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80칙은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갓 태어난 어린애도 육식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대화를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질문했다. “갓 태어난 어린애도 안 이 비 설 신 의, 육식을 갖추고 있습니까?” 조주화상이 말했다. “쏜살같이 흐르는 강물 위에 공을 치는 것과 같다.” 그 스님은 다시 투자화상에게 질문했다. “쏜살같이 급히 흐르는 강물 위에 공을 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투자화상이 말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한순간도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
擧, 僧問趙州, 初生孩子, 還具六識也無. 趙州云, 急水上打毬子. 僧復問投子, 急水上打毬子, 意旨如何.
본칙의 공안은 <조주록> 중권에 수록하고 있다. 조주화상은 <벽암록>에 자주 등장한 당대의 유명한 조주종심(778~897)선사이다.
어느 날 조주화상을 참문하러 온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갓 태어난 어린애도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안식(眼識)과 귀로 소리를 인식하는 이식(耳識), 혀로 맛을 인식하는 설식(舌識), 몸으로 촉감을 인식하는 신식(身識), 의지로 사물을 인식하는 의식(意識)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했다.
갓 태어난 어린애도 인간이기 때문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이 구족한 것이고, 육근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육근의 외부대상인 여섯 가지 경계(六境), 즉 눈으로 사물의 모양(色)을 보고 다양한 사물의 모양과 색깔을 인식하며, 귀로 소리를 듣고 소리의 내용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코로 냄새를 맡고 향기를 인식하며, 혀로 음식의 짜고 신맛 등을 인식하며, 몸의 감촉을 받아서 부드럽고 딱딱한 느낌 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활동은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을 받아들여 눈, 귀 코, 혀와 몸의 다섯 가지 인식의 문을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하는데, 이 전오식(前五識)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온 것을 모두 받아 들여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제6식인 의식(意識)인데, 느낌이 좋고 나쁘고, 얼굴모양이 예쁘고 밉고, 깨끗하고 더럽다는 여러 가지 현상(法)을 인식하게 된다.
질문한 스님은 갓 태어난 어린애도 사물의 좋고 나쁨을 인식하는 제6식인 의식(意識)을 갖추고 있는지 묻고 있다.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은 육조혜능이 대유령 고개에서 혜명상좌에게 최초로 설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선과 악을 모두 함께 생각하지 말라.’고 법문하면서 많은 선승들이 일체의 선과 악은 물론 사량 분별을 절단하고 무심의 경지가 되도록 하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무심(無心)이란 일체의 차별심과 분별심을 텅 비워버리고 번뇌 망념이 없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인데, 이러한 무심의 경지를 어린애의 마음과 같이 순수하게 하라는 주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원오도 ‘평창’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질문한 스님은 불교 교학의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주화상에게 ‘갓 태어난 애도 육식을 갖추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6식을 갖추고 있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가 있다. 그러나 육진을 분별하지 못하여 좋고 나쁨과, 길고 짧음, 옳고 그름, 이득이 되는지 손실이 되는지 전혀 모른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갓 태어난 어린애처럼, 영예, 오욕, 공명, 거름과 수순(逆情順境)이 동요시키려고 해도 동요되지 않아야 한다. 눈으로 모양(色)을 봐도 장님처럼, 귀로 소리를 들어도 귀머거리처럼, 마음이 수미산과 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경전에서 문수동자나 선재동자를 비롯하여 〈십우도〉에서 소를 찾는 구법자를 동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어린애의 천진성과 순수성은 일체의 차별심과 분별심을 초월한 경지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원오는 ‘평창’에 석실선도(石室善道)선사의 법문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그대들은 들어보지 못했는가? 어린애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일찍이 나는 부처의 가르침을 안다고 말하더냐? 이 때는 불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점점 크면서 갖가지 지식과 이해를 배워서, ‘나는 불법을 알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객진 번뇌인줄 모른 것이다. 16관행(觀行) 가운데 어린애의 무심한 행동(兒行)을 으뜸으로 여긴다. 어린애가 울 때는 우는 그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 분별과 취사선택의 마음을 여읜 것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어린애를 찬탄하여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어린애를 도(道)라고 한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 스님의 질문은 갓난애가 6식을 갖추고 있는가? 라는 문제를 던져서 조주의 안목을 점검하고 있다. 조주화상이 만약 ‘있다’라고 대답하면 왜 어린애는 좋고 나쁨 등에 대한 분별과 판단이 없는가? 라고 힐문할 것이고, ‘없다’라고 대답하면, 왜 울고 웃고 하는가? 반문하려고 할 것이다. 조주화상은 ‘쏜살같이 급히 흐르는 강물 위에 공을 치는 것과 같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어린애가 육식을 갖추고 있다는 말도 아니고, 갖추고 있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원오가 ‘지났다’라고 착어한 것처럼, 눈 깜박 하는 사이에 있다 없다라는 분별심을 초월하고 자취나 흔적도 없이 지나갔다.
