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제78칙은 <수능엄경>에 나오는 고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여 참구하게 하고 있다.
옛날에 16명의 보살이 있었는데, 스님들을 목욕시킬 때 평상시처럼 욕실에 들어갔다가 문득 물의 인연(본질)을 깨달았다. 여러 선덕들이여! 저네들이 미묘한 감촉 또렷이 빛나며, 부처님의 아들이 되었네 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체득해야 하는가? 반드시 종횡으로 자유자재해야만 비로소 그와 같이 할 수 있다.
擧. 古有十六開士, 於浴僧時, 隨例入浴, 忽悟水因. 諸禪德, 作生會, 他道妙觸宣明. 成佛子住, 也須七穿八穴始得.
본칙은 <수능엄경> 제5권 다음의 일단에 의거한 것이다. 발타바라(跋陀婆羅)와 그 도반 16보살[開士]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말했다. “저희들은 처음 위음왕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으며, 스님들이 목욕할 때 차례차례로 욕실에 들어갔다가 문득 물의 원인(水因)을 깨닫고 보니, 때(번뇌)를 씻음도 아니요, 몸(體)을 씻음도 아니며, 중간에서 안연하게 무소유를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익힌 숙습(宿習)이 없어지지도 않았으며, 또한 금시에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무학(無學)을 체득하게 되었으며, 피불(彼佛)이 나를 발타바라라고 이름하니 미묘한 촉감(觸)이 선명(宣明)하여 불자의 보살지위(佛子住)를 이루었습니다. 부처님이 원통(圓通)을 질문하시니 제가 증득한 바는 촉인(觸因)이 으뜸이 되겠습니다.”
설두는 <설두송고> 제83칙에 이 일단을 요약하여 수록하고 있는데, 16보살(開士)은 발타바라와 같이 수행하는 일행이다. 개사(開士)는 보살의 번역어로 불법의 원만한 깨달음을 자리이타의 보살행으로 실행하는 수행자이며, 대사(大士)라고도 한다.
<경음소(經音疏)>에 “개(開)는 통달(達)이며, 밝힘(明)이며, 아는 것(解)이다. 사(士)는 사부(士夫)이다. 경전 가운데 보살이라고 부르며, 개사(開士)라고 한다.” 고 주석하고 있다. <대보적경(大寶積經)> 무진혜보살회(無盡慧菩薩會)에는 “16명의 재가 보살이 있으니 발타바라를 상수(上首)로 한다.”는 일절이 있고, 〈대지도론〉에도 “선수(善守, 발타바라) 등 16명의 보살은 모두 재가의 보살이다. 발타바라 거사는 바로 왕사성의 옛 사람”이라는 일절이 보이는데, 유마거사와 같이 재가의 보살로 잘 알려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원오도 ‘평창’에 능엄회상에서 발타바라보살이 16명의 보살과 함께 청정한 수행으로 각기 원통법문의 원인(因)을 말했다. “이것은 25원통 가운데 하나이다. 16명의 보살이 목욕시킬 때 평상시처럼 욕실에 들어갔다가 문득 수인삼매(水因三昧)를 깨치고 말했다. ‘육진(六塵)도 씻지 않았고, 몸도 씻지 않았다.’ 말해보라 무엇을 씻었는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늘 편안하며, 얻어 가진 것도 없이(無所有) 천만 가지 그 무엇도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얻은 것도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참다운 반야이다. 만약 얻은 것이 있다면 사이비 반야이다.”
