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79칙은 투자산에서 활약한 대동(大同)화상의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투자화상에게 질문했다. “일체의 모든 소리가 부처의 소리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투자화상이 말했다. “그렇지.”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주전자에 물이 끓는 소리와 같은 말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투자화상이 곧장 후려 쳤다. 그 스님은 또다시 질문했다. “난폭한 말이나 부드러운 말이 모두 불법의 근본진리로 귀결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투자화상이 말했다. “그렇지.” 스님이 말했다. “화상을 말뚝에 메여있는 당나귀라고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투자화상이 곧장 후려쳤다.
擧. 僧問投子, 一切聲是佛聲是否. 投子云, 是. 僧云, 和尙莫沸碗鳴聲. 投子便打. 又問, 言及細語皆歸第一義. 是否. 投子云, 是. 僧云, 喚和尙作一頭驢得. 投子便打.
본칙의 공안의 출처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연등회요> 제21권, <오등회원> 제5권 투자화상전에 수록하고 있다. 투자화상은 <벽암록> 제41칙 본칙에 조주선사와의 대화에도 등장한 바가 있는데, 단하천연-취미무학(翠微無學)선사의 법은 잇고 서주(舒州) 투자산에서 교화를 펼친 대동(大同, 819~914)선사이다. 그의 전기는 <조당집> 제6권, <전등록(傳燈錄)> 제15권에 전하고 있다.
원오스님은 ‘평창’에서 “투자화상은 소박하고 진실하면서도 많은 사람 가운데서 뛰어난 변재를 발휘했다. 흔히 질문하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하면 곧바로 그의 속을 들여다보아 괜한 힘을 들이지 않고 그의 혀를 꽉 틀어막아 꼼짝 못하게 하였다. 이것은 장량(張良)이 천막 안에서 작전을 세워 천리 밖에서 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것과 같았다”고 평하는 것처럼, 한나라의 명장 장량에 비교하고 있다.
본칙의 대화도 어떤 운수행각하는 스님이 투자화상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서 “일체의 모든 소리가 부처의 소리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라고 질문했다. 운문선사도 “일체의 소리는 부처의 소리이며, 일체의 모습은 부처의 모습”이라고 항상 설법했다. 소동파가 읊은 “개울물 흐르는 소리는 곧 부처님의 설법소리이고, 산이 솟아 있는 모양 그대로 부처님의 청정한 법신” 이라는 게송이나, <인천안목>에 “소나무에 부는 바람소리 반야를 설하고, 지저귀는 새소리는 진여를 드러낸다” 고 읊고 있는 것처럼, 자연의 일체 모든 소리가 부처의 청정법신이며 설법소리이다. 일체의 모든 소리가 부처의 설법소리, 즉 여래의 법음(法音)이라는 주장은 <법화경(法華經)>, <수능엄경> 등 여러 경전에서 많이 주장하고 있다.
<관무량수경>에 새들과 나무들이 모두 묘법을 설하고 있으며, <아미타경(阿彌陀經)>에도 아미타불의 국토에는 일체의 모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나, 산들바람이 나무를 흔들며 나는 바람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으로 법음으로 장엄된 국토라고 설한다. 특히 향엄선사는 기와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체득하고, 부(孚) 상좌(上座)는 종소리를 듣고 홀연히 깨닫게 된 인연을 전한다. 현사는 상당법문을 할 때, 제비가 조잘대는 소리를 듣고 “깊은 반야의 실상을 설하고 훌륭한 법문의 요지를 설한다” 라고 설법했다.
그래서 무량종수는 <일용청규>에 “종소리를 듣고 번뇌가 끊어지며, 지혜가 증장하고 깨달음을 이루며, 지옥을 벗어나 삼계를 초월하고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원합니다” 라는 게송으로 요약하여 일체 부처의 소리(法音)를 듣고 깨달음을 이루도록 발원하고 있다.
‘일체의 모든 소리가 부처의 소리(法音)’ 라는 질문은 <열반경> 제20권 범행품의 게송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투자화상은 “그렇지” 라고 긍정하는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화상께서는 주전자에 물이 끓으면서 뜨거운 김이 밖으로 힘차게 새면서 나는 “뿌! 뿌!” 라는 소리가 어찌 부처의 설법소리라고 하십니까? 너무 지나친 엉터리 말씀은 삼가하십시요”라고 비판하는 어조로 말했다. 돈비완명성(沸碗鳴聲)을 방귀뀌는 소리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다.