<능엄경(楞嚴經)>의 말에 ‘급류의 물을 바라보면, 편안하고 고요한 것 같다. 그러므로 급히 흐르는 물처럼, 거침없이 끊어짐이 없이 흐르면서 흐르는 모습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만법이 모두 물이 흐르는 것과 같고, 어린애의 마음도 물이 흐르는 것처럼, 단지 시절인연에 따라 여여하게 흐를 뿐이다. 그 스님은 조주화상의 이 말에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투자화상을 찾아가 질문했다. “조주화상이 쏜살같이 흐르는 강물 위에 공을 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급류 위에서 공을 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투자화상은 “한 생각, 한 생각이 한 순간도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조주화상의 대답과 똑같은 뜻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인데, 일념 일념이 서로 이어져 상속(念念相續)하면서 일체의 차별경계에 흔적과 자취를 남기지 않고 흐르고 있는 무심의 입장을 말한다. 원오도 ‘어린애의 육식이란 인위적인 꾸밈(功用)이 없지만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을 어찌 하겠는가?’라고 언급하고 있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인위적인 꾸밈(功用) 없는 어린애의 6식에 대해서 질문하니,’ 스님은 6정(六情)의 망념이 작용하지 않는 무공용처(無功用處)를 질문한 것인데, 6식의 인위적인 분별의식이 없는 육식의 인식 작용 그대로가 무공용인 것이며, 분별의식이 없이 눈으로 사물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는 것이다. 원오는 무공용의 모습을 거울이 무심하게 사물을 비추는 것으로 착어하고 있다. ‘두 작가가 모두 질문자의 핵심을 파악해 버렸네’ 조주와 투자화상 이 두 작가는 갓난애의 육식에 관한 견해를 질문한 핵심을 곧바로 파악했다. 그래서 조주화상은 흐르는 급류에 공을 친다고 했고, 투자화상은 한 생각 한 생각 머무름이 없다고 대답하여 갓난애의 육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한 것이다. ‘아득한 급류에서 공을 치니’ 이 말은 조주화상의 대답을 게송으로 읊은 것인데, 망망(茫茫)은 끝이 없이 아득하여 광대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아득하고 급히 흐르는 급류의 물줄기에 공을 치는 무심(無功用)의 일구를 던진 것이다.
또한 급히 흐르는 물줄기는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으며 그냥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급류에서 공을 친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이렇게 대답한 조주화상이나 설두화상의 견해도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한다고 원오는 비판하고 있다. ‘행방(落處)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그 누가 알랴!’ 투자화상은 한 생각 한 생각 머무름이 없이 흐른다고 했는데, 그 한 생각 한 생각이란 어떤 것이며, 머무름이 없다는 것은 어떻게 머무르지 않는가? 그 행방(落處)을 추궁하면 누구라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알았다고 해서 불법의 진의를 체득한 것은 아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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