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의 어록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선의 문헌에서, 또 지금 살아있는 선사들의 설법에서도 가장 많이 거론되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마음이다. 그런 얘기들이 왜 다 같은 취지인가를 이해하려면 여기에서 잠깐 법(法)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풀이하고 얘기를 이어야 하겠다. 법이라고 하면 우선 연상되는 것이 헌법, 민법, 형법, 국제법 등등일 터이고, 나아가 자연법칙이라든가 인간사의 이치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그런데 불교에서 사용하는 법이라는 개념은 인도 말 다르마(dharma)를 번역한 말이어서 좀 독특한 뜻을 담고 있다. 다르마라는 말은 워낙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불교에서 그 말을 중요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몇 가지 중요한 뜻을 짚어보자면, 다르마는 우선 올바른 행위를 뜻한다. 인도의 유명한 옛 서사시 <마하바라타>라든가 <라마야나> 같은 데에서는 대개 그런 뜻으로 쓰이는 예가 많다. 여기에서 올바른 행위란 각 존재가 해야 할 일, 의무를 제대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다르마는 또한 가르침을 뜻한다. 불교의 삼보(三寶) 중에 법보(法寶)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이 바로 그런 용례이다. 그래서 삼귀의례(三歸儀禮)의 두 번째를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 뜻의 연장선상에서 다르마는 또한 불교의 경전을 가리키는 뜻도 가진다. 삼법인(三法印) 중에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하면 모든 것이 무아라는 뜻인 것이 그 한 예이다. 다르마의 이런 여러 가지 뜻을 두고, 그저 우연히 그런 서로 다른 뜻이 하나의 말에 가서 붙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여러 가지 뜻이 서로 연관되어 다르마, 즉 법이라는 말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를 구성한다. 성인의 가르침은 궁극적인 진리에 관한 것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세상의 모든 개별적인 존재와 현상을 통해서 드러나며, 각각의 존재는 그 진리에 입각해서 제 할 바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뜻이 거기에 한꺼번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라는 것이 그런 뜻인데, 마음이 곧 만법의 근본이라는 얘기는 또 과연 무슨 뜻인가?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앞의 글에서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心爲萬法之根本)이라고 한 <마조록(馬祖錄)>의 한 대목을 인용했듯이, 선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곧 만법의 근본으로서의 마음을 가리킨다.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라는 얘기를 선종에서 처음 한 것은 아니다.
<화엄경(華嚴經)>에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一切唯心造)이라 하고 또한 ‘이 세상은 허망하며 다만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三界虛妄但是心作)이라고 한 것이나, <대승기신론>에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것이 생기고 마음이 스러지면 모든 것이 다 스러진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고 한 것도 다 같은 취지이다.
그리고 다르마의 또 하나 중요한 뜻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궁극적인 진리를 가리킨다. 불법(佛法)이라고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도 되고 부처님이 깨닫고 가르친 진리라는 뜻도 되는 것이다. 다르마라는 말은 불교에서는 또 한편으로 온갖 개별적인 존재와 현상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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