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五分 如理 實見分 (진리의 참모습을 보라)
◎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하며.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 부처님은 머무는바 없는 묘행을 실천함으로써 그 마
음을 머물러야 하고. 四相에 머물지 않으면서 함이 없
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들을 제도하여 멸도에 들게 하
리라는 서원을 세우도록 이끄셨다
‣ 일체의 모든 相의 허망함을 일깨우며 일체의 모든 상
이 상이 아님을 바로 보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결국
여래를 볼수 잇도록 수행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셨다
(116)
• 形相 : 눈에 보이는 경계로서의 형상을 의미 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안이비설신의 의 대상이 되
는 색성향미촉법의 모든 경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17)
◯ 형상으로써 육신으로써는 부처를 볼수 없는것이다(119)
‣ 부처님의 육신은 단지 地水火風 사대가 모여 이루어진
인연 가합의 형상일 뿐이지 부처의 참모습이 아니다
지수화풍이 인연 따라 모인 것은 언젠가는 인연 따라
흩어질 뿐이다.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모두가 항
상하지 않으며(無常) 고정된 실체가 있지 않고(無我)
괴로우며(苦) 텅비어 실체가 없는것(空) 이다 (119)
‣ 부처님의 형상 또한 지수화풍 사대가 인연따라 만드러
진 것이기 때문에 무상. 무아. 고. 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의 형상은 곧 몸의 형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몸의 형상은 다만 지수화풍 사대가 임시
로 모여 만들어진 가합 이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있
는것이 아니란 말이다 (119)
◯ 부처님의 실체는 형상 으로써의 육신 그 이면에 法身으
로써 존재를 뛰어 넘어 존재 한다. 법신이란 형상이 아
닌 진리 그 자체의 몸이며. 크고 작다거나 나고 죽는다
거나 하는 모습이 아닌 진리의 당체이고. 온우주 법계
대자연의 숨결 그 자체 인것이다 (119)
◯ 부처님의 육신을 무시하란 말도 아니고 형상은 아무 필
요도 없는 것이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형상을 통해 참
진리로 나아가는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을 다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하듯. 언제든 참진리
를 만났을때 형상은 놓아 버릴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형상에 얽매이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말이
다 (120)
◯ 虛妄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허망하다는 의미
그 이상의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허망하다
는 말은 空하다는 말이고. 고정된 실체가 없어 텅비어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불교에서 표현 되는 현상계의 진리를 표현 하는 것으로
無我. 無常. 苦. 空. 因緣. 中道. 無執着. 無所得의 다른
표현 이기도 하다. 삼라 만상 형상 있는 일체 모든것은
항상하지 않으며(諸行無常). 고정된 자아가 없고(諸法無
我). 괴롭다(一切皆苦)는 말이다 (121)
‣ 四句偈에 등장 하는 허망하다는 단어는 허무 하다거나
하는등의 허무주의로 쓰인 말이 아니라 근본 불교의 연
기법과 삼법인의 진리를 의미하는 말과도 같고. 대승불
교의 공사상이나 중도. 무집착이나 무소득과 같은 의미
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123)
◯ 우리의 행복은 집착한 것을 내것으로 만들었을때 얻어
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는 그 마음을
포기 할때 비로서 찾아 온다 (125)
◯ 지금 이순간에도 본연의 세계. 이 진리의 법계 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본래 이 세상에는 아무
런 일도 일어나지 않었고. 아무런 변화도 없으며. 그 어
떤 무언가가 나타나지도 않었다는 말이다. 나타나지 않
었으니 소멸 될것도 없고. 괴로워할 아무것도 없다. 본
래 자리로 가면 일체 모든 것이 딱 끊어진 寂滅의 자리
일 뿐이다 (125)
※ 이 우주 법계의 일체 모든 것들은 제 스스로 정확히 제
자리에 언제나 그렇게 있을뿐 이다. 내 안에서 순수한
내 생각을 찾아 보라. 그 어떤 견해도 순수하게 내 생
각 일수는 없다 (127)
◯ 형상에 집착하면 안 되듯이 형상 없는 것에도 집착하면
안된다 는 말이다. 즉 상을 타파해야 한다고 하니 모든
상을 타파 하면서 도리어 “상아닌것”을 새롭게 만들어
거기에 집착하는것 또한 타파해야 한다는 말이다 (129)
● 第六分 正信 希有分 (바른 믿음은 드물다)
?� 三學 : 수행자들이 실천해야할 수행의 핵심이다 (138)
• 戒 : 계를 지킴
• 定 : 최상의 복인 깨달음을 실천 하는 선정을 닦음
• 慧 : 부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깨달아 요달 하여 지
혜를 이룸
◯ 불교 에서는 진리의 가르침을 이름지어 法이라고 하였
