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불교는 크게 북방불교와 남방불교로 나누어진다. 몇 년 전에 남방불교의 수행서인 『청정도론』이 번역된 것도, 남방 수행에 관심이 많은 한국불교의 시대적인 요청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북방불교를 대표하는 선사상(禪思想) 혹은 조사선(祖師禪)을 강조하는 한국불교는 공안선(公案禪)과 돈오선(頓悟禪), 견성성불(見性成佛)만을 지나치게 주장하고 있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초기에 번역된 선경(禪經)에 비추어 이러한 한국불교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좌선삼매경』은 중국에 소승선경이 번역된 이후 나타난 최초의 선경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좌선삼매경』상ㆍ하 2권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홍시(弘始)4년에 장안에서 번역하여 5년 후(407년)에 다시 다듬었다. 복잡하고 간단함의 좋은 점을 취하여 시종일관 조직적(組織的)으로 정돈 되었고 내용이 충실하여 선경(禪經)중의 으뜸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진(後晋)의 요흥(姚興)이 401년(홍시3)에 장안으로 모셔온 구마라집은 402년 정월부터 소요원(逍遙院)의 서명각(西明閣)에서 승조(僧肇)ㆍ승예(僧叡) 등 여러 제자와 함께 경전과 논서를 한문으로 번역 하였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많은 경전과 논서 가운데 최초로 번역한 것은 선경(禪經)이다.
승예(僧叡)의 「관중출선경서(關中出禪經序)」에 의하면, 그 무렵 이미 중국에는 후한의 안세고(安世高)가 『선행법상경(禪行法想經)』,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등의 소승선경(小乘禪經)을 번역하였으며, 또 지루가참(支婁迦讖)이 『수능엄경(首楞嚴經)』 등을 번역하였으나 선정을 닦는 것에 관한 경전이 중국에 충분히 전해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도안(道安, 314~385)은 불완전한 선경을 지침으로 선정을 닦는 방법을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초기의 수선자(修禪者)들의 노력으로 중국에는 6세기 초에 독자적인 불교사상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중국선(中國禪)이며, 중국 선종의 대표적인 인물은 남천축에서 내조(來朝)한 보리달마(菩提達磨, ?~528)이다. 달마는 석가모니불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이은 28대 전승자로서 중국에 건너와 불법천자(佛法天子)인 양무제(梁武帝)와 만나 무공덕(無功德)이라는 한마디를 토(吐)한 후, 숭산 소림사에 들어가 9년간 면벽했으며, 눈 속에서 단비구법(斷臂求法)의 의지를 보인 제자 혜가(慧可)에게 법을 부촉하고는 그 전법(傳法)의 증명으로 한 벌의 가사를 내렸다고 전한다.
『좌선삼매경』의 내용
● 좌선삼매경- 상
먼저 처음에 게송은 5언(言) 4구(句)의 43게(偈)에 있어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선법(禪法)을 실제로 수행해야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에 장행(長行)의 일단은 스승이고자 하는 사람의 좌선입문자에 대한 준비로, 중생의 각종 병폐 중에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에 빠진 세 무리의 타고난 본래 모습의 특색을 들어 이들에 대한 적당한 관법(觀法)을 가르쳐야 하는 방법들을 설하고, 오종법문(五種法門, 즉 五停心)을 제시하고 있다.
상권에서는 먼저 장편(長篇)의 게송을 통하여 선(禪)을 닦아야 하는 이유를 설하고 있다. 그 다음에 선을 배우는 사람이 지녀야 할 윤리적 행위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오계(五戒)를 잘 지키고 죄를 짓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 뒤 중생들의 근기에 맞는 다섯 가지 관법(觀法)을 제시한다. 즉 제 1 탐욕을 다스리는 법문, 제2 성냄을 다스리는 법문, 제3 어리석음을 다스리는 법문, 제4 분별작용을 다스리는 법문, 제5 균등을 다스리는 법문이다.
1. 탐욕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부정관(不淨觀)을 닦아야 함을 설한다. 2종의 부정관을 말하고 있다. 첫째는 신체를 구성하는 36가지가 모두 부정하다고 관찰하는 것이며, 둘째는 죽은 자의 육체가 부패되어 백골(白骨)이 되어가는 아홉 단계를 차례로 관찰하는 9상관(想觀)이다. 이 9상관은 음욕을 다스리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관법으로 평가받아 왔다.
