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행고(行苦)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번뇌를 원수같이 여기며, 언제나 이런 원수-번뇌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이로 인해 번뇌라는 원수에서 벗어나 해탈 즉 깨달음을 이루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마음이 바탕이 되어, 또 내가 행하는 모든 선행이, 나중에 이룰 해탈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처의 법인 해탈 즉 열반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삼선취-인간. 아수라. 천상계-에 이를 수 있는 법은 외도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탈을 성취할 수 있는 법은 오직 무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아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종교로는 불교 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부처님의 법은 해탈 즉 열반입니다.
열반은 모든 번뇌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를 목표로 하여 이룰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부처님의 법’이라 합니다.
원수인 번뇌의 허물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중생을 위할 수 있습니다.
윤회계에 있는 중생은 번뇌의 힘에 의해 끌려 다닙니다.
번뇌를 끊은 아라한도 비록 거친 번뇌는 버렸지만 번뇌로 인한 법집의 습성은 아직 남아있기에
이들 역시 아직 윤회의 두려움 속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허공같이 수많은 중생이 지닌 고통의 뿌리인 그 습성조차도 완전히 없애길 바라는 마음이 점차 생길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키워야할 것입니다.
이로써 ‘내가 모든 중생을 고통의 원인인 법집의 습성까지 벗게 하겠다.’는 대자비의 성실한 마음이 생기고 이로 인해 허공과 같은 끝없는 중생이 고통의 원인인 습기에서조차 벗어나도록 ‘내가 일체지를 증득하겠다.’는 보리심 즉 오직 타인을 위하는 자비심과 ‘보리’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인간으로 태어난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먼저 이해를 하고 꾸준히 생각하여 이런 모든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하고는 다시 해이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반복해서 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에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를 차례대로 습성을 들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냥 되새기기만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변화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리심을 생각하고 또 생각함으로써 서서히 그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 중생을 보거나, 기억하기만 해도 내가 그를 위해 일체지를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이 꿈에서도 생깁니다.
이때에 비로소 보리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중심으로 하는 수행을 대승에서는 ‘자량도’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자량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 합니다.
상사도. 중사도. 하사도로 나눌 때, 자량도는 하사도의 경지를 이룬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말씀하신 첫 번째 ‘아제’ 즉 ‘가자.’는 ‘자량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입보리행론 해설 40. 보리심을 계속 증장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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