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

[스크랩] 禪門拈頌 27. 여우(野狐)

수선님 2018. 8. 12. 12:42

깨침과 깨달음

 

본칙

백장(百丈)이 매일 설법을 하면 의례 한 노인이 법문을 듣다가 대중을 따라 흩어졌다. 어느날은 가지 않고 있기에 선사가 물었다.

“서 있는 이는 누구인가?”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과거 가섭불(迦葉佛) 때에 진작 이 산에 살았었는데 어떤 학인이 묻기를 ‘크게 수행하는 이도 인과에 떨어집니까’하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하고서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지금 바라옵노니 화상께서는 한 마디 말씀을 해주십시오.”

선사가 말하되 “물어 보라”하니 노인이 다시 묻되 “크게 수행하는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느니라.”

노인이 말 끝에 크게 깨닫고 하직을 하면서 아뢰었다.

“저는 이미 여우의 탈을 면했습니다. 이 산 뒤에 시체가 있사오니, 죽은 중을 천도하는 법식에 의해 주옵소서.”

선사가 유나(維那)를 시켜 종을 쳐 대중에게 알리게 하고, 공양 끝에 시달림 운력을 부쳤으나 대중은 어리둥절하였다.

염·송·어

천복일(薦福逸)이 송했다.

“떨어지지 않음과 어둡지 않음은
앞 뒤의 백장이 한 말인데
반 근이라 하면 저울 눈이 모자라고
여덟 양이라 하니 덜 맞도다.
덜 맞음이여!
남겨 두어서 천하의 납자들이 들추게 하라.”

상방익(上方益)이 송했다.

“떨어지지 않는다 어둡지 않는다.
또박또박 분명히 이야기 하였으니
달은 싸늘한 못에 비치고
바람은 묵은 회나무(檜)에서 난다.
날랜 매는 하늘 높이 솟았거늘
미친 개는 흙덩이를 쫓는구나.
말은 허물이 적어야 하고
행동은 후회가 적게 하라.”

심문분(心聞賁)이 상당하여 말했다.

“이 한 토막의 이야기를 총림에서 따지는 이가 심히 많으나 여우떼만 늘어날 뿐 말 끝은 본체(本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서암(瑞岩)이 오늘 구업을 겁내지 않고 여러분을 위하여 분명히 설파하리라. 알기를 바라는가? 오백생 동안 굴욕을 받은 것은 그 떨어질 락(落)자를 몰랐기 때문이요, 천 백 대중이 계교하여 찾는 것은 그 어두울 매(昧)자를 몰랐기 때문이다. 모두 말하건데 이 두 글자의 수수께끼에 얼마나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빠졌던고? 지금 이 두 글자의 떨어질 곳을 알기를 바라는가 하고 주장자를 한 번 세웠다가 내리고 다시 한번 할을 한 뒤에 말하되 ‘벗아났다! 살펴서 주관하라!’ 하였다.”

감상

크게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인과에 떨어져 여우가 된다. 책을 잘못 읽어 지식에 중독된 자도 또한 그와 같다. 수행한다는 것은 인과에 어둡지 않기 위함이다.

근자에 여우의 탈을 쓴 수행자가 도처에 우글거린다. 친일로 굴욕을 치룬 이광수는 훗날 자신의 선은 야호선(野狐禪)이라고 했다. 오백생의 인연이 참으로 깊은 탓이다. 살펴서 어둡지 않게 자기를 주관하라.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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