2. 성냄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심관(慈心觀)을 닦아야 함을 설한다. 먼저 자기와 친밀한 사람으로 자비의 실천을 확산하고, 마침내는 자기를 증오하는 사람에 대해서까지 자비를 행하라고 설한다.
3. 어리석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인연관(因緣觀)을 닦아야 함을 설한다. 곧 12인연을 관찰하는 것이다. 먼저 무명(無明)과 행(行)에서부터 생(生)과 노사(老死)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다음은 행(行)에서 유(有)까지의 9단계를 관찰하고, 마지막으로 12단계 전체를 총체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4. 분별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안나반나(阿那般那)삼매, 즉 염식관을 닦아야 함을 설한다. 염식관은 호흡을 헤아리며 하는 수행이다. 처음에는 일심으로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을 헤아리는데, 1에서 10까지 헤아린다. 그런 뒤 숨이 나가고 들어옴에 따라서 그 숨과 생각을 모두 한곳에 멈추게 하고, 마침내는 수(數), 수(隨), 지(止), 관(觀), 전(轉), 정(淨) 등의 여섯 가지 법문을 관찰하게 된다.
5. 등분행(等分行)과 중죄인(重罪人)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염불관(念佛觀)을 닦아야 함을 설한다. 부처님의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여실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1불(佛), 2불, 3불, 더 나아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상호를 일심(一心)으로 염(念)하라는 것이다.
● 좌선삼매경- 하
이상의 오문선(五門禪)은 즉 욕계정(欲界定)을 시사하며 그 불완전한 것을 지적하여 다시금 색계(色界) 초선(初選)의 이익을 나타내고, 또다시 초선이 결함을 들어 선(禪)을 이끌어 이선(二禪), 삼선(三禪), 사선(四禪)에 순차로 진입하여 나아가게 해서 무색계(無色界)의 사무색정(四無色定)을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사무량심(四無量心)의 관법(觀法)을 간략하게 서술, 즉 오신통(五神通)을 얻는 것을 나타내고, 신족통(神足通)을 설명하여 일단락을 맺고 있다.
이에 불제자는 오문선(五門禪)을 닦아 최후에 도달하는 곳은 열반임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이 열반에 도달하는 순서로 두 종류의 근기가 있는데, 첫 번째는 먼저 삼매(定)를 주로 하여 뒤에 통찰지(慧)를 얻는 것, 두 번째는 먼저 통찰지를 주로 한 뒤에 삼매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오문선에서 나아가 색계사선(色界四禪), 사무색정, 사무량심, 오신통을 얻는 과정을 가지고 앞 단락에서 설한 바와 같이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을 암시한다. 후자는 먼저 잘못된 생각이나 견해를 깨트려 바른 지혜를 얻기 위해 정(淨), 락(樂), 아(我), 상(常)의 전도된 견해(見解)를 타파하여 비정(非淨), 고(苦), 무아(無我), 무상(無常)의 바른 견해에 머무는 것을 설하고, 아래의 소위 사념처(四念處)의 설명보다 순차적으로 통찰지의 진보하고 발전함을 설하고 있다.
즉 사념처, 사제16행상(四諦十六行相), 사선근(四善根), 무루16심(無漏十六心), 견수이도(見修二道)1), 예류향(預流向)으로 시작하여 사향사과(四向四果)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주요 대목을 추려서 사물의 가장 중요하고도 견고한 것을 얻어 최후에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해탈하여 얻는 열반의 상(相)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나한(羅漢)으로서 홀로 수행하여 스스로 열반을 얻은 경지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 벽지불은 나한과 보살과의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의 근기로 되어 있다. 이상으로 하권의 전반을 할애하고 후반은 보살의 선관(禪觀)을 설명하고 있다.
보살도(菩薩道)로서의 선관은 성문(聲聞)과 같이 오종선관(五種禪觀)을 닦아서 열반에 이르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오종선관을 수행하여 불도(佛道)를 이루는 것을 이상(理想)으로 하고 있다. 보살도로서 염불관(念佛觀), 부정관(不淨觀), 자심관(慈心觀), 인연관(因緣觀), 수식관(數息觀)의 오종법문(五種法門)의 특상(特相)을 서술하고 최후에 선정을 닦는 자는 실제 모습이 심득(心得)으로 때와 방편을 관찰하여 나타내는 7언4구의 20게를 본경의 결론으로 하고 있다.
『좌선삼매경』의 특징
보살선관(菩薩禪觀)의 특징은 오종법문을 통하여 중생제도를 염원하는 것이다. 제법이 본래 공(空)함이 이에 달하는 것으로서, 이것 즉 제법실상(諸法實相)이 되는 것은 세 가지 특징에 있다.
