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성취

까르마빠 : 공성(空性)과 명료함은 일체로써 나타난다.

수선님 2018. 7. 15. 11:58
까르마빠 : 공성(空性)을 알고, 친밀해지면 원초적 지혜가 떠오른다.

 

 

우리는 윤회계를 흔히 거칠고 피상적으로 바라봅니다.

시간 개념을 봅시다. 우리는 1년을 하나의 구체적인 단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시간에 관한 다른 단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달, 하루, 한순간 등 많은 순간들을 더한다면 1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본질을 고찰해 보면, 내재하는 어떤 시간의 단위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아무런 내재적 시간의 단위도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체적으로 잡히는 확고한 객체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깨달았다고 해서 현상의 본질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새로 발견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공성은 무시 이래로 현존하는 것입니다.

깐규로(경·經)와 땐규르(논소·論疏)에 나오는 많은 불교 교리들은 부처의 가르침과 학자와 명상가였던 그의 제자들의 기록에 의존합니다. 여기에서는 공성, 즉 참 진리의 본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공성에 대해 명상할 때는 우리가 우리 것으로 간주하는 소유물 등 외적 객체 혹은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간주하는 내적 객체인 ‘나’라고 하는 것 등을 분석하는데 사용합니다.

각종 논리적 분석과 깊은 지식을 사용하여 이들 객체를 분석하여 공성을 확인해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것과 명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깨닫는 공성은 다릅니다.

우리의 깊은 지식을 이용하여 먼저 ‘공성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따라옵니다. ‘이것이 공성이다. 모든 현상은 공하다. 모든 현상은 가고 옴이 없다. 어떤 현상도 자체로서 생기지 않고, 다른 것으로부터 생기지도 않으며 등등’ 공성을 설명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종류의 서술과 논리를 동원합니다.

이것 모두는 우리 마음속에 생겨난 관념으로서 공성, 즉 우리의 지성이 새로 만들어낸 공성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공성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만들어낸 것은 우리의 지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듣고 사색함으로써 분석할 때의 공성은 객체입니다.

우리가 공성에 관해 명상할 때는 분석이나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편한 상태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석할 때는 날카롭고 정확한 지성을 이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명상 시에 일어나면 수행 속에 머물기 어렵기 때문에,

그 때에는 공성을 분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명상을 할 때는 공성의 의미가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마음속에 공성의 본질이 떠오르는 것은 수행의 단계들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공성의 본질을 모른다면 그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일단 안다면 그것과 친밀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명상을 통한 우리 안에 원초적 지혜가 떠오를 것입니다.

마음이 공성을 직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논리로는 모든 현상의 공성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논리는 현상이 공한 본질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논리적 분석을 한다 하더라도 현상의 본질은 여여하게 존재합니다.

탁자를 보고 우리의 막강한 논리를 적용하여 공성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경우를 예로 봅시다.

비록 탁자가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논리가 그것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논리만으로 모든 현상을 구체적이고 실존적으로 여기는 경향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관념적 사고에의 집착을 정화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야 현상의 공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으로 향하여 우리의 마음에 관해 명상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모든 현상의 본질이 <공성>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거기에는 원만하고 <명료한 측면> 역시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공성’이라고만 말한다면 단순히 ‘존재하지 않음’만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무시 이래로 현상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아왔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상의 공성을 발견하기 위하여 분석해 보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성을 빈 것, 즉 비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본질 역시 눈부시게 명석한 측면이 있습니다.

즉, 마음은 인식하고 나타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현상의 공성을 이해하면 그것은 환하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명료함과 공성은 일체로써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공성을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