고. 진리를 깨달은 자를 부처님 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그 부처를 올바로 따르고 수행하는 이를 僧이라고 이름
지었을 뿐이다. 그러한 불법승 삼보를 믿고 수행 하는
종교를 불교 라고 이름 지었을 뿐이지. 불교라는 이름
자체에 불교가 있는것은 아니다. 부처님 이라는 그이름
자체에 부처님이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142)
◯ 내 안에 번뇌를 버리고.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집착을
비우고. 텅빈 마음으로 맑고 청정한 마음으로 세상과
인연을 지을수 있다면 그것이 부처님과 선근을 맺는것
에 다름 아닌 것이다 (144)
‣ 善根 이란 마음을 기울여 주의 집중 하는 수행을 말하
는 것이다. 수많은 부처님 에게 악한 인연이 아닌 선한
인연을 심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혜로운주의 즉 마음
을 주의집중 하여 분별없이 觀하는 수행의 인연을 심었
다고 이해 할수 있다 (147)
‣ 지혜로운 마음집중 이란 八正道의 正念이며. 四念處에
해당 되는 수행법으로 불교의 핵심 수행법이다. “지혜
로운 마음 집중” 인 사염처를 닦으면 생노병사에서 벗
어 나며. 모든 악견을 없애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
리를 얻는다고 했다 (147)
?� 八正道 :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덜가지 바른 길
• 正見 : 바른 견해. 緣起와 四제에 대한 지혜
• 正思惟 : 바른 생각. 곧 번뇌에서 벗어난 생각. 노여움
이 없는생각.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생각등
• 正語 : 바른말. 거짓말 남을 헐뜯는말 거친말 쓸데없는
잡담을 삼가함
• 正業 : 바른행위. 살생이나 도둑질등 문란한 행위를 하
지 않음
• 正命 : 바른생활. 정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의식주를 구
하는 생활
• 正精進 : 바른노력. 이미 생긴 악은 없애려고 노력하고.
아직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하고. 아직 생
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하고.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커지도록 노력함.
• 正念 : 바른마음 챙김. 신체의 느낌이나 감정 마음 모
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 正定 ; 바른 집중.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 통일 시
킴으로써 마음을 가라 앉힘
?� 四念處 : 신체 느낌이나 감정 마음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 하여 마음 챙김
◯ 우리는 평소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각종의 느낌들을
바로 보지 못하고 흘려 보내게 되고 그렇게 흐르게 되
면 좋은 느낌 에는 애욕과 탐심을. 싫은 느낌에는 증오
와 진심을 일으키게 되고 그런 과정은 이윽고 애욕과
집착. 삼독심의 결과를 초래 한다. 그결과 무수히 많은
좋고 싫은 등의 관념 혹은 편견의 틀을 형성하게 되고
그렇게 형성된 관념을 뭉쳐진 실재적 개체로 인정하게
되어 거기에 “나”라는 관념을 개입시켜 나를 실체화 하
게 된다. 그것이 바로나다. 내가 옳다라고하는 我相이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접촉하고 생각하는 “나”가
있다고생각 하게 되는것이다 (148)
• 觀念 : 어떤 현상이나 진리를 마음속으로 떠올려 그것
을 자세히 주시함. 부처나 정토의 모습을 마음
속으로 살피고 생각함
◯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을 챙기려면
가만히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모든 대상을 고요
히 바라보라. 관함에 있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관념이
나 생각의 늪에 빠지면 안된다. 떠오르는 분별과 생각
으로 대상을 관해서는 안된다. 관을 함에 있어 가장 중
요한것은 관념과 생각이 개제 되지 않는 순수한 주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있는그대
로 볼수 있어야 한다. 관념이나 생각이 개재되면 또 다
른 관념 만을 만들어 낼 뿐이며. 마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사람처럼 저마다의 관념의 틀에 세상을 대
입하여 보게 될것이다. 소리를 들어도 좋고 싫은소리가
아닌 그저 들릴뿐. 무엇을 보아도 바라볼뿐. 냄새를 맡
아도 그저 냄새날뿐 이와 같이 육근의 모든 감각기관은
오직 “할뿐”이 되어 야 한다 (148)
◯ 우리의 삶에는 오직 “지금 여기” 라는 현실만이 있을뿐
이다. 과거에 만들어 두었던 관념의 틀은 아무런 필요
가 없다. 그것은 자신을 묶어두는 관념의 사슬이며 그
로 인해 우리는 괴로움을 느껴야 할것이다 (149)
※ 낱낱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좌선이고 깨어있음 이다.
모든 순간순간 더 이상 도달 할곳 이라고는 없다. 그순
간이 가장 온전한 순간이 되는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
간이 우리들이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인 것이
다 (150)
◯ 길을 걷는일. 밥을 먹는일. 운전 하는일. 청소 하는일.