오종법문 가운데서 인연관의 설명을 가장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12인연(因緣)의 각 부분과 12인연의 공(空)을 관(觀)하고, 12인연의 실상(實相)을 관하고, 12인연과 4제(諦)와의 관계와 37도품(道品) 등의 관계에 미치고 있다. 수식관에는 삼인(三忍)을 설명하여 공(空)이라는 이치를 밝히고 있으며, 염불관에 있어서는 생신(生身), 법신(法身)의 이관(二觀)을 설명하지만 이신(二身)의 개념은 소승의 교의(敎義)를 나타내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본경은 전체적으로 조직(組織)이 정연하고 내용이 충실하여 여러 선경(禪經)중에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지만 그 주된 특색을 열거하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제1에서 오종법문, 소위 오정심관(五停心觀)이 명료하고 균등하게 서술되어 있어 비난할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더구나 5가지 법문이 처음 선에 들어가는 자의 관법(觀法)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선팔정(四禪八定)2)의 기본이 되고 사선근(四善根),사향사과(四向四果)3)의 소승선관을 포함하여 다시 대승 보살선의 다섯 방면을 달성하는 것을 명시하고, 오종법문이 선관수도의 전체를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는 점은 다른 데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특징이라 말 할 수 있다.
송(宋)의 담마밀다(曇摩密多)가 번역한 『오문선경요법(五門禪經要法)』은 오문선을 표제(標題)하여 짓고, 경의 첫 부분에 마음이 혼란한 사람에게는 안반(安般), 탐욕이 많은 사람에게는 부정(不淨), 성냄이 많은 사람에게는 자심(慈心), 착아(著我)가 많은 사람에게는 인연(因緣), 심몰(心沒)하는 사람에게는 염불(念佛) 등을 설하여, 다른 선경에서와 같이 사대(四大), 육대(六大) 등의 관법(觀法)을 섞지 않고 순연한 오문선을 설하고 있다.
제2에서는 선관수도(禪觀修道)의 큰 계통이 거의 완성되어 있다.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은 수도(修道)의 단계를 망라하여 관법이 진보하고 발전하는 형상을 하나의 계통으로 합하려고 하고 있지만 다소 뒤섞여서 순서가 없거나, 통로가 있어 아직 조직적으로서의 모양을 갖추지는 못했다.
이 경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오종법문을 기초로 하여 사선팔정, 사선근, 사향사과, 연각(緣覺) 내지 보살도(菩薩道)를 전부 포용하여 그 맥락을 관통하는 수도의 단계를 만든 점은 실로 놓쳐서는 안 될 큰 특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수행도지경』에는 보살대승선(菩薩大乘禪)을 설하여 이전의 소승선(小乘禪)과의 관계가 특히 애매하다. 그러나 본경(本經)에서는 오문선으로 양자를 포괄하고, 또 한편으로는 연각은 물론 보살도(菩薩道) 또는 성문도(聲聞道)를 배태(胚胎)하여 서술함으로써 양자를 관계시키고 있다.
혹은 대소양승(大小兩乘)을 하나의 계통으로 융합한 것은 전체 불교의 교학(敎學)문제로 법화경(法華經)ㆍ화엄경(華嚴經)은 보살도를 기본으로 하여 성문도(聲聞道)를 포섭하는 태도를 취하고, 천태(天台)ㆍ화엄의 양 교학은 적극적으로 이를 천명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앞의 교리사 입장에서의 곤란한 문제를 선관수도(禪觀修道)의 한 부분을 약술한 본경을 통해 모든 답을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두 방면에서 그 시대까지 발달해온 대승보살도를 아비달마(阿毘達磨)에서부터 완성된 성문도와 연계시킨 점은 가벼이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제3은 전항의 수도 단계에 포함되는 것이지만 특히 사선팔정이나 소승선관(小乘禪觀)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사선팔정에 따라 오신통을 얻어 천상에 태어나는 과(果)를 얻는 것은 번뇌가 있는 범부(凡夫)의 선(禪)에 있어 사념처(四念處), 4제16행상, 무루16심을 지나서 4사문과(四沙門果)4)를 얻어 최후에는 해탈의 열반에 들어가는 것은 불제자의 무루선(無漏禪)이고 뒤쪽의 양자는 단연 구별해야만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 『수행도지경』의 특색이다. 이는 『수행도지경』의 해제에 서술되어 있다.
