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스크랩] 44. 교외별전(敎外別傳) 4

수선님 2018. 9. 16. 11:18


선종에서는 교외별전, 즉 경전에 담긴 가르침 밖에서 별도로 전한다 하고,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은 곧 만법의 근본이라고 했다. 불교용어로 만법(萬法) 또는 제법(諸法)이라 하면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을 뜻하니, 마음이 그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얘기다. 근본? 그게 무슨 뜻인가? 뭐 너무 심각하고 어렵게 여겨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자장면, 짬뽕, 아니면 우동을 그냥 마음대로 골라 시켜먹으면 된다는 식의 가벼운 뜻만은 아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의 진상을 제대로 보려면 마음을 올바르게 먹어야 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니, 아주 무거운 의미도 들어있다.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는 불교의 기본교리에도 이미 들어있다. 육근(六根)이니, 육처(六處) 또는 육경(六境)이니, 육식(六識)이니 하는 개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웬만한 불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개념이겠지만, 이 글의 연재를 위촉받을 때 청소년 학생들도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써달라고 부탁받은 참이라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우선, 육근이란 눈(眼)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그리고 정신(意) 등 우리의 지각, 감각 기관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신(身)을 몸이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촉각(觸覺)의 기관을 가리키는 개념이므로 혼란을 피하려면 피부라고 좁혀서 이해해도 좋겠다. 그리고 의(意)는 정신이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지각을 하는 기관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면 되고 사실상 앞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도 다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육처 또는 육경이란 그 육근 각각에 대응하는 감각, 지각의 대상을 말한다. 즉 눈에 보이는 물체(色)와 귀에 들리는 소리(聲), 코로 맡는 냄새(香), 혀로 느끼는 맛(味), 피부에 접촉해오는 자극(觸), 그리고 지각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法)을 가리킨다. 앞의 글에서 그 뜻을 소개한 법(法)이라는 말이 여기에 또 나왔는데, 그러니까 여기에서 법은 마치 지각, 감각의 대상 여섯 가지 가운데 하나인 듯이 목록에 끼었지만 사실상 눈으로 보는 물체에서 피부로 느끼는 자극까지 앞의 다섯 가지도 다 포함하는 개념이다.

 

다음으로 각각의 지각, 감각 기관과 그 각자의 대상이 만나서 감각, 지각을 일으키는 것을 가리켜 식(識)이라고 하였다. 안식(眼識), 이식(耳識)에서부터 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 여섯 가지이다. 여기에서도 의식은 앞의 다섯 가지 감각까지 다 포함하는 정신작용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복잡한 육근, 육처, 육식 개념을 이야기하는 취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사물과 현상이 우리가 감각하고 지각하는 그대로인 듯이 철썩 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데, 우리가 사실 그대로라고 여기는 그 모습들은 실제로는 우리가 그렇게 감각하고 지각하여 인식하는 내용을 덮어씌운 것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선종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일단 그런 우리의 정신작용을 총칭하는 뜻도 가진다. 마음은 만법의 근본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모든 것을 우리가 우리 마음에서 지어낸다는 뜻이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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