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해설

[스크랩] [碧巖錄] 제35칙 文殊前三三 - 무착과 오대산의 문수보살

수선님 2018. 7. 29. 11:47

관련 이미지 <벽암록(碧巖錄)> 제35칙은 무착문희(文喜)와 오대산의 문수와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문수가 무착에게 물었다. ‘최근 어디를 떠나 왔는가?’ 무착이 말했다. ‘남방에서 왔습니다.’ 문수가 물었다.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실천(住持)하는가?’ 무착이 말했다. ‘말법시대의 비구가 계율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문수가 말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가?’ 무착이 말했다. ‘300명에서 500명 정도 입니다.’ 무착이 문수에게 질문했다. ‘여기서는 어떻게 불법을 실천(住持) 합니까?’ 문수가 말했다. ‘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무착이 질문했다. ‘대중이 얼마나 됩니까?’ 문수가 말했다. ‘앞도 삼삼(三三), 뒤도 삼삼(三三)’이다.”

 

擧. 文殊問無著, 近離什處. 無著云, 南方. 殊云, 南方佛法, 如何住持. 著云, 末法比丘, 少奉戒律. 殊云, 多少衆. 著云, 或三百, 或五百. 無著問文殊, 此間如何住持. 殊云, 凡聖同居, 龍蛇混雜. 著云, 多少衆. 殊云, 前三三後三三.

 

본칙에 대한 단편은 〈조당집〉 제11권 보복전 등에 전하고 있지만, 이렇게 정리된 것은 〈설두송고〉 제35칙이 처음인데, 〈풍혈록(風穴錄)〉에 의거한 것으로 보인다. 무착(無着) 선사는 두 사람이 전한다. 한 사람은 〈송고승전〉 제20권에 ‘오대산 화엄사 무착’. 우두종 혜충(慧忠) 선사의 법을 이은 사람으로 〈광청량전(廣淸凉傳)〉에도 전한다. 문수보살이 일만(一萬)의 권속과 함께 오대산에 상주한다는 신앙은 〈화엄경〉이 전래되면서 일어났으며, 중국 화엄종의 형성과 더불어 성행하게 되었고 밀교가 전래되면서 정점에 이른다. 그래서 많은 수행자들이 오대산의 문수보살의 화신(化身)을 친견하려고 순례하는 행렬이 줄을 이었고, 수많은 감통과 영험을 전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자장법사도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야기를 전한다.

 

또 한 사람은 〈송고승전〉 제12권, 〈전등록〉 제12권의 앙산혜적의 법을 이은 항주용천원 문희(文喜. 821~900) 선사이다. 〈오등회원〉 제9권에는 화엄사 무착과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는데 연대적으로는 무리가 있다. ‘평창’에서는 남방에서 활약한 문희 선사로 보고 있다.

 

무착이 오대산 화엄사의 금강굴에서 문수의 화신인 노인과 만났다. 노인은 균제동자를 불러 무착에게 차를 대접하도록 하였는데, 다구(茶具)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훌륭한 파리(璃)제품이며 다과(茶菓)도 입에 넣자 경쾌함을 느꼈다. 무착이 동자에게 한마디 청하자, 동자는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마음이 깨끗함이 참된 보배요, 더럽히지 않은 그 마음이 청정법신이로다”라고 읊었다.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동자의 모습도 반야사의 금강굴도 자취를 감추었다. 깜짝 놀란 무착은 머리 위에 오색의 구름 가운데 금모(金毛)의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동자를 데리고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는 일단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본칙의 공안이 제기된 것인데, 무착은 그 노인이 문수보살의 화신인줄도 모르고 대화를 다음과 같이 나누고 있다.

 

문수가 오대산에 순례 온 무착에게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라고 질문하니 무착은 정직하게 “남쪽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불법의 근본에서 볼 때 동서와 남북은 없다. 자기 중심의 차별심으로 본 방향이다. 그래서 문수가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실천(住持)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원래 ‘실천[住持]’은 불법을 깨달아 지니며,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무착이 “말법(末法)시대에는 비구가 계율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라고 솔직하게 현상을 말했다.