혹은 불교와 외도(外道)의 수도선관이 서로 다른 점이나 어긋난 것을 밝힐 필요에 쫓기고 있었다. 하지만 외도에도 통하는 사선오통(四禪五通)의 선법이 사실 불교의 선법에 있어 유력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으며, 소승아비달마(小乘阿毘達磨)의 실천문(實踐門)에는
사선(四禪) 없이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색계사선, 사무색정, 오신통 등이 천상에 태어나는 계열(系列)을 이루는 선법(禪法)과 사념처, 4제16행상을 지난 후에 색계사선, 사무색정에 머물러 무루16상에서 사향사과의 단계를 만드는 한 계통의 선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을 법상(法相)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치밀하고 너저분하고 좀스러운 아비달마의 직무상 능력이지만 지금 이 『좌선삼매경』에서는 극히 간결하고 명확하게 양자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본경은 색계사선, 사무색정, 오신통을 얻는 선법을 설하여 끝내고, 사념처 내지 사과(四果)에 이르는 성문도(聲聞道) 의 선법을 밝히는 중간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세존의 제자들은 다섯 가지 법문을 배워 익히고, 뜻은 열반을 추구하는데,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혹은 삼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쾌락 때문이다. 혹은 통찰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괴로움과 근심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삼매가 많은 사람은 먼저 선법을 배우고 뒤에 열반을 배운다. 통찰지가 많은 사람은 곧바로 열반으로 나아간다. 곧바로 열반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아직 번뇌를 끊지 못하였고, 또한 아직 선을 얻지 못하였지만, 온 마음을 다 기울여 흩어지지 않고 곧바로 열반을 구하여 애착 등 여러 번뇌를 초월하는 것이다. 몸은 진실로 무상(無常)ㆍ고(苦)ㆍ부정(不淨)ㆍ무아(無我)이나 몸이 전도되었기 때문에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이라 한다. ......수행자는 전도된 것을 타파하고자 하기 때문에 마땅히 사념지관을 익힌다. 운운(云云)"
-권하(卷下), 사념처(四念處)의 처음
이 색계사선, 사무색정, 오신통을 얻는 선법과 사념처 내지 나한과(羅漢果)와 선법과의 관계가 교묘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다. 즉 다같이 오문(五門)의 선법을 수행해도 삼매(定)에 기우는 사람은 먼저 전자로 나아가고 통찰지에 기우는 사람은 먼저 후자로 나아가며, 모든 최후에는 열반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후자가 무루(無漏)앞에 15심(十五心)5)의 통찰지를 얻은 후에 삼매를 주로 한 사선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을 사향사과의 설명에서 밝히므로써 색계사선. 사무색정, 오신통(자세히 논하면 사선에는 정혜(定慧)가 함께 존재하지만 사념처, 사제관(四諦觀) 등에 비하면 대체로 삼매를 주로 한다) 중 어느 곳에서 통찰지를 얻는가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수행도지경』에서는 범부의 유루선(有漏禪)과 불제자의 무루선(無漏禪)을 판별하고, 전자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경은 양자를 융합하여 관계한 점 또한 경시해서는 안 될 일대 특징이다. 『좌선삼매경』을 편술하는 자료
이경은 출삼장기(出三藏記) 제 9권에 수록된 승예(僧叡)의
「관중출선경서(關中出禪經序)」에 "많은 승려들이 선요(禪要)의 초록을 저술한 것을 통하여 한번 깨달으니 이 3권을 얻다."6)로 기술한 것에 의하면 그가 구마라집에게 선법을 받은 후에 선관에 관한 여러 사람의 설을 발췌하여 편찬한 것을 나집삼장(羅什三藏)에게 받아 번역하여 출간하게 된 것이다.
명(明)의 대장경에는 경의 제목 아래에 승가라찰조(僧伽羅刹造)라 명기하고 있지만 『수행도지경』의 저자인 승가라찰이 본경을 저술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경은 서북 인도 혹은 서역의 여러 나라에서 누군가가 선법에 관한 여러 사람의 설을 한데 모았거나 혹은 나집삼장이 승예에게 보였을 때에 스스로 편집하여 출간한 것일 것이다.
승예가 서문에서 이경을 편술(編述)한 것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자료에 관해 서술한 곳은 다음과 같다.
(1) 경초(經初)의 43게는 구마라라타(鳩摩羅羅陀)가 지은 것이다.
(2) 경 마지막 20게는 마명(馬鳴)이 지은 것이다.
