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

[스크랩] 禪門拈頌 28. 고양이 베기(斬猫)

수선님 2018. 8. 12. 12:42

깨침과 깨달음

 

본칙

남전(南泉)이 어느 날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에서 고양이 때문에 싸우는 것으로 인해, 고양이를 번쩍 쳐들고는 말하되 ‘대중이여, 바로 이르면 살릴 것이요. 이르지 못하면 베리라’하니 대중이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이에 선사가 두 동강을 내었다.

나중에 이 일을 들어 조주(趙州)에게 물으니, 조주가 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니 선사가 말하되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을 뻔 하였다’고 하였다.

염·송·어

대각련(大覺璉)이 송했다.

“두 방의 오백명이 몹시 싸웠거늘
왕노사가 한 칼로 두 동강을 내었네.
조주가 잇달아서 다시 살린 뒤에는
어금니와 발톱이 빙설(氷雪)같이 사납네.”

보령용(保寧勇)이 송했다.

“삵쾡이 머리 위에 뿔이 거듭 돋아서
왕노사의 문 앞을 밤중에도 다니네.
날이 새니 어딜 갔는지 알 수 없는데
초산(楚山)만이 끝없이 드높음을 사랑하네.”

대홍은(大洪恩)이 염했다.

“‘고양이를 구제해서 무엇하려는고? 조주와 남전을 구제했어야 하리라’ 하고는 손을 들어 건지는 시늉을 하고 말하되 ‘남선과 조주의 생명이 모두 여기에 있도다. 만일 놓아주면 옳음도 옳지 않음도 없거니와 만일 놓아주지 않는다면 한번 건질 필요도 없느니라’하고는 손뼉을 한번 쳤다.”

취암종(翠岩宗)이 염했다.

“‘남전의 살림살이를 알고자 하는가? 그는 죽은 고양이이니라. 조주의 살림살이를 알고자 하는가? 그는 헤진 짚신이니라. 여러분은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 손을 대면 여러분의 손을 더럽히리라’ 하였다.”

감 상

남전이 고양이를 벤 것은 쓸데없는 시비를 가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동당과 서당으로 나뉘어 이게 옳다 저게 옳다고 떠드는 시비를 끊어내는 데 남전의 칼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시비를 끊는다고 해서 고양이를 벨 것은 무엇이냐. 남전은 추상같은 기개를 보여주기는 하였지만 한 생명을 희생하였을 뿐이다. 조주가 짚신을 이고 나간 것은 남전의 이러한 행동을 비판한 것이리라. 고양이를 칼로 벤 것은 짚신을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만 못하다.

살릴 수 있는 고양이를 살리지 못하였으니 남전과 조주가 구제 받아야 된다는 것이 대홍은의 염이다. 취암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전은 죽은 고양이요 조주는 헤진 짚신이라 폄하한다. 시비 분별을 끊으려하다가 오히려 시비 분별에 빠지기 쉬우니 훗날 납자들이여 생사의 칼을 함부로 쓰지 말라.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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