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송

나옹화상 - 화두 참구하는 법

수선님 2018. 10. 14. 11:38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 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의 일어나고 멸함이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가서 성취하리라
 

[화두 참구하는 법] [병문안] [공부 열 가지]

화두 참구하는 법

스님은 어느 날 대중을 모아 놓고 일상의 정진을 낱낱이 물은 다음 이와 같이 말했다.
"모름지기 대장부의 마음을 내고 결정된 뜻을 세워,평생에 깨치거나 알려고 한 모든 법과 문장과 어언삼매(語言三昧)를 싹 쓸어 큰 바다속에 던져버리고 다시는 집착하지 마시오.
한번 앉으면 그 자리에서 팔만사천의 온갖 생각을 끊고, 본래부터 참구(參究)하던 화두(話頭)를 한번 들면 놓지 마시오.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어떤 이 본래 면목인가?' '어떤 것이 내 성품인가?' '어째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이런 화두를 들되, 마지막 한 마디를 힘을 다해 드시오.

화두가 앞에 나타나면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 고요한 곳에서나 시끄러운 곳에서나 한결같을 것이오.

이 경지에 이르면 다니거나 멈추거나 앉거나 눕거나옷 입을 때나 밥 먹을 때나 언제 어디서나 온 몸은 하나의 의심덩이가 됩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부딪치고 또 부짖쳐 몸과 마음을 한덩어리로 만들어 그것을똑똑히 참구하시오.
화두 위에서 그 뜻을 헤아리거나 어록(語錄)이나 경전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단박 깨뜨려야 비로소 집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오.
만약 화두가 들어도 들리지 않아 냉담하고 아무 재미가 없으면, 낮은 소리로 서너 번 연거푸 외워 보시오.
문득 화두에 힘이 생기게 됨을 알 수 있을 것이오. 그런 경우에 이르면 더욱 힘을 내어 놓치지 않도록 하시오.

여 러분이 저마다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 정진하는 가운데에서도 더욱 더 용맹정진하면 갑자기 탁 터져 백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것이오.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이십 년이고 삼십년이고를 묻지 말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성태(聖胎)를기르시오. 그러면 그는 금강권(金剛眷고 마음대로 삼켰다 토했다 하며, 가시덤불 속도 팔을 저으며 지나갈것이고, 한 생각 사이에 시방세계를 삼키고 삼세의 부처를 토해낼 것이오.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 그대들은 비로소 법신불(法身佛)의 갓을 머리에 쓸 수 있고, 보화불(報化佛)의머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못하다면 밤낮을 가리지 말고 방석 위에 우뚝 앉아 눈을 바로 하고 '이 무엇인가?'의 도리를 참구하시오." 


병문안  

그대의 병이 중하다고 들었다. 그것은 무슨 병인가?
몸의 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몸의 병이라면 몸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가지 요소가잠시 모여 이루어진 것,
그 네 가지는 저마다 주인이 있는데 그럼 어느 것이 그 병자인가?
만약 마음의 병이라면 마음은 꼭둑각시와 같은 것, 비록 거짓 이름은있으나 그 실체는 실로 공한 것이니 병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그 일어난 곳을 추궁해 본다면 난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럼 지금의 그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또 고통을 아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살피고 살펴보면 문득 크게 깨칠 것이다. 이것이 내 병문안이다. 


공부 열 가지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뛰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뛰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에서 뛰어날 수 있을까? 이미 모양과 소리에서 뛰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공부가 익었으면 다시 거친 콧김을 없애야 한다. 거친 콧김을 없앤 때는 어떤가?
콧김이 없어지면 냉담하고 재미가 없으며, 기력이 없고 의식이 분명치 않으며 마음도 활동하지 않는다.
또 그때에는 그 허망한 몸이 인간에 있는 줄을 모른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그때는 어떤 시절인가?
공부가 지극해지면 움직이고 조용함에 틈이 없고,자고 깸이 한결같아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갑자기 백 이십 근이나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단박 꺽이고 단박 끊긴다.
그때에는 어떤 것이 그대의자성(自性)인가?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작용은 인연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 어떤 것이 작용에 따름인가?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초월해야 하는데,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그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사대는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출처: http://www.zen24.kr/xe/485
행자실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dis834/82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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