(3) 오종법문(五種法門)7)에서는 바수밀(婆須密), 승가라찰(僧伽羅叉), 구파굴(
漚波崛
), 승가사나(僧伽斯那), 륵비구(勒比丘), 마명(馬鳴), 라타(羅陀)의 선요(禪要) 중에서 초록하여 번역하였다.
(4) 육각(六覺) 중의 게〔수식관(數息觀)의 육묘문(六妙門) 제1, 수(數)에서의 설명에 육각이 나온다〕는 마명보살이 닦고 익힌 것이고 지금은 이것에 따라 육각을 번역했다.
(5) 경의 처음에 음욕의 모습, 성냄의 모습, 어리석음의 모습을 그 삼문(三門)과 함께 모두 승가라찰이 찬(撰)한 것이다.
(6) 식문(息門)의 6가지 느낌〔六事〕(수식관과 육묘문)에 관해서는 여러 논사의 설을 모았다.
(7) 보살선(菩薩禪) 중에는 훗날 다시 『지세경(持世經)』에 의거하여 증보(增補)하고, 별도로 12인연(十二因緣) 1권, 요해(要解) 2권을 찬(撰)하였다.
승예가 찬역한 이 경에 대하여 그들 스스로 말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위의 자료에 관해서도 거의 모두 신빙성이 있지만 처음부터 관계 문헌을 섭렵한 결과가 아니고서는 확실하게 보증할 수는 없다.
『좌선삼매경』과 『수행도지경』의 관계 오직 승가라찰에 관한 부분에서 『수행도지경』과 비교하고 있다. 처음 선에 들어가는 자가 그 마음의 모습과 성질을 어떻게 관(觀)해야 하는 가에 대한 설명은 두 경이 서로 유사하다. 특히 탐진치(貪瞋癡) 세 가지 모양을 설하는 단락은 『수행도지경』권2의 「분별상품(分別相品)」 제 8에 나타나는 19배(輩) 중에 처음 3배의 문장과 거의 일치한다.8) 『좌선삼매경』이『수행도지경』에 따라서 이 단락의 문장을 지은 것이 아닐까 한다.
또 이 경의 다섯 가지 법문 중에 염불관을 제외한 사문(四門)은 『수행도지경』의 같은 품에 열거한 부분과 모두 같다. 하지만 승예가 이르기를 "음욕의 모습, 성냄의 모습, 어리석음의 모습은 그 삼문(三門)과 함께 모두 승가라찰이 찬(撰)한 것"9)이라고 하며, 『수행도지경』과의 비교에서는 음에치(
婬恚癡
)의 삼상(三相)은 인정되지만 그 삼문에 관한 설명은 크게 다른 것이 있다고 한다.
이 경 전체의 결구는 『수행도지경』과 유사하게 나타나고, 후자는 전후가 뒤섞여서 시종일관되게 맥락을 벗어나 부족하지만 대체로 오정심에서 시작하여 사선, 사무색, 오통을 얻는 한 계열을 나타낸 후에 사념처 내지 사향사과의 한 계열을 나타내고, 최후의 연각도와 보살선을 설하고 선관수도(禪觀修道)의 단계를 개괄하고 있는 점은 두 경 대부분에서 흔적이 보이고 있다.
오히려 사선과 함께 성문도 단계의 정도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두 경 모두 대부분 유부(有部)의 법상(法相)에 치우치면서 양자 모두 다소 비유부(非有部) 계통의 법상을 가미한 점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좌선삼매경』의 번역을 전하고 유포함 이 경은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구마라집 삼장(三藏)이 역출(譯出)한 것이다. 승예의 서문에 의하면, 홍시(弘始) 9년(서기 406년)윤달 5일 제차 검교(檢校)한 것을 구하여 처음 나올 때에 자세히 알지 못한 것을 따져 상정한 것이고, 『출삼장기』는 『좌선삼매경』외에 『선법요해(禪法要解)』 3권의 이름을 열거하여 그 아래에 거듭 교정하여 일부를 주기(註記)하고 있다. 하지만 『선법요해』와 이 경이 동일한지 그렇지 않으면 이 경의 아래에 기록해야 하는데 잘못하여 주해(註解)했을 것이다.
