坐禪三昧經 좌선삼매경

[스크랩] 좌선삼매경 1. 선(禪)을 닦아야 할 이유

수선님 2018. 7. 29. 11:22

좌선삼매경 1. 선(禪)을 닦아야 할 이유

 

 

 

導師說難遇, 聞者喜亦難.

大人所樂聽, 小人所惡聞.

衆生可愍傷, 墜老死嶮路.

野人2)恩愛奴, 處畏癡不懼

世界若大小, 法無有常者.

一切不久留, 暫現如電光.

是身屬老死, 衆病之所歸.

薄皮覆不淨, 愚惑爲所欺.

汝常爲老賊, 呑滅盛壯色.

如華鬚枯朽, 毁敗無所直.

頂生王功德, 共釋天王坐, 報利福弘多, 今日悉安在.

此王天人中, 欲樂具爲最, 死時極苦痛, 以此可悟意.

諸欲初軟樂, 後皆成大苦.

亦如怨初善, 滅族禍在後.

是身爲穢器, 九孔常流惡.

亦如那利瘡, 絶治於醫藥.

骨車力甚少, 筋脈纏識轉, 汝以爲妙乘, 忍著無羞恥.

死人所聚處, 委棄滿塚間.

生時所保惜, 死則皆棄損.

常堂念如是, 一心觀莫亂.

破癡倒黑瞑, 執炬以明觀.

若捨四念止, 心無惡不造.

如常逸無鉤, 終不順調道.

今日營此業, 明日造彼事, 樂著不觀苦, 不覺死賊至.

忽忽爲己務, 他事亦不閑.

死賊不待時, 至則無脫緣.

如鹿渴赴泉, 已飮方向水, 獵師無慈惠, 不聽飮竟殺.

癡人亦如是, 懃修諸事務, 死止不待時.

誰當爲汝護.

人心期富貴, 五欲情未滿.

諸大國王輩, 無得免此患.

仙人持呪箭, 亦不免死王.

無常大象蹈, 蟻蛭與地同,

且置一切人.

諸佛正眞覺, 越度生死流, 亦復不常在.

以是故堂知.

汝所可愛樂, 悉應早捨離,, 一心求涅槃.

後捨身死時, 誰當證知我.

後得遇法寶, 及以不遇者, 久久佛日出, 破大無明暝.

以放諸光明, 示人道非道.

我從何所來, 從何處而法, 何處得解脫.

此疑誰當明.

큰 스승(導師)3) 의 말씀은 만나기 어렵고 듣는 자가 기뻐하기 또한 어렵다.

대인은 듣기를 즐거워하고 소인은 듣기를 싫어한다.

중생은 가엾이 늙고 죽음의 험난한 길에 떨어진다.

 

야인은 은애의 노예로서 어리석어 두려움에 처해서도 두려워할 줄 모른다.

세계는 비록 크고 작은 것이 있지만 법은 영원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일체의 것은 오래 버물지 않으니 잠시 나타나는 것이 번갯불과 같다.  

 

이 몸은 늙고 죽음에 속하고 갖가지 병들이 돌아갈 곳이다.  

얇은 가죽으로 더러운 곳을 가리고 어리석음과 미혹에 속게 된다.  

항상 늙음의 도적이 건장한 기색을 삼켜 소멸시킨다.  

 

꽃다발이 마르고 썩는 것과 같이 훼손되어 가치가 없어진다.  

정생왕(頂生王)4)의 공덕은 석천왕(釋天王)5)과 함께 앉고 과보의 이익과 복덕은 크고 많아서 오늘은 모두 편안하게 한다.  

이 왕은 천인 가운데서 욕락을 갖추는 것으로 최고를 삼지만 죽을 때는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이것 때문에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일체의 욕망은 처음에 부드럽고 즐거우나 뒤에는 모두 커다란 고통이 된다.  

또한 원수도 처음에는 잘하지만 종족을 멸망시키는 화가 뒤에 있는 것과 같다.  

 

이 몸은 더러운 그릇이라 아홉 구멍(九孔)6)으로 항상 더러운 것이 흐른다.  

