 중생을 위하겠다는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허공계에 가득 찰만큼 수많은 중생을 대상으로 해를 끼치겠다는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몇몇 중생을 대상으로 삼거나 (특정한) 그룹을 대상으로 악한 마음이 생길 수는 있어도 모든 중생에게 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가능할까요? 중생에게 지었던 악업을, 같은 대상인 중생에게 ‘언제까지나, 그들의 어떤 행복이건, 내가 다 이루겠다.’는 생각의 힘이 생깁니다.
이같이 부처와 보살들께 발심을 해 ‘부처를 이루겠다.’는 것이며, 오직 타인을 위해 부처를 이루겠다는 것이므로 이는 일체지에 신심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일체지를 이루겠다는 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삼보를 향해 일체지를 이루겠다는 원을 세운다면 삼보에게 악업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신심 중에서 가장 큰 신심입니다. 그래서 ‘보살심’처럼 악업을 정화하는 데 뛰어난 것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평상시 우리가 지은 악업을 참회하고 정화하기 위해 절을 하고 탑돌이를 하거나 진언을 외우는 등 많은 선행들을 쌓습니다. 이 모든 선행은 아주 좋은 것이며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데 참 이롭습니다.
그러나 예불을 하는 순간에도 나태할 수도 있고, 머릿속에는 돈 생각으로 가득 차 있거나 잡념들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한없는 중생을 위해 일체지를 이루게’ 하시고, ‘이것을 이룬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눈물이 날 정도로 희열에 차서 보리심을 생각한다면 예불을 하는 순간, 그 어떤 나태함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질투 같은 나쁜 감정도 생기지 않습니다. 진정한 참회를 하려면 보리심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보리심은 말 겁의 불처럼 한순간에 반드시 (죄를) 태운다.”는 말은 공덕을 쌓을 때 보리심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며 악업 정화에도 보리심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일체지를 이루려는 사람이 복을 쌓고 죄악을 참회하는 데에는 오직 이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복을 짓고 악업을 소멸시키는 것, 이 둘 다 보리심을 수행함으로써 얻는 큰 이로움입니다.
“(보리심의) 헤아릴 수 없는 이로움을 미륵보살께서 선재동자께 말씀하셨노라.”
이 구절은 화엄경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입보리행론 해설 27. 보리심의 헤아릴 수 없는 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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