『역대삼보기(歷代三寶記)』는 이진록(二秦錄), 보창록(寶唱錄) 등에 따라 처음 번역한 시기를 홍시 4년 정월 5일이라 기록하고, 『개원록(開元錄)』 등은 그대로 답습하여 처음 번역하고 거듭 교정하여 년시(年時)를 다음가 같이 병기하고 있다. 따라서 권수에 대하여 현존하는 것은 2권이고, 승예의 서(序)에 삼장기(三藏記), 삼보기(三寶記) 등은 3권으로 법경(法經), 언종(彦悰), 정태(靜泰)의 세 곳의 기록은 2권이고, 『개원록』은 3권 혹은 2권이지만 책을 나눔에 있어 내용의 증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음 이 경의 이역이명(異譯異名)에 대해 경록(經錄)의 소재를 한마디로 말하면 『역대삼보기』와 함께 불경의 기록에 『좌선삼매경』3권, 『아련약습선법(阿練若習禪法)』2권, 모두 구마라집이 번역한 것으로 동본이역(同本異譯)으로 기록하고 법경, 언종, 정태의 세 가지 기록 또한 동본이역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삼보기, 불경의 기록과 함께 송(宋)의 구나발타라가 『아련약습선법(阿練若習禪法)』2권을 역출한 것을 기재하고 있다. 『출삼장기』에서는 『아련약습선법』의 실역(失譯) 부분에 이 보살선법의 제1권을 초출(抄出)한 것이라고 주기(註記)하고 있을 분이고, 구마라집이나 구나발타라도 이 경의 역출(譯出)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개원록』 등에 보면 구마라집 역(譯)의 『좌선삼매경』과 구나발타라 역의 『아란약경(阿蘭若經)』은 같은 본 다른 번역으로 두 가지 번역이 하나로 존재하지만, 후자는 결실(缺失)하여 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구마라집 역의 『아란약경』은 문장이 전부 동일하기에 오직 이름을 달리하여 전할뿐 다르게 해석해서는 안 되며 두 줄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발타라 역의『아란약경』에 관해서는 경록(經錄)의 잘못으로 누락되어 오직 구마라집이 번역한 것만 전해지고 있다.
『좌선삼매경』이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
좌선삼매경에 관한 세밀한 주해(註解) 연구는 거의 없지만 앞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여러 선경(禪經) 중에 가장 뛰어난 경전이므로 남북조 시대의 선법(禪法)을 수행하는 자는 반드시 독송을 하였고 단순히 선경(禪經)이라 말하면 이 경을 가리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 변천(變遷)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당대의 문헌에 의하면 남방의 혜원(慧遠) 일파는 각현(覺賢)이 번역한 『달마다라선경』을 선경으로 진귀하게 여겨 소중히 대하였고, 구마라집의 일문(一門)을 비롯하여 북방의 선계(禪界)에서는 『좌선삼매경』이 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선관(禪觀)을 섭취하고 종지(宗旨)의 발달에 따라 다음 단계의 질서를 세우려고 했던 것처럼 조직법(組織法)으로 나아가며, 후에 천태지의(天台智
顗
)가 지관법문(止觀法門)을 종합적으로 대성할 즈음에도 이 경을 적절히 참고했을 것이다.
천태지의는 『차제선문(次第禪門)』 등 선경에서 말하는 것을 인용하는 경우 반드시 이 경을 가리키고 주로 이 경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아 음으로 양으로 중국선교(中國禪敎)의 발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구마라집의 생애
구마라집〔Kumarajiva, 344~413 (또는 350~409)〕은 중국 4대 역경가중 한명이다. 구자국(龜玆國) 출신으로 구마라집ㆍ구마라집바(鳩摩羅什婆)ㆍ구마라기바(拘摩羅耆婆ㆍ鳩摩羅耆婆)ㆍ구마라시바(鳩摩羅時婆) 등으로도 음사하고, 줄여서 라집(羅什)ㆍ집(什)이라고도 하며, 동수(童壽)라고 한역한다.
전기를 기술한 근본자료인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권 14(대정장 55, pp. 100~102)에는 405~418년 사이라고 하였고, 『양고승전(梁高僧傳)』 권2(대정장 50, pp. 330~333)에서는 405년(흥시 7)ㆍ406년(흥시 8)ㆍ409년(흥시 15) 등 세 가지 설을 기록하였고, 『광홍명집(廣弘明集)』 권 23에 수록되어 있는 승조(僧肇)의 『구마라집법사뢰(鳩摩羅什法師
誄
)』(대정장 52, p. 264b)에는 "413년(홍시 15) 나이 70세가 되던 해 4월 13일 대사(大寺)에서 입적하였다"라고 하는 등 그의 생몰연대는 여러 자료마다 다른 점이 많다.