또한 나리(那利) 종양처럼 의약으로 치료할 수 없다.  

 

골차(骨車)의 매우 적고 근육과 맥박에 묶여 의식이 오락가락하니

그대는 그것을 미묘한 수레로 삼아 인착(忍著)하여 수치심이 없다.  

 

죽은 사람이 모이게 되는 곳에 버려져 무덤사이에 가득 찬다.  

살아서는 보호하고 아끼더니 죽고 나니 모두 버려서 훼손된다.  

 

항상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되 한마음으로 관찰하여 흔들리지 말라.  

어리석음과 뒤집힘과 검은 것과 어두움을 깨트리고 횃불을 들고 밝게 관찰하라.  

 

만약 사념지(四念止)7)를 버린다면 마음은 어떤 악한 짓도 하지 아니함이 없다.  

마치 코끼리를 풀어놓아 굴레가 없는 것과 같이 끝내 조도(調道)에 따르지 않게 된다.  

 

오늘 이 업을 짓고 내일 저 일을 만들며 즐거움에 집착하여 고통을 살피지 못하니

죽음의 도적이 다가왔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오늘 이 업을 짓고 내일 저 일을 만들며 즐거움에 집착하여 고통을 살피지 못하니

죽음의 도적이 다가왔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바쁘게 자신의 일을 하고 남의 일도 또한 등한히 하지 않는다.  

죽음의 도적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다가온 인연은 벗어날 수 없다.  

 

마치 사슴이 목이 말라 샘가에 다가가 물을 미시려 하다가

마침내 무자비한 사냥꾼의 소리를 듣지 못해 죽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부지런히 여러 가지 사무를 닦더라고 죽음에 이르면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누가 마땅히 그대를 보호해 줄 것인가?  

 

사람의 마음은 부귀를 기다리지만 다섯 가지 욕정〔五欲〕8)이 아직 차지 않는다

모든 대국의 왕들도 이 환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인이 주술의 화살을 지니고 있더라도 어떠한 죽음의 왕을 피할 수 없다.  

무상의 큰 코끼리는 개미나 거머리 밟기를 땅과 같이 한다.  

그런데 일체의 사람들은 문제삼지 않는다.  

 

모듬 부처님의 바르고 참된 깨달음으로 생사의 흐름을 건너더라도 또한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대가 사랑하고 즐기는 것들을 다 일찍이 버리고 일심으로 열반을 구해야 한다.  

 

뒷날 몸을 버리고 죽을 때 누가 마땅히 나를 깨닫게 할 것인가?  

다시 법보를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오랫동안 부처님의 빛이 나와 커다란 무명의 어둠을 깨뜨리고 일체의 광명을 놓아 도()와 도 아닌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리라.  

 

나는 어느 곳에서 와서 어느 곳으로 가며 또 어느 곳에서 해탈을 얻겠는가?  

이런 의문을 누가 마땅히 밝혀 주리오.

 

 

佛聖一切智, 久遠乃出世.
一心莫放逸, 能破汝疑結.
彼不樂實利, 好著弊惡心, 汝爲衆生長, 當求實法相.
誰能知死時, 所趣縱何道.
警如風中燈, 不知滅時節.
至道法不難, 大聖指事說, 說智及智處.
此二不假外.
汝若不放逸, 一心常行道, 不求得涅槃, 第一常樂處.
利智親善人, 盡心敬佛法, 厭穢不淨身, 離苦得解脫.
閑靜修寂志, 結跏坐林間, 檢心不放逸, 悟意覺諸緣.
若不厭有中, 安睡不自悟, 不念世非常, 可畏而不懼.
煩惱深無底, 生死海無邊, 度苦船未辦, 安得樂睡眠.
是以當覺悟, 寞以睡覆心, 於四供養中, 知量知止足.
大怖俱未免, 當宜懃精進.
一切苦至時, 悔恨無所及.
衲衣坐樹下9), 如所應得食, 勿爲貪味故, 而自致毁敗.
食過知味處, 美惡都無異.
愛好生憂苦.
是以莫造愛.
行業世界中, 美惡無不更.
一切已具受, 當以是自抑.
若在畜獸中, 飼草10)爲具味.
地獄呑鐵丸, 燃熱劇?鐵.
若在??中, 膿吐火糞屎, 涕唾諸不淨, 以此爲上味.
若在天宮殿, 七寶宮觀中, 天食蘇陀味, 天女以娛心.
人中無貴處, 七饌備衆味.
一切曾所更.
今復何以愛, 往返世界中.
厭更苦樂事, 雖未得涅槃, 當懃求此利.