<벽암록> 제25칙에 ‘열완명성(熱鳴聲)’과 같은 말로, <오조법연선사어록>에도 “임제의 고함(喝)은 마치 주전자에 물이 끓는 소리”라고 평하고 있다. 그러자 투자화상은 주장자로 곧장 그 스님을 후려 쳤다. 원오는 “잘 쳤다. 그런 놈은 놓아주면 안 된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질문한 스님이 부처의 소리라는 절대평등의 한쪽 면에 집착되어 평등이 곧 차별이며, 차별이 곧 평등이라는 전체를 보는 안목 없는 놈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일체의 모든 소리가 부처의 법음 아닌 것이 없는데, 부처의 소리에 집착하고 있다. 주전자의 물끓는 소리나 고양이나 개가 짖는 소리 일체의 차별세계의 모든 존재의 소리가 그대로 부처의 법음이라는 사실을 체득하지 못하고, 차별과 평등을 구분하는 상대적인 견해에 떨어졌기 때문에 후려친 것이다.
그 스님은 또다시 “난폭한 말과 부드러운 말이 모두 불법의 근본진리로 귀결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라고 질문했다. 이 말은 <열반경> 범행품의 “모든 부처님은 항상 부드러운 말씀이나, 중생을 위하여 거친(?) 말씀도 하신다. 거친 말씀과 부드러운 말씀이 모두 불법의 근본(第一義)으로 귀결된다” 라는 게송이다. 즉 아무리 난폭하고 나쁜 말을 하거나 공손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거나 모두 한결같이 불법의 진리에 계합된 설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연의 모든 소리가 부처의 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사람의 소리나 짐승의 소리나 무생물의 소리나 모두 부처의 법음이기 때문에 불법의 근본을 설하는 중도(中道) 제일의제(第一義諦) 라는 사실은 자명한 일이기에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화상은 “그렇지” 라고 전적으로 긍정하는 대답을 했다. 그 스님은 “일체의 모든 것을 불법의 근본으로 말한다면 화상을 선지식이라고 부르는 대신 말뚝에 메여있는 한 마리의 당나귀라고 불러도 좋습니까?” 라고 말했다.
원오는 “송곳 끝이 날카로운 것만 보았을 뿐, 끝이 네모난 것은 보지 못했다” 라고 착어한 것처럼, 나쁜 시각에서 평등(第一義諦)의 한쪽 면을 보고, 차별이 평등인 사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는 놈이라고 비평한 것이다. 원오는 피를 입에 머금어 남에게 뿌리려다 자기 입이 먼저 더럽혀 졌다라고 평하는 것처럼, 절대 진리라는 평등 한쪽에 치우친 편견에 떨어졌기 때문에 차별이 곧 평등이라는 안목이 없는 졸승이다 보니 남을 공격하면서도 도리어 자신이 중생심에 떨어진 피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마치 <사십이장경> 제8장에 “나쁜 사람이 현자(賢者)를 해치는 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침을 뱉은 것과 같다. 침은 하늘에 도달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 얼굴에 떨어지게 된다.… 현자를 비방하지 말라. 그 재앙은 자기를 멸망시킨다” 라는 말과 같다. 안목 없는 엉터리 수행자를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다. 그래서 투자화상은 주장자로 후려친 것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투자화상이여!, 투자화상이여!” 투자화상의 대기 대용을 경의심으로 찬탄하며, “선기로 펼친 지혜작용은 막힘이 없네.” 마치 수레바퀴라 종횡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같이. ‘한 번 휘둘러 둘을 얻고,’ 스님의 질문에 두 번이나 “그렇지”라는 한마디를 먹이를 던져, 두 번이나 스님의 방망이로 휘둘러 공덕을 펼친(得) 투자화상의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저기도 이와 같고, 여기도 이와 같네.” 두 번의 질문에 똑같은 방법으로 처음은 긍정(放)하고, 뒤에서는 거두(收)는 방편을 사용했다. “가련하다. 험난한 파도를 타고 넘나드는 무수한 사람들이 결국 파도에 밀려 떨어져 죽는 구나.” 투자화상의 높고 험준한 선풍은 천하에 알려져, 많은 수행자가 구경하러 몰려오지만, 안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투자의 지혜풍랑에 밀려 비명의 최후를 맞이했다.
“홀연히 되살아나면, 백 천의 많은 강물이 콸 콸 콸 거꾸로 흐르게 되리라.” 아상과 인상, 고정관념과 편견을 텅 비우고 지혜의 안목을 갖춘다면, 일체의 만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사람이 되리라.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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