생몰연대에 대한 의문이 있으나 승조가 찬술했던 『구마라집법사뢰』(『광홍명집』 권 23)의 설에 근거하여 홍시 15년(413)을 입멸 연대로 하고 , 이 때의 나이가 70세라고 안 것을 근거로 거꾸로 계산하면 건원 2년(344)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마라집과 승조를 종조로 하는 삼론종의 계승자라고 자칭하는 길장(吉藏)의 저술인 『백론소(百論疏)』에서는 구마라집의 입멸 연대를 405년(홍시 7)이라 하였고, 『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에서는 406년(홍시 8)이라고 하는 등 기록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문제가 있다.
구마라집은 인도사람인 구마라염(鳩摩羅炎)을 아버지로, 구자국왕(龜玆國王)의 누이동생을 어머니로 하여 구자국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에 출가하여 경(經)을 배워 날마다 1000게송을 암송하였고, 아홉 살 때는 역시 출가했던 어머니와 함께 계빈(
髻賓
)으로 옮겨 반두달다(槃頭達多)에게 사사하고 잡장(雜藏)인 『중아함경』ㆍ 『잡아함경』을 배웠다. 열두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계빈국(
髻
賓國)을 떠나 구자국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소륵(疏勒)에 들려서 부처님 발우를 머리에 이었다. 구마라집은 소록에서 머문지 1년 동안에 『아비담(阿毘曇)』ㆍ『육족론(六足論)』ㆍ『증일아함경』 등을 독송하였다.
사문인 희견(喜見)의 추천에 의하여 소륵왕(疏勒王)에게 중용되어 『전법륜경(轉法輪經)』을 강의 하였다. 이밖에 4베다ㆍ5명(五明: 聲明ㆍ工巧明ㆍ醫方明ㆍ因明ㆍ內明)과 같은 인도 고전을 비롯하여 여러 학문을 널리 연구하였다.
구마라집의 초기학습은 소승 불교를 주로 하였지만 수리야소마(須利耶蘇摩)에게 사사하여 대승불교를 배워 『중론(中論)』ㆍ백론(百論) 등을 배웠다. 다시 구자국으로 돌아가던 중 온숙국(縕宿國)에서 당시 명성을 떨치던 도사(道士)와 논쟁하여 굴복시키자 명성이 사방에 퍼졌고, 구자왕은 몸소 온숙에 가서 구마라집을 모셔왔다. 20세에는 비마라차(卑摩羅叉)에게서 『십송율(十誦律)』을 배웠다.(혹은 소록의 불타야사(佛陀耶舍)에게서 『십론송』을 배웠다.) 그 후 구자국의 신사(新寺)에 머물며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을 입수하여 공부하기 시작해서 마침내 모든 대승경론(大乘經論)에 두루 통달하였다.
구마라집에게 일찍이 소승교를 가르쳐준 옛 스승인 반두달다는 계빈국에서 구자국으로 와서 구마라집으로부터 대승의 깊은 뜻을 배웠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대승학자로서의 구마라집의 명성은 서역 전역과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당시 관중(關中)에서 세력을 떨친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은 382년(건원18)에 장군 여광(呂光)에게 구자국을 정벌하여 왕실을 멸하고 구마라집을 데려오도록 하였다. 이에 구자국을 정벌하고 구마라집을 동반하고 전진으로 돌아가던 여광은, 부견이 요장(姚
萇
)에게 살해되어 전진(前秦)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양주(凉州)를 평정하여 후량국(後凉國)을 세웠기 때문에 구마라집도 16~17년간 양주에 머물렀다.
후에 후진(後秦)의 요흥(姚興)은 401년(흥시 3)에 후량을 토벌하고 구마라집을 장안으로 모셔왔다. 도안(道安)을 숭배했던 전진왕 부견의 뒤를 이어받아 삼보를 존숭한 요흥은 국사(國師)의 예를 갖추어 구마라집을 맞이하였다. 구마라집은 402년(홍시 4) 정월부터 소요원(逍謠院)의 서명각(西明閣)에서 승조(僧肇)ㆍ승엄(僧嚴) 등을 비롯한 여러 제자와 함께 경론을 한역하였다. 그 후 십여 년간 오로지 경론의 전역(傳譯)과 강설(講說) 등에 종사하면서 문하에 수천 명의 영재를 교화하였다.
