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

[스크랩] 禪門拈訟 20. 여릉(廬陵)의 쌀값

수선님 2018. 7. 29. 11:45

깨침과 깨달음

 

본칙

어떤 중이 어느 날 청원(淸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여릉(廬陵)의 쌀값은 어떤가”
 
청원이 말끝을 흐렸다.

염·송·어

천장초(天章楚)가 송했다.

“여릉의 쌀값이 어떤고 하니
싸거니 비싸거니 팔 겨를이 없네.
팔 겨를이 없다니 어름어름 하지마소.
겨울에 밭을 갈고 봄에는 씨뿌린다.”

황용남(黃龍南)이 송했다.

“여릉의 쌀값이 해마다 바뀌는데
길가에서 들은 소문 거짓일까 두려워
큰 시세는 샛길에서 물을 필요 없나니
비싸고 싼 것은 장사꾼을 찾아가라.”

운문고(雲門 )가 송했다.

“청원(淸源) 노장이 어쩔 줄 몰라
불법을 물었는데 쌀값으로 대꾸하네.
털끝만치 어긋나면 뒷공론만 만드니
눈도 코도 없건만 사람을 놀래주네.”

운대정(雲臺靜)이 송했다.

“여릉의 쌀값을 어떻게 대꾸할꼬.
선객을 만나면 끝없이 서성대네.
옛사람의 분명한 속마음을 알려는가.
산전(山田)에 보리 익어 가을 풍경이 족하네.”
무진거사(無盡居士)가 송했다.

“청원(淸源) 한 가닥이 소림에서 나왔는데
신의(信衣)가 와서 마음만을 전하네.
평상시에 법문한 것 아는 이가 없어서
모두가 여릉의 쌀값을 알고자 하네.”

열제거사(悅齋居士)가 송했다.

“여릉의 쌀값이 얼마나 되는가?
보름에는 달이 크고 그믐에는 적다네.
다시 강변에 혼자 깬 사람 있어
눈을 뜨고 새벽까지 꿈을 꾸고 있다네.”

감상

봉지쌀을 사다 먹던 시절이 있었다. 쌀가마니로 부의 척도를 가늠하던 시기가 있었다. 쌀값에 따라 민심이 좌우되고, 정치가 뒤바뀌는 시절 쌀값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절박한 관심거리였다.

평상시 아무리 불법을 가르쳐주어도 모르던 어떤 청맹과니가 물었다.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무어라고 답할까. 청원거사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쌀값은 오르내리고, 보름달은 크고 그믐달은 작다. 쌀값을 물어보지 마라. 네 마음이 쌀값이다. 쌀값을 모르느냐. 바보도 알 것이다. 불법의 참뜻은 쌀값이다. 쌀값을 알려고 분주하게 다니는 자는 헛것을 좇게 된다. 그런 자는 쌀값도 모를 것이다.

진정으로 쌀값을 알려고 하는 자는 불법을 생각하라. 불법의 참 뜻이 거기에 있다. 소문을 좇아다니거나 샛길에서 묻지 마라. 불법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장사꾼에게 묻지 마라. 불법은 값이 없다. 눈도 코도 없는 쌀값이 불법을 묻는 사람들의 코를 비뚤어 놓는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