 

불교에서는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의 시기로 나누며 말법은 불법이 쇠퇴된 시기를 말한다. 석존이 입멸하여 500년은 정법의 시대로 부처님의 가르침(敎法)에 따라서 수행자가 깨달음을 증득하는 정법이 잘 유지되는 시기이다. 다음 1000간년은 상법의 시대로 부처님의 정법을 깨닫는 수행자가 없이 가르침과 수행자만 있고 正法의 흉내만 내는 시기이다. 부처님이 입적한 1500년 이후는 말법의 시대로 불법의 가르침은 있지만 수행자와 깨달음을 증득하는 사람이 없다는 시대구분이다.(참고로 선불교에서는 이러한 시대구분을 무의미한 것으로 본다) 원오는 “무착이 ‘너무 정직한 사람’이지만 문수의 지혜를 체득하지 못했다”고 비평하고 있다. 문수는 “그러면 계율을 잘 지키는 대중은 얼마나 되는가?”라고 묻자, 무착은 “약 300명에서 500명 정도”라고 너무나도 정직하게 대답하고 있다. 원오는 무착의 대답에 “들여우”로서 “허물을 들어냈다”고 평했다. 순진하기는 하지만 계율에 의존하여 독자적인 선기가 없는 선승의 허물을 들어냈다고 비평한 것이다.

 

이제는 무착이 문수에게 “여기 오대산에서는 어떻게 불법을 실천(住持) 합니까?”라고 질문했다. 문수는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라고 대승 보살도의 정신을 그대로 대답하고 있다. 오대산은 일만의 보살이 함께하며 육도에 윤회하는 일체 중생과 정토(淨土)에 동거(同居)하고 있는 입장이다. 즉 무착은 계율을 지키는 남방의 수행자를 300~500명이라는 숫자로 구분하여 제시하였지만, 문수는 불법의 근본에서 범부와 성인, 용과 뱀을 나누지 않고, 남녀(男女)와 선악(善惡)의 차별을 초월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승불교의 정신이 제법의 차별적인 현상을 그대로 본체가 평등한 실상인 것으로 보는 것이 문수의 지혜인 것이다.

 

무착은 “그러면 오대산의 대중이 얼마나 됩니까?”라고 질문하자, 문수는 “앞(前)도 삼삼(三三), 뒤(後)도 삼삼(三三)”이라고 대답했다. 문수를 본받아 묻는 무착의 질문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범부와 성인의 숫자가 정해진 것인가? 범부와 성인, 용과 뱀의 숫자는 무궁무진인 것이다. 범부도 무량무수요 불보살도 무량무수인데, 오대산의 대중을 숫자로 묻고 있기에 문수는 “앞에도 삼삼(三三), 뒤에도 삼삼(三三)”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무착이 300이나 500이라는 숫자는 잘 알 수 있지만, 문수의 대답은 세상에서는 파악 할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는 숫자 말이다. 원오는 “천수천안 대비로서도 셈할 수 없다”고 평하고 있다. 너무 많은 숫자이기 때문에 중생의 분별심으로는 계산 할 수 없다는 말이며, 숫자적인 견해를 초월한 입장이다.

 

〈전등록〉 제13권 자복화상전에 “옛사람이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고 말한 뜻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선사는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개입니다” “차나 한잔 하게”라고 대답하고 있다. 삼삼(三三)은 보통의 숫자가 아니라 한정된 차별의 숫자개념을 초월한 무한의 숫자를 말한다. 또 〈조당집〉 12권 용회(龍回)화상전에는 “옛 사람이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라는 질문에 “서산(西山)에는 해나 뜨고 동산(東山)에는 달이 진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고정관념으로 사량분별하지 말라는 말이다.

 

원오는 ‘평창’에 〈오등회원〉에서 인용하여 무착과 문수의 대화를 계속 소개하고 있는데, 요컨대 이 공안은 무착 선사가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는 정토를 멀리서 추구하고, 숫자로 불법을 판단하고 있는 미혹한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오대산에 환화(幻化)의 사찰에서 문수보살과 만나 대화를 나눈 한바탕의 연극을 꾸며서, 미혹한 중생의 차별심을 초월하여 불심의 경지를 체득하도록 제시하고 있는 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천개의 산봉우리 굽이굽이 쪽빛처럼 푸르른데, 그 누가 문수와 대담을 하였다고 하겠는가? 우습다. 청량산에는 대중이 얼마나 되느냐고? 앞에도 삼삼(三三)이요, 뒤에도 삼삼(三三)이다” 첫 구절 ‘천개의 산봉우리’는 먼저 오대산의 전경이 청정법신의 세계임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불법의 본질(진실)의 입장에서 볼 때 무착과 문수라는 이름도 없는데 누가 문수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방편의 입장에서 볼 때 무착이 환화의 사찰에 머물며 문수와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지만, 무착은 노인을 문수로 알지 못했네. 청량(淸凉)은 문수보살의 정토인 오대산을 말하는데, 대중이 얼마냐고 숫자를 묻는 것은 우스운 말이다. 불법을 수량으로 파악하려는 분별심을 비웃고 있다. 그래서 문수는 “앞에도 삼삼(三三)이요, 뒤에도 삼삼(三三)”이라고 설두가 다시 읊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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