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제일 사리불(사리푸트라)
진리를 아는 방법
진리란 무엇인가?
우리는 때때로 이와 같은 문제를 자문해 본다. 그렇지만 그것은 반드시 철학적인 사색에 탐닉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석가모니의 가르침, 즉 불교란 무엇이며, 그것을 석가모니 제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교설의 중심은 바로『연기(緣起)』에 있었다고,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그렇게 말해왔기에 단언을 해도 틀림없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연기의 이법(진리)을 발견하여 『부처(佛)』가 되셨다. 부처란 『각자(覺者)』란 뜻이며, 진리에 눈뜬 사람을 말하다. 연기를 알고, 연기에 눈을 떴기 때문에 석가모니는 부처님이 되셨으며 , 부처가 된 석가모니는 그 연기의 이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확실한 사실로서 의심할 나위가 없다.
연기(緣起) 이것도 그다지 어려운 이론은 아니다. 명명백백한 사실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세상의 모든 사물. 현상은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모두가 서로 관련성이 있어서 어느 것 하나도 고립되어 있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생각건대 간단한 문제이다.
하지만 사물이나 현상의 관련 상태도 여러 가지가 있다.
1. 종자를 뿌렸으니까 싹이 나고, 꽃이 피듯이 원인과결과의 관계를 말한다. 시간적인 관계 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2. 짧은 것이 있기 때문에 긴 것이 있다. 긴 것도 역시 그것보다 긴 것과 비교하면 짧은 것이다. 그런 상대적인 관계와 관계를 말한다. 이것을 공간적인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 다.
3. 한 마리의 새가 하늘을 날고 있는 것도, 이를 누구도 총으로 쏘아 떨어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마이너스 관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와 같은 관계가 연기이다. 그리고 사물은 이러한 조건적인 관계에 의해서 성립되고 있기 때문에 조건이 변화하면 당연히 사물도 변화한다. 즉 영원히 동일한 것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무상의 진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연기의 이법은 , 또 무상의 이법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두 친구의 굳은 약소
사리불은 최초에는 이 산쟈야의 제자였다. 왕사성 근교의 한 동네에서 바라문의 아들로서 태어난 그에게는 한 사람의 친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코올타였다. 어느 핸가, 이 사리불고 코올리타는 서로 의논하여 산정제의 구경을 나갔다. 너무나도 화사한 제사였던지라 사리불은 그것을 보고 있는 중에, 문득 무상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지, 이 떠들썩한 제사도, 백 년 뒤에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는 그런 감상을 친구에게 말했는데, 코올리타 역시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출가하여 당시 교세확장 일로에 있던 산쟈야의 교단에 투신했다.
사리불은 훗날에 불교 교단에서 석가모니의 십대제자의 한 사람으로 꼽혀졌으며, 『지혜제일』이라고 일컫는 인물이 되었다. 코올리타 역시 총명한 인물이다. 코올리다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 훗날 불교 교단에서 목건련(못갈라나)이라고 하면 우리불자들이 잘 알 것이다. 사리불고 목련 사이에는 잠깐 사이에 스승 산쟈야의 교설을 다 이해해 버렸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다지 난해한 것이 못 되었다.
그렇지만 스승의 가르침은 완전히 이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 두 사람은 그것으로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 좀 더 최종적인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고 , 두 친구는 평상시에 늘 애기를 주고받곤 했었다. 그것이 발견될 때에는 서로가 연락을 취해서, 같은 길을 걷자고, 이렇게 약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먼저 발견한 것은 사리불이었다.
사리불과 목련
왕사성의 거리에서 .............
사리불이 길을 가는 사문 (바라문 이외의 출가수행자)의 모습에 시선이 멎은 것은, 말하자면 그의 인스피레이션(영감) 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문은 특별히 기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소탈하기는 했지만 청결한 의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이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이 시원스러웠다. 산뜻하고 상쾌했었다.
사문은 탁발을 하러가고 있었다. 탁발중인 수행자에게 말을 거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사리불은 사문의 탁발이 끝날 때까지, 그 뒤를 따라갔다. 마치 범죄 혐의자의 뒤를 미행하는 형사처럼.......
「사문이여, 당신의 정은한 그 태도에 나는 매혹이 되었소. 그 비결을 좀 가르쳐 주시구려,당신의 스승이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가를.....」
「바라문이여, 나의 스승은 석존이옵니다.」
사리불의 질문에 대답하며, 사문은 자신이 불제자임을 밝혔다. 그리고 그 승승인 석가모니의 교설에 간해서는, 자기는 비구가 된지 얼마 안 된 사람이니까. 그것을 자세히 설명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 요강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은 부분을 나중에 문제로 삼고자 하므로, 원전으로부터의 인용이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지만, 남전대장경「율장」대품으로부터 인용해보기로 한다.
「제법은 인연에서 생겨나고
여래는 그 인연을 말씀하신다.
제법의 소멸역시
대사문은 이같이 말씀하신다.」
이것이 사문의 대답이었다. 즉 사문이 이해한 바의, 석가모니(여래, 대사문)의 가르침 이었다. 그래서 사리불은 이 말를 듣고 , 그 석가모니란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를 납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리불은 친구 목련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우리가 그렇게도 찾고 있던 스승을 찾았다고, 목련 도한 사리불에게서 그 말만을 듣고 스승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석가모니의 제자가 될 것을 결심했다.
두 사람은 산쟈야의 설득을 지작 했다.
「스승이여, 훌륭하신 인물이 있습니다. 최고의 이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함께 그 사람의 제자가 되시지 않으렵니까..?」
그러나 산쟈야에게는 높은 자존심이 있었다. 회의론자로서의 긍지가 있었다. 그는 완고하게도 그 제자들의 설득에 응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두 제자의 말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태도였을까............
두 사람의 뛰어난 제자와,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따라가는 2백 50명의 제자들이, 자기 곁을 떠나 진리의 스승을 찾아 돌아선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산쟈야는 피를 토하고 쓰러져 절명했다고 한다.
불교 교단에서 사리불이 차지하는 그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목련도 그렇다. 이들 두 사람은 모두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속에 들어갔으며, 스승의 양팔이 되어 큰 역할을 했다. 석가모니의 말년에는, 피로 때문에 설법을 중단하는 석가모니를 대신하여, 때때로 이 두 사람이 설법을 받아 계속하는 일도 있었다.
서가모니는 누구보다도 이 두 제자를 특별히 사랑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나 훌륭했던 이 두 제자는 스승 석가모니에 앞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리불은 병으로 , 목견은 외도(外道)의 어려움을 만나서였다. 두 제자의 죽음은, 석가모니의 입멸보다도 약 1년쯤 빨랐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두 제자의 부보를 들은 때의 스승 석가모니의 실망과 슬픔은 어떠했을까....어쩌면 그 슬픔이 너무 커서 석가모니의 입멸도 빨라진 것이 아닐 런지 이런 상상도 가능할 정도이다.
'십대제자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6. 설법제일 부루나(푼나) (0) | 2018.09.23 |
---|---|
[스크랩] 5. 해공제일 수보리 (0) | 2018.09.23 |
[스크랩] 4. 천안(天眼) 제일 아나율(아눌타) (0) | 2018.09.16 |
[스크랩] 3. 수행제일 마하가섭(마하캇사파) (0) | 2018.09.16 |
[스크랩] 2. 신통제일 목련존자 (0) | 2018.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