수인삼매(水因三昧)는 <수능엄경>에서 말하는 25가지 깨달음(圓通) 가운데 하나인데, 발타바라 등 16명의 보살이 수인삼매를 깨달았다는 경전의 말씀을 인용하여 본칙에서는 수인(水因)을 깨닫는 지혜를 체득하도록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수인(水因)이란 물의 본질이나 실체, 혹은 물의 속성을 말하는 것으로 본래 독자적인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자성(無自性) 혹은 불가득(不可得)이며 본래 공(空)한 인연으로 잠시 결합된 존재라는 사실이다. 16보살은 목욕하는 동기에서 이러한 수인(水因)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욕실에서 조용히 몸을 씻는 도중에 물을 아무리 사용해도 물은 그대로 흘러내리며, 어떠한 그릇에도 담기며, 어떤 형체와 독자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법에서 설하는 무자성(無自性)과 물질이 본래 공한 색죽시공(色卽是空)의 경지를 체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로에 제로라는 숫자를 아무리 첨가해도 제로인 것처럼, 본래 공한 물로 공한 신체와 때를 씻는다는 사실 또한 본래 공한 경지인 것이다. 즉 아상과 인상, 주관과 객관이라는 상대적인 분별심과 자아의식도 없이 텅 빈 마음으로 본래 공(空)한 물을 사용하여 무심의 경지에서 무사하게 지금 여기 자신이 물을 가지고 몸을 씻는 목욕하는 일이다. 이것이 주관적인 자기와 객관적인 대상인 물과 혼연 일체가 되고, 하나(一如)가 된 수아일체(水我一體)이며, 만물일체(萬物一體), 혹은 만법일여(萬法一如)의 경지라고 한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이란 번뇌 망심의 분별심이 없이 젓가락(色)으로 무심(空)한 경지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며, 공즉시색이란 젓가락을 가지고 식사한다는 의식(분별심)도 없이(空) 무심하게 젓가락과 숟가락 등의 도구(色)를 사용하여 지금 여기 자신의 식사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설두화상은 “여러 선덕들이여! 어떻게 그들 16보살이 체득한 미묘한 감촉으로 또렷이 깨닫고 광명으로 빛나며, 부처님의 아들이 되었네 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경지를 어떻게 체득해야 할 것인가?”라고 <수능엄경>에서 발타바라가 깨닫게 된 인연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미묘(妙)함은 불가사의한 경지를 말하며, 감촉(觸)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촉(觸)으로 신체의 감각을 통해서 외부 경계를 받아들이면서 차갑고 부드럽고 느끼는 지각을 말한다. 16보살은 본래 공하여 무상(無相)한 물을 사용하여 무상의 신체에 목욕하는 촉감을 통해서 본래 공함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을 묘촉(妙觸)이라고 한 것이다. 물이 신체에 닿는 촉감의 묘오(妙悟)가 확실하고 선명하게 자각된 지혜작용을 선명(宣明)이라고 말한다. 세존이 새벽에 별을 보고 깨달은 시각(視覺)과 향엄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청각(聽覺), 그리고 16보살이 목욕하면서 물이 몸에 닿는 인연으로 깨달은 촉각(觸覺) 등이 있는 것처럼, 수행자의 매일 매사는 물론,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시각, 청각, 촉각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인연이라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불자주(佛子住)’란 불자로서 불생불멸인 진여법성을 깨닫고 열반적정의 등각의 지위에 안주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부처님의 깨달음과 같은 경지를 체득한 것을 말한다.
설두는 또 “반드시 종횡으로 자유자재해야만 비로소 그와 같이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16보살이 묘촉(妙觸)의 체험으로 부처와 같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묘오(妙悟)를 체득했다고 했는데, 선의 수행으로 볼 때 목욕하는 인연으로 수인(水因)을 깨닫는 것이 아니고, 밥을 먹을 때나, 차를 마실 때나, 피곤하면 잠잘 때나 지금 여기의 당처에서 불자의 지위(깨달음)에 이르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혜작용이 살황자재(殺活自在)의 기용인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종횡으로 무애 자재한 경지가 되면 16보살이 깨달음을 체득한 묘촉선명(妙觸宣明)의 경지를 단적으로 파악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결국 보살의 깨달음은 선의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와 같은 것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생사대사의 일대사를 마친 납승은 한사람이라도 좋다.” 16명의 보살의 이야기는 접어두고 불법의 대의를 깨닫고 정법의 안목을 구족하여 무애자재한 지혜작용을 펼칠 수 있는 한 사람의 선승이라도 출현한다면 충분하다. 사실 한 사람이라도 그러한 인물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긴 좌선상위에 다리 펴고 누웠네.”
<전등록> 제15권 협산선회의 말로 일대사를 마친 한 사람은 <증도가>에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처럼, 부처나 깨달음을 구하는 일도 없이 무심의 경지에서 무사한 생활을 한다. “꿈속에서 원통을 깨달았다 말하나,” 16보살이 수인(水因)으로 원통을 깨달았다고 하나 꿈속의 잠꼬대와 같이 실체가 없는 것이다. 미혹함의 꿈이나 깨달음이라는 꿈도 깨고나면 모두 텅 빈 空인 것이다. “향수로 씻었다고 해도 얼굴에 침을 뱉으리.” 향수로 목욕을 해도 즉 깨달음이라는 냄새(향수)에 젖어 있는 것은 얼굴에 침을 뱉는 것, 도리어 더러움이 되고 만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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