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충국사(忠國師)가 어느날 시자(侍者)를 부르자 시자가 대답했다.
이와 같이, 세 차례 불러 세 차례 대답하니, 국사가 말하되 “내가 너를 배반한다고 여겼더니 네가 도리어 나를 배반하는구나” 하였다.
염·송·어
보령수(保寧秀)가 송했다.
“국사의 말씀이 헛되지 않거늘
시자는 세 번 불러도 소식이 없네.
평생의 심정은 다 쏟아 바쳤으니
안면 있는 이가 안면 없는 이만 못하네.”
승천회(承天懷)가 송했다.
“국사가 세차례 부른 것은 까닭이 있겠거늘
시자는 소리 내여 하나하나 대꾸했네.
그 속의 분명한 뜻 알지 못하여
도리어 배신자 되어 일생 일 그르쳤네.”
열재거사(悅齋居士)가 송했다.
“세 번 불러도 아무도 그를 몰라서
지금껏 천년 동안 그에게 속았네.
꽃 지고 물 흐르니 내가 그대를 저버리고
달 밝고 물 맑으니 그대가 나를 저버린다.”
지문조(智門祚)가 상당했는 때 어떤 중이 물었다. “국사가 시자를 세번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아기를 귀여워하면 추한 줄을 모른다.” 다시 물었다. “국사가 시자를 져버렸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맛 좋은 음식이라도 배부른 사람의 입에는 맛이 없느니라.” 다시 물었다. “시자가 국사를 져버린 뜻은 무엇입니까?” “뼈를 갈고 몸을 부숴도 갚을 길이 없느니라.”
감상
국사는 왜 자기의 부름에 세 번이나 응답한 시자에게 자기를 져버렸다고 말한 것일까. 앞 뒤의 문맥이 잘려 있어 실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분명히 국사가 시자의 깨달음을 시험한 경우였을 것이다.
국사의 부름은 네가 진리를 아느냐 또는 네가 내 마음을 아느냐 하는 것이었으리라. 시자가 바보같이 세 번씩이나 대답만 하고 있으니 국사는 시자에게 배반 당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제자를 시험하니 스스로 내가 너를 배반하였다고 하였고, 그 시험에 참뜻은 알지 못하니 네가 나를 배반했다고 하는 것이다.
스승이 이렇게 부른다면, 대답을 할 것이 아니라, 대번에 달려들어 코를 비틀어 놓아야 할 것이다. 사자는 금덩어리를 물고, 개는 돌덩이를 쫓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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