부처님의 성스러운 일체 지혜는, 아득한 옛날에 세상에 나왔다.
일심으로 게을리 하지 말아야 그대의 의심덩어리를 깨트릴 수 있다.

중생들은 참다운 이익을 즐기지 아니하고 폐악(弊惡)한 마음에 집착하나니,

그대는 중생들을 위하여 오랫동안 마땅히 참다운 법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누가 능히 죽을 때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할지 알 수 있겠는가?

예컨대 바람속의 등불처럼 사라질 시기를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도법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나니 위대한 성현께서는 이 일을 가리켜 설하시고

지혜와 지혜의 처소(智處)를 설하셨다.

이 두 가지는 바깥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대가 만일 게으르지 않고 일심으로 항상 도를 행한다면

오래지 않아 열반의 제일가는 상락처(常樂處)를 얻을 것이다.

날카로운 지혜로 착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마음을 다하여 불법을 받드니

더럽고 깨끗하지 않은 몸을 싫어하여 고통을 여의고 해탈을 얻는다.

한가롭고 고요히 적지(寂志)11)를 닦아 결가부좌한 채 숲 속에 앉아 마음을 점검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으므로

뜻을 깨닫고 갖가지 인연을 깨닫는다.

만일 유중(有中)12)을 싫어하지 않으면 편안히 잠자고 스스로 깨닫지 않으며 세상이 영원하지 않음을 생각하지 않고 두려워해야 하나 두려워하지 않고 번뇌가 깊어 끝이 없으며 생사의 바다는 가이 없고 고통을 건너갈 배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는데 어찌 잠자는 것을 즐길 수 있으리오.

이로써 마땅히 깨닫고 잠자는 것으로 마음을 덮지 말라.

네 가지 공양(四供養)13) 중에서 양을 알고 그침과 만족함을 알아야만 한다.

커다란 두려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니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라.


일체의 고뇌가 닥칠 때에는 회한이 미칠 곳이 없다.

납의(衲衣)14)를 걸치고 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마땅히 음식을 얻을 것이니


맛을 탐냄으로써 자신을 훼손하지 말라.

먹는 것이 지나치면 미처(味處)를 알더라도 좋고 나쁨이 모두 다르지 않다.

사랑하고 좋아하면 근심과 고뇌를 낳는다.

이런 까닭에 사랑을 만들지 말라.

업을 행하는 세계 속(行業世界中)15)에서는 좋고 나쁨이 모두 다르지 않다.

일체를 이미 갖추고 받았으니 마땅히 이것으로써 스스로를 억누르라.

만약 축생 중에 있다면 사초(飼草)16)하여 맛을 갖추게 되리라.

지옥에서는 쇠구슬을 삼키나 타오르는 열이 극심해서 쇠를 물리친다.

만일 설여(
(薜荔)17)속에 있다면 고름을 토하고 똥과 오줌을 태운 것, 눈물과 침 등의 깨끗하지 않은 것들,

이것들로써 으뜸가는 맛을 삼는다.

만일 하늘의 궁전에 있으면 칠보의 궁전 속에서

하늘의 음식과 소타(蘇陀)18)를 맛보며 천녀들이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사람들은 호화롭고 부귀하기를 힘써 일곱 가지 음식으로 갖가지 맛을 갖추었다.

일체는 거듭 바뀌는 것이다.

이제 다시 무엇을 사랑하며 세계 속에 왕래하리오.

더욱이 괴롭고 즐거운 일을 싫어한다면

비록 열반을 증득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마땅히 부지런히 이 이로움을 구해야만 한다.

 

 

 

 


출처 : 무인아제
글쓴이 : 무인아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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