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제자의 이야기

[스크랩] 4. 천안(天眼) 제일 아나율(아눌타)

수선님 2018. 9. 16. 12:39
 

                                     천안(天眼) 제일 아나율(아눌타)


  아나율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석가족의 출신이다. 부귀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전혀 부자유한 것이라고는 없는 유년, 소년 시절,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 아나율이 출가를 결심했던 것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인 석가모니의 인격에 크게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아나율에게는 형제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형제에게 출가의 결심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나율이 털어놓은 결심을 들은 형제 또한 출가의 결심을 굳히고 있는 터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출가를 해 버리면 가계를 이을 사람이 없어, 대가 끊기게 되었음므로, 두 사람은 함께 의논한 끝에 아나율이 출가하고 그 형제가 집에 남게 되었다.   

 아나율은 마침내 어머니에게 출가를 승낙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절대로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죽어도 내 자식을 내 놓을 순 없어. 하물며 살아 있는 자식을 집을 나가게 하다니! 무슨 소리냐...”

 이것이 그의 어머니의 진심이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이 아픈 것처럼 아나율의 마음도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출가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자식아, 만일 밧디야가 출가를 한다고 한다면 그 때는 너한테도 출가를 허락해 주지.”

 어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무심코 내뱉은 그 말을 포착하고, 그때부터 아나율은 밧디야를 설득하기시작 했다. 밧디야는 석가족 중에서도 명문의 귀족이었으며, 이미 정치적으로도 좋은 지위에 올라 있던 인물이다. 한 마디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그러니까 설마 그 밧디야가 출가할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의 어머니의 계산이었는데, 아나율의 열의는 이 밧디야의 마음을 움직이고 말 앗던 것이다. 아나율과 밧디야, 거기에 다섯 친구를 합해 모두 일곱 사람이 동시에 출가를 했던 것이다. 그 때의 일곱 명 가운데는, 후에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로 손꼽아지게 된 두 사람의 큰 인물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아난타와 우바리이다. 또 부처님께 반역을 한 유명한 제파달타도 , 아나율과 함께 출가를 한 일곱 명 중한 사람이다. 아나율의 열성어린, 적극적인 출가욕이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 훌륭한 인재들이 일시에 불교 교단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리에서 볼 때, 아나율의 공적이 매우 크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나율 심안이 열리다

   

 이렇게 극성스럽게, 또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추구하여 출가를 했던 아나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경전에는 그의 해타(게으름)한 모습이 기록되어 남아 있는 것은 웬일일까... 양가집 자제가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 정신상태의 이완에서 였을까......

 그것은 기원정사에서의 일이었다. 기원정사는, 코오사라국 사위성의 교외에 있는 기타태자의 임원에 건립되어진 정사이다. 그때 석존은 기원정사의 강당에서 설법을 하고 계셨다. 청중들은 출가자들만이 아니었고 재가의 사람들도 와 있었던 모양이다.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은 듯 지긋이 눈을 감고 좌수를 하고 있는 승려가 있었다.

 아마도 그는 노젓는 사람처럼, 뭄을 꾸벅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슬쩍 흘겨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께는 재빨리 그것을 눈치 채셨다.

 ‘설법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잠을 잔다. 그것도 좋겠지..’

 부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여 사람들 앞에서는 아나율을 별로 나무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법좌가 끝난 다음, 부처님께서는 아나율 한 사람만을 불렀다. 그리고 조용히 그에게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아나율이여, 그대는 도를 찾아 출가한 것이 아니었던가? 출가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대가 설법을 들으면서 선잠을 자다니, 도대채 그 최초의 결심은 어디로 간 거지. 정신이 해이되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군 그래.” 

 “세존이여, 죄송합니다....”

 아나율은 부처님 앞에서 납작 엎드렸다.

 “오늘 이후로 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 가령 이 몸이 썩어 부서질 지라도 세존 앞에서 절대로 자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나율은 수마와 싸우기 시작했다. 잠을 거부할 것을 맹세한 아나율은 눈은, 감겨질 줄을 모르고 언제나 초롱초롱 빛나기만 했다. 의사인 지이봐카를 불러다가 그의 치료를 부탁했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어떠한 명의도 이 잡자지 못하는 자의 눈을 고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아나율은 눈동자만 멀뚱멀뚱 뜬 상태로 시력을 안전히 잃고 말았다.


 그것은 큰 고행이다. 인간이 수면을 거부한다는 것은 고행 중에도 가장 큰 고행이다. 그리고 석존은 고행을 긍정하시지는 않았던 것이다. 고행은 진리에 이르는 대도가 아니라고 하여, 부처님은 고행을 버리고 중도를 걸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부처님께서 아나율의 고행을 잠자코 보고만 계셨던 것일까.

 아나율에게, 고행을 중단하고 중도를 걸어가라고, 이따금씩 권고를 하셨다. 그렇지만 아나율이, 이제는 잠을 잔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힘겹게 느껴진다고 대답했을 때, 부처님께서는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아마, 중도라는 것이 관념적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번 끝까지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중도가 알아지는 지도 모른다. 아니,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방법으로밖에 깨닫지를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나율이 그러한 타입의 인간 이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말을 할 수 있겠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 제자들은 제각기 제 나름대로 듣는 것이다. 좌수를 하고 듣다가 야단을 맞은 제자가 모두 수면을 완전히 거절하기에 이를 리가 없다. 어떤 자는 흘려듣고 , 어떤 자는 반발을 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제자들을, 제 나름의 사정에 따라 교도한 것이 부처님이 셨다.  따라서 부천님께서는 , 아나율의 반응에 특별히 망설임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아나율에게는 아나율의 길이 있었다. 그는 결국은, 육체의 눈은 잃었지만 그 대신 법의 눈인 천안. 심안을 얻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나율에게 있어서는, 원하지도 않았던  대상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몇 년 후.

 정사에서 바느질을 하면서, 조용히 부처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나율.

 “아나율이여, 나도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고 평범한 말을 보통으로 하시는 부처님. 빙긋이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의 사세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근본정신 같은 것을 읽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큰 싸움을 끝낸 자라야만 알 수가 있는 , 마음의 평안이 아니었을까. 아나율은 이윽고 큰 깨달음에 안주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야,  부처님께서 던진 말씀이 비로소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겠다.




 


출처 : 대한불교용화법원미륵종불종사
글쓴이 : 현진스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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