구마라집이 402년(홍시 4)부터 413년(홍시 15)에 걸쳐서 12년 동안에 번역했던 경전이 매우 많은데, 『출삼장기집』에서는 35부 294권,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에서는 74부 384권, 『역대삼보기(歷代三寶記)』에서는 97부 425권이라고 하였다. 어느 설을 따르던 300권 이상의 대번역사업을 완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주된 것을 보면『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ㆍ『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ㆍ『아미타경 (阿彌
陀經)』ㆍ『사익범천소문경(思益梵天所問經)』ㆍ『유마경(維摩經)』ㆍ『선비요법경(禪秘要法經)』 등의 선경전(禪經典)과, 그리고 『십송율(十誦律)』ㆍ『십송비구계본(十誦比丘戒本)』
등의 율전(律典), 또한『중론(中論)』ㆍ『십이문론(十二門論)』ㆍ『백론(百論)』ㆍ
『대지도론(大智度論)』ㆍ 『성실론(成實論)』등의 논서(論書)를 비롯하여
『마명보살전(馬鳴菩薩傳)』ㆍ『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ㆍ 『제바보살전(提婆菩薩傳)』 등의 전기류(傳記類)에 이르고 있다. 그 밖의 저서로서는 요흥을 위하여 『실상론(實相論)』 2권을 지었다고 한다.
또 여산혜원의 의문에 대해 답장을 보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구마라집법사대의(鳩摩羅什法師大義)』 3권 18장은 『대승대의장(大乘大義章)』이라고도 한다. 구마라집이 일생 동안 가장 힘을 기울인 것은 반야 계통의 대승경전과 용수(龍樹)와 제바(提婆)계통의 중관부 논서의 번역으로 인도 중관불교와 주요한 대승경전을 중국에 전달한 최대의 공로자였다.
구마라집의 역출경전과 그의 문하에서 수학한 많은 제자들은 이후 중국불교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론』ㆍ『백론』ㆍ『십이문론』 등 세 가지 논서는 단순한 번역에 그치지 않고, 그의 지도를 받은 승조ㆍ담연 등의 제자들을 통하여 철학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다시 승랑(僧朗)ㆍ승전(僧詮)ㆍ법랑(法朗) 등을 경유한 후 수나라의 길장(吉藏)에 의해서 삼론종(三論宗)으로서 집대성되기에 이른다. 또 『대지도론』도 삼론(三論)과 함께 사론학파(四論學派)를 발생 시켰으며, 다시 『법화경』은 천태종이 성립하는 근거를 제공하였다. 또한 『성실론』은 성실학파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 밖에 『아미타경』과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은 정토교의 소의경론이 되었다. 『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 등은 미륵신앙의 발달을 촉진 시켰으며, 『좌선삼매경』 등은 보살선(菩薩禪)의 유행을 촉진시켰다.『범망경(梵網經)은 대승계율을 전하였으며, 『십송률』은 율장 연구의 자료를 제공하였다.
그는 고장(姑藏)에서 여광에 의해 억지로 구자국(龜玆國)의 왕녀를 처로 맞이하였고, 장안에서는 요흥에게서 기녀(妓女) 열명을 제공받았다. 구마라집은 강설할 때에 "예를 들면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모든 사람들은 냄새나는 진흙을 보면서도 오직 연꽃을 보아야 한다."(『양고승전(梁高僧傳)』권2, 구마라집전)라고 변호했다고 하는데, 혹은 전설에 불과할 뿐 사실이 아닐지 모르지만, 계율을 지키는데 엄격했던 도안(道安)이나 혜원(慧遠) 등과는 다른 특이한 수행자였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삼천 명에 이르는 구마라집의 문하생 중에 승조(僧肇). 승애(僧叡)ㆍ 도생(道生)ㆍ 도융(道融)ㆍ 도항(道恒)ㆍ담영(曇影)ㆍ혜관(慧觀)ㆍ담제(曇齊)10) 등을 구마라집 문하의 8준(俊)이라고 하는데, 특히 앞의 4명은 관중의 4걸(四傑) 또는 4성(四聖), 뒤의 네 명은 4영(四英) 이라고 한다.
『좌선삼매경』을 번역하면서 구마라집이 번역을 주로 한 학승이라는 편견 때문에 그의 선경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남방 수행서인 『청정도론』과 『좌선삼매경』비교를 통하여 남방 선수행(禪修行) 체계와 중국에 처음으로 언급된 보살선(菩薩禪)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도 『좌선삼매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본서가 현재 우리나라 수행자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역자 능력 부족으로 『좌선삼매경』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가차 없는 질정을 바란다.
구마라집 한역/자응 역주/불광출판부/자료입력:안정훈출처 : 세존사이트 http://sej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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