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행제일 라후라(라훌라)
라후라는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이지만 부처님의 출가 전 출생한 아들이다.
부처님께서 아들의 탄생을 들으시고 ‘장애가 생겼구나’고. 탄식한데서 「라후라」라는 이름을 가졌다.
부처님께서는 일찍부터 출가의 뜻을 품고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후계자를 얻음으로써, 출가의 조건은 갖추어졌지만, 반면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출가의 결심이 무디어질 것을 걱정했던 것일까?. 출가 하는데 장애가 생겼다고 말씀하셨고, 그런 중얼거림이 그대로 『라후라』라는 이름으로 되었다.
라후라---한역 불전에서는 라훌라로 음사되어 있다. 부처님의 아들이고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이다. 『밀행제일』이라는 호칭이 있는데, 이 밀행이란 계율을 세밀한 부분까지 실천한 것을 말한다. 배운 바 그대로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실천한 것을 말한다. 배운 바 그대로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충실히 실행하는 타입의 제자였다. 약간 저열한 말투를 사용하면 우직하다고 해야 할까...
라후라의 출가 경위에 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부처님께서 고향인 석가국의 가비라성에 돌아오신 것은 어느 무렵이었을까? 35세에 성도한 부처님께 입멸하신 것은 80세였다. 따라서 45년 동안의 전도 생활이 있었던 터이나. 이 이야기는 아마도 그 최초의 귀향 때였다고 추측되는데, 그 시기에 관해서는 불전에 정확한 기록이 없다. 많은 학자들의 견해를 참고로 하여 말할 것 같으면, 성도 후 6~7년째의 무렵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고행에 돌아오시는 부처님을 맞는 부친이나 아내의 마음은, 퍽이나 복잡했을 것이다. 그들을 버리고 출가를 하신 부처님께서는 이제는 훌륭한 『명사』였다. 당시부처님의 명성은 인도 일대에서 괘 높았다. 부친으로서 아들의 성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은 있었다.
그런데 귀향을 하신 부처님께서는 , 가비라성의 거리로 탁발을 다녔다. 단 한 번도 궁전으로는 찾아오시지 않았다. 참다못한 부친 정반왕은 사자를 보내 이렇게 전했었다.
「우리 왕가의 부로 말하면, 수 천 명의 출가자에게 공양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아들이여, 제발 비렁뱅이 짓마나은 그만 둬 다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이것은 출가자의 바른 생활입니다.」라고 .
또 한 사람은, 아내인 야소다라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로 자각하고 있었다. 부처님의 출가는 진리를 추구하는 행동이었지만, 그것은 집을 나가 출가자의 입장이고 집에 있는 부인은 버림을 당한 것이 되기 때문에 습습한 마음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야쇼다라는 고집이 센 여성이었다고 불전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돌아온 남편에게 눈물을 흘리지 않고 오히려 까시 돋힌 말로써 맞고 있다.
탁발하며 돌아다니는 부처님을 가리키면서, 야소다라는 아들인 라후라에게 이렇게 들려주었다.
「저분이 너의 아버지란다. 어서 빨리 갔다 오렴.... 가서 재산을 받아 오는 거다. 자식은 누구나 자기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나눠 받을 권리가 있는 거니까.....」
그녀는 듣기 좋은 말로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절반이상은 남편에게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부처님은 어떤 마음으로 들으셨을까......?
라후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부친인 부처님께 달려갔다.
「아버지, 내게 재산을 주십시오.」
그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반복한다. 부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없이 교외의 니그로오다원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거기에 머물러 계셨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고제자인 사리불을 불러서 라후라의 문제를 상의했다. 그리고 사리불에게 부탁하여 아들인 라후라을 출가시켰다. 또 라후라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한 사람의 비구로는 취급할 수 없었으므로, 그의 지도를 목련에게 맡겼다. 그러므로 라후라는 사리불과 목련존자의 훌륭한 스승에게 지도를 받는다.
그런데 라후라는 그만큼 행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부처님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으로, 어딘지 모르게 차별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의 우리나라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더라도 라후라의 입장은 알 수 있다. 부처님의 당시의 인도의 교단은 세습제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부처님이라는 이유로 라후라 자신이 존경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훌륭한 부처님의 아들인데도 ...하고,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도리어 손해 보는 입장이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교 교단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 출가 이전의 직업이나 출신 성분의 귀천에 의해서 차별을 받는 일은 없다. 다만 교단 내부에서의 서열은 있다. 이런 서열이 없다면 어떤 집단이고 간에 운영되기는 어렵다. 그리고 불교 교단의 서열은 『법랍』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서, 계율을 받아 비구 또는 비구니가 되고 나서의 햇수에 많고 적음에 따르는 것이다. 나중에 입단한 자는 먼저 입단해 있던 자의 지도를 받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는 , 불교 교단에서는 엄격한 서열이 있었다.
그때 라후라는 부처님과 함께 기원정사에 머물며 묵고 있었다. 거기에 많은 비구들이 찾아온다. 당연히 방이 모자라게 되었고, 라후라는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던 방을 선배에게 양보하지 않으며 안 된다. 그는 그 날 밤, 향실 앞에서 잤다고 한다. 향실이란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을 말한다. 안타깝게도 라후라는 복도에서 잤던 것이다.
이 광경을 본 악마는,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식을 밖으로 쫓아내고 자신은 향실에서 자고 있다... 고 비난을 하면서 큰 소리로 떠들어 댔었다고 한다. 악마를 핑계 대고는 있지만, 누군가가 험담을하는 자도 있었던 것일까.... 이세상의 어버이로서, 가령 자신이 복도 위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보드라운 침상은 자기 자식에게 양보해 주고 싶은 거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규칙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 했던 부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쩐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법인으로는 알 턱이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부처님은 모든 제자들을 평등심을 가지고 보아 주신다.....」
는 , 어느 경전의 문구가 있다. 그 모든 제자들 가운데는, 부처님에게 반역을 한 제파달타나 출가 이전에 사위성의 거리에서 99명의 남녀를 죽인 앙굴마라의 이름이 나온다. 그와 나란히 라후라의 이름이 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자기 자식만을 특별한 눈으로 보시는 일은 없었다. 우리 범인과는, 처음부처 보는 눈이 달랐던 것이다.
'십대제자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공제일 수보리 (0) | 2020.10.25 |
---|---|
[스크랩] 10. 다문제일 아난존자 (0) | 2018.10.07 |
[스크랩] 계율제일 우바리(우파리) (0) | 2018.09.30 |
[스크랩] 7. 논리(論理) 제일 가전연(마하캇쟈나) (0) | 2018.09.30 |
[스크랩] 6. 설법제일 부루나(푼나) (0) | 2018.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