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고 일컬은 때, 그러니까 인류의 고전문명이 형성되기 시작한 서력기원전 5세기를 전후해서 활동한 고전종교의 종조(宗祖)나 대사상가 가운데에는 저술을 안 남긴 사람이 많다. 석가모니보다 연배가 약간 앞선다는 자이나교의 종조 마하비라도 글을 남겼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소크라테스도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공자는 오경(五經)을 편찬했다고 하지만 이는 교육을 위해서 기존의 고전을 편찬한 것이고, 그 또한 자신의 사상을 직접 글로 써서 남기지는 않았다. 평생토록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러한 언행과 사상을 담은 논어(論語)는 그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후대에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그는 평생토록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가르침을 주었지만 스스로 자기 사상을 글로 쓰지는 않았다. 예수도 글을 쓰지 않았다. 그 또한 짧은 기간이지만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 가르침을 기록한 이른바 복음서들은 모두 제자들이 쓴 것이다. 훨씬 후대의 인물이지만 이슬람의 종조 무함마드도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받은 계시와 설교는 이슬람 성전 <꾸란>으로 집대성되었지만, 그것은 무함마드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후대에 편찬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고전종교나 고전사상의 태두 가운데에는 <도덕경>을 썼다고 하는 노자가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이 말은 많이 했어도 직접 쓴 글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들의 사상과 가르침을 담은 문서들이 엄청난 분량이지만, 그 모두가 후대에 편찬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글을 쓸 줄 몰라서 그랬을까? 어떤 영화를 보니까 글을 쓰는 것을 두고 ‘소리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대사가 나오던데, 요즘에야 문맹률이 극히 미미하지만 옛날에는 그런 능력을 습득한다는 것, 그 정도의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대각(大覺)을 이룬 뒤 45년 동안 많은 설법을 했고 그것이 후세에 경전으로 편찬되었지만 그가 직접 글을 써서 남기지는 않았다. 아예 글을 쓰지 않았는지 아니면 쓰기는 했는데 보존되지 않았는지, 어느 쪽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아무튼 불교 문헌 어디에고 석가모니가 직접 글을 썼다는 얘기는 전혀 없으니, 아마도 안 썼던 듯하다.
그의 언행과 사상은 주로 제자인 플라톤의 저술을 통해서 전해진다. 플라톤의 <대화편> 등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늘 이런저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인데,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글을 남기지는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면모를 오직 플라톤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으니 이를 두고 ‘소크라테스 문제’라고 일컬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우 몇 십 년 전만 해도 문맹률이 아주 높았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 터이다. 모르긴 몰라도 2500년 전에는 더했을 것이다. 하지만, 석가모니나 소크라테스, 공자가 글을 못 배워서 안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혹시 그들이 자기의 글을 남기는 일에 대해 뭔가 공통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문제를 가지고 독자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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