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제자의 이야기

[스크랩] 3. 수행제일 마하가섭(마하캇사파)

수선님 2018. 9. 16. 12:39
 

                                  수행제일 마하가섭(마하캇사파)


 순결의 구도자

 

 인도의 마카다국, 왕사성 근교의 바라문촌에 피파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종교심이 많았는데, 양친을 여의고 난 다음에는 출가를 하여 수행에 전념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렇지만 그의 부모님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에게 결혼할 것을 강권한다. 최초에는 단호하게 결혼을 거절하고 있던 그도, 부모님이 그렇게도 원하는 평생의 소원을 끝까지 거절하기가 어려워, 마침내 한 가지 타협안을 내 놓았다.

 즉 핏파리는 순금으로 실물 크기의 예쁜 여성상을 만들게 해서, 이러한 이상적인 여성이라면 결혼을 하겠다고 부모님께 제시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부모님은 , 그 황금의 여성상을 꼭 닮은 여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꼭 닮은 여성이 있었던 것이다. 황금상 그 자체를 약혼 선물로 하여, 핏파리의 부모는 하루속히 서둘러 결혼을 시키려고 여성 측에 청혼을 했다. 여성의 부모는 기꺼이  승낙을 하였다. 이리하여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하였다. 핏파리는 20세였고 황금의 여성상을 닮은 아리다운 아내는 16세로서 이름이 바들러라고 하였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상한 우연도 있는 법이다. 아내인 바들러도 역시 결혼 이전부터 출가할 염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도 양친의 명령으로 하는 수 없이 결혼을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심중의 이야기를 다 털어 놓게 되었고, 그 우연한 사건을 도리어 다행으로 여기며 기뻐했다. 이후 수년가, 그들은 부부의 교제 없이 그냥 지냈던 것이다.

 사실은 이 청년 핏파리가 , 훗날의 마라가섭(마하캇사파)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소망대로 출가를 하여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었다.

 

 석존과의 필연적인 만남

 청년 핏파리(마하가섭)의 양친은 이미 돌아 가셨다. 핏파리는 이제청년이 아니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2세가 되어 있었다. 

 핏파리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쟁기(가래)로 파 젖어 놓은 흙더미 속에서 한 마리의  작은 벌레가 머리를 내민다. 공중으로부터 작은 새가 내려와 그 벌레를 탁 쪼아 가지고 다시 날아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핏파리는, 순간 자신이 간접적으로 살생의 죄를 범했음을 느끼고 깜짝 놀났다. 그리고 확고히 출가할 결심을 굳히는 것이었다.

 불전문학에 친숙하신 분이라면 석가모니 부처님도 소년 시절에도 이야기되고 있었던 것을 연상하게 된다.

「가비라성에서 농경제가 있어서 , 부처님께서는 거기에 석가국 태자로서 임석을 한다. 그 의식 때에 농부가 파젖혀 놓은 흙 속에서 나온 벌레를 작은 새가 쪼아 먹고 또 그 작은 새를 독수리가 잡아 먹는 장면을 볼 후 있었다. 부처님은 그 장면에 몹시 역겨움을 느끼고 나무 아래서 선정을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최초의 선정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유명한 장면이다. 어쩌면 그의 출가의 동기를 여러 모양으로 유형화 한 유사한 이야기가, 옛날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패턴의 하나가, 마하가섭에게도 적용된 것이 아닐는지  같은 날, 같은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아내인 바들러도 뜰에다 참깨를 널어 말리우고 있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작은 새가 날아와서는 참깨 위에기어 가고 있는 벌레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간접적으로 살생의 죄를 범한 것을 알고, 출가할 것을 굳게 다심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꼭 닮은  부부이다. 어쩐지 우리는 주착없이 지어낸 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두 사람은 함께 같은 결심을 이야기하고 나서, 그리고 둘이서 함께 동시에 출가 한다. 도중까지는 같은 길을 갔지만, 남녀가함께  같은 곳에 있는 것은, 수행자로서 걸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윽고 갈림길에서 하나는 왼쪽으로 하나는 오른쪽 길로 헤어졌다. 핏파리는 오른쪽으로 가고 바들러는 왼쪽 길을 택했다. 왼쪽으로 간 바들러는 사위성으로 많은 수행자들이 있는, 임원에서 수행에 전심했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불교에 여승 교단이 나타났을 때, 바들러도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하여 여승이 된다.

