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스크랩] 45. 교외별전(敎外別傳) 5

수선님 2018. 9. 16. 11:18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란 곧 모든 것을 우리가 마음으로 지어낸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법(法) 즉 다르마(dharma)라는 말의 뜻을 소개했고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의 개념도 소개하였다.

 

모든 것을 우리가 마음으로 지어낸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대뜸 이런 의문이 일어난다. 그 ‘모든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내가 지금 보고 듣고 만지는 물체들이 모두 실상은 없는데 마치 정말 있는 듯이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말이냐? 그리고 또 이런 의문도 든다. 모든 것을 지어내는 것이 마음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한다고 할 때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써 어떤 마음을 전한다는 말인가? 뒤의 의문은 다음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선 앞의 의문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모든 것을 마음이 지어내었다고 할 때 그 모든 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인가? 내 앞의 풍경, 내 앞의 물건들은 아무리 곰곰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허깨비라고 치부해버릴 수가 없는데,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내가 지어낸 가짜라는 말인가? 내가 앞에 펼쳐놓고 있는 이 신문이, 읽고 있는 이 글이, 이 책상이, 이 방이, 이 집이, 이 세상이 다 허깨비란 말인가?

 

불교 문헌에는 마치 그렇다고 하는 듯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꿈의 비유가 그 한 예이다. 모든 것이 가환(假幻) 즉 허깨비라고 한다. 꿈속에서 겪는 것은 다 실제가 아닌데도 꿈속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그 모두가 생생한 현실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물에 빠진 꿈을 꾸면서 금방 죽을 듯이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슬픈 일을 당하는 꿈을 꾸면서 펑펑 울기도 한다. 불교 문헌에는 중생이 무시이래(無始以來), 즉 시작도 없는 때부터 길고 긴 꿈에 빠져있다는 말도 많이 나온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허깨비요, 현실의 세계, 꿈밖의 세계는 따로 있다는 얘기인 듯싶다.

 

올챙이와 개구리의 비유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개구리가 아무리 물 밖의 세계 즉 열반의 경지를 이야기해주어도 올챙이는 알아들을 수 없고 기껏해야 자기의 물속 세계 즉 중생 세계의 경험에 비추어서 이해(오해)할 뿐이라는 얘기인데, 물속의 세계와는 별도로 뭍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 하는 듯한 비유다.

 

얼마 전에 큰 흥행을 거둔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도 그와 비슷한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그 영화의 감독들이 <금강경>을 비롯해서 불교의 세계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매트릭스라고 일컫는 거대하고 치밀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하여 연출되는 세계라고 설정하고 있다. 그 가상현실 밖에 별도로 진짜 현실이 따로 있고 실제 인물들이 가상현실의 힘과 싸우는 줄거리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불교에서 허깨비 세상과 실제 세상이 따로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꿈의 비유든 올챙이의 비유든 일단은 세상 온갖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판단이 사실 그 자체의 진상 그대로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아니라 아집과 탐욕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인식과 판단이라는 취지로 이해하면 된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