밥 하는일. 산을 오르는일 등 일상생활의 그 어떤 일
이나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하는 순간 마음이 깨어
있고 알아 차림과 觀 수행이 되고 있다면 그 순간이 바
로 수행의 순간이요. 부처님의 선근을 심는 순간이 되
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선근을 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깨어있는 일이다 (152)
◯ 참된 기도며 수행은 번뇌를 비우고. 분별을 비우며. 바
램도 놓아 버리고. 욕심도 놓아 버리는 데서온다 (154)
● 第七分 無得 無設分 (얻을것도 없고 설할것도 없다)
◯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이것이 진리다
라고 할만한 고정된 法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166)
◯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는 것 또한 언어적인 표현일뿐이
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고 할만한 정해진 법이 없으
며. 또한 여래께서 설하셨다고 할만한 고정된 법이없다
왜 그러한가. 부처님은 새로운 가르침을 펼치신분이 아
니다. 부처님 께서 새로운 진리를 만들어 내신분이 아
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진리 그대로일 뿐이다. 진리는
항상 온 우주 법계를 골고루 비추며 항상 참빛을 수놓
고 있다. 진리는 없어진 적도 없고. 다시 만들어 진적도
없으며. 아니 진리라고 이름 붙일만한 그 어떤것도 존
재 하지 않는다 (168)
◯ 우리가 괴로워하고 있는 실체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고정관념 일뿐이며. 욕심이고 집착일 뿐이다. 부처님은
다만 그것을 놓으라고 말씀 하실 뿐이다. 진리는 그무
었도 붓잡고 있지 않다. 항상 빈손 이며 텅비어 있고
자유롭다. 그런데 다만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붙잡을것
들을 하나 하나 만들어 내었고 거기에 집착을 하기시작
하면서부터 우리의 괴로움은 시작 되었다 (169)
◯ 부처님은 이것이 진리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우리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집착을 놓으라고 하셨을 뿐
이고 욕심을 버리라고 하셨을 뿐이며 분별을 없애도록
이끄셨을 뿐이다 (173)
• 有爲 :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집착을 하거나. 욕심이 있
거나. 했다는 상이 있거나. 아상 아집이 있다면
그는 유위를 행하는 것이다.
• 無爲 : 집착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고 아상과 아집을 놓
아 버린채 그 일을 했다면 그는 겉으로 보기에
는 차별적인 어떤 일을 하고 있더라도 사실은
무위로서 함이 없이 한것이다 (174)
◯ 어리석은 중생은 무슨 일을 해도 내가 했다 하는 상이
남고 집착이 남기 때문에 유위법으로써 행하지만. 일체
모든 현인과 성인은 내가 했다는 아상이 없고 집착이
없는 무위의 행을 하는 것이다. 해도 했다는 상이 없기
에 무위의 행을 “함이 없는 행 ”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현인과 성인은 오직 무위로써 행동 한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일체 모든
것을 한다. “함이 없이 한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다 하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다. 이것이 “무위
법으로써 차별을 두는” 것이다 (174)
◯ 부처님께서는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어 나투시며 교화
하신다. 그렇기에 여래는 태어나도 태어난 것이 아니다.
무위로써 태어나기 때문이다. 태어 난다는 것 자체가
차별심 을 일으켜 이 세상에 온것이다. 그렇듯 차별로
써 태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이 유위로써가 아닌 무위로
써 태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현인과 성인은 무위
로써 차별을 두어 태어나기도 하고 늙고 병들고 죽기도
한다 (174)
◯ 무수한 중생이 있고 무수한 근기의 중생이 있으며 또한
그 많은 중생들이 무량한 괴로움이 있지만. 여래는
무위의 행과 무위의 법을 설하기 때문에 고정되지 않은
무량한 중생과 무량한 근기와 무량한 괴로움에 자유자재
로 나투는 차별법 으로 중생 앞에 나타날 수 있는것이다
정해진바가 없는 무위의 행이기 때문에 무수한 중생앞에
차별법 으로 나투는 것이 가능하며. 무량한 방편법을 행
하고. 무량한 근기에 대기 설법으로 응하실수 있는것이
다. 이처럼 여래는 무량한 차별법을 행하지만 무위로써
행한다. 함이 없이 행한다 (176)
◯ 차별있는 모습 속에서 차별없는 무위의 부처를 볼수 있
어야 하고. 차별있는 몸으로써 차별 없는 법신을 체득
할수 있어야 한다 (176)
● 第八分 依法 出生分(이법에의해 모든 가르침이 나온다)
※ 진리는 너무나도 단순한데 있다. 일체를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얻어진다. 그냥 놓아두면 된다. 놓아버리는 순간
영원한 대자유가 찾아 온다 (190)
◯ 佛法은 불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법이다. 즉 불법에도
집착 하면 안되고. 불법 이라고 고정된 어떤 실체도 있
지 않다는 말이다. 불법이라는 틀 불법이라는 相까지도
타파 했을때 비로서 참된 불법이 드러난다는 말 이다
불법을 불법이라고 하면 이것은 불법이 아니다. 불법을
불법이 아니라고 바로 알았을때 비로서 불법은 빛을 발
할수 있다 (194)
• 能所 : 어떤 행위의 주체나 그 행위의 목표가 되는객체
• 無漏 ; 번뇌 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상태
• 無住 : 고정적인 상태가 없음.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
집착 하지 않음. 얽매이지 않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http://blog.daum.net/buda1109/13353923 블로그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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