 한편 오른쪽 길로 든 핏파리는 거기에서 석가모니 스승을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은 우연이었다. 핏라리가 왼쪽 길로 갔고, 아내 바들러가 오른쪽 길로 들었다면, 이 만남이 과연 있었을 것인가? 부처님과 마하가섭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마하가섭의 부부가 출가할 때에 천지와 대지가 진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의 출가를 아시고 그가 오는 길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며 기다리고 계셨다. 찾아온 마하가섭에게,

 「마하가섭이여, 이라 와서 앉은 것이 좋겠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먼저 부르셨다고 한다. 마하가섭도 나무 아래에 좌선을 하고 있는 부처님을 보는 순간, 이분이 나의 스승님 이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예정된 필연이었다. 

 이리하여 부처님께 귀의한 마하가섭은 스승의 교설을 금방 이해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스승을 만난 8일 후에 깨달음을 얻고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또 부처님의 의발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즉, 후계자가 된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는 부처님이 입고 계시던 분소의를 건네받았다. 그것은 출가 후 얼마 안 된 무렵의 일이다. 마하가섭은 자신의  윗옷을 네 겹으로 개켜서, 석가모니로 하여금 그 위에 앉아 계시게 한 일이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그 옷의 촉감이  매우 부드럽다고  칭찬했지만, 그는 자신이 부처님보다 훌륭한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스승의 분소의와 바꾸어 받았던 것이다. 불전의 그런 에피소오드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교단을 마하가섭 존자께서 통솔해나갈 것을 암시한 하나의 상징적 사건 일 수도 있다. 결국 부처님의 법을 이어가는 수제자로 부처님으로부터 의발을 물려받은 제자이다.


 두타제일의 십이두타행

 마하가섭은「두타(頭陀)」제일 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두타란, 산스크리트어의 「투타울」을 음사한 것으로써, 의. 식. 주.에 대한 집착의 마음을 떨쳐 버리기 위한 수행 실천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두타대(頭陀袋」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산림 속에서 수행을  하는 자가 가지고 있는 자루라는 데서 붙어진 이름이다.

 두타의 실천 항목으로서는 열 두 가지가 있는데, 예로부터 그것을 「십이두타행(十二頭陀行)」이라고 한다.


   1. 재아란약처(在阿蘭若處)---마을과 떨어진 산림 속에서 산다.

   2. 상행걸식(常行乞食)---언제나 탁발 걸식에 의해서 생활한다. 

   3. 차제걸식(次第乞食)---걸식을 하는데 있어서 집의 빈부를 가리        지 않는다.

   4. 수일식법(受一食法)---하루 한 끼만 먹는다.

   5. 절량식(節量食)---많이 먹지 않도록 양을 절약한다.

   6. 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중식 이후에는 음료(국물)를 마        시지 않는다.

   7. 착페납의(着弊納衣)---폐물인 누더기로 만든 옷을 입는다.

   8. 단삼의(但三衣)--- 세 개 옷밖에는 갖지 않는다.

   9. 총간주(塚間住)--- 무덤들 사이에서 산다.

   10. 수하지(樹下止)--- 나무 아래에 산다.

   11. 노지좌(露地坐)--- 한 곳에 앉아 지낸다.

   12. 단좌불와(但坐不臥)--- 언제나 앉아 있고 드러눕지 않는다.

 

 마하가섭은 이와 같은 두타의 수행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욕망을 버리고 나서 금욕의 성자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또 저 마하트마 간디를 연산케 되지 않는가....검소한 옷을 걸치고 동그란 안경을 끼고,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걸어가는 , 야위어 깡마른 성자 간디의 모습을 말이다. 이간디 역시 금욕의 성자였다. 마하가섭과 간디는 어디까지나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곧 여기에 인도 고유의 전통이 있다는 것일 게다. 성자는 순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자는 욕심이 없어야만 한다. 성자는 검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인도 사람들이 품은 성자상이며 마하가섭도 간디도 그러한 성자였던 것이다.

 




 


출처 : 대한불교용화법원미륵종불종사
글쓴이 : 현진스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