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모든 견해에 모두 허물이 있다면 이 제일의실단은 어떻게 해서 옳은가? |
[답] 온갖 언어의 길을 초월했고 마음으로 더듬을 곳이 없으며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아무런 법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법의 실상은 처음도 없고 중간도 없고 나중도 없으며 다함도 무너짐도 없나니, 이것을 제일의실단이라 한다. |
133) 범어로는 Sarvāstivādin. 유부(有部) 또는 설인부(說因部, Hetuvādin)라고도 한다. 기원전 1세기 경 상좌부에서 분파되었는데, 부파불교 가운데 가장 세력이 컸다. 바수미뜨라[世友]의 설을 이 부파의 정통설로 간주하는데, 그에 의하면 3세에 실유하는 법이 항상 자기 본래의 성품을 유지하면서 세 가지 작용방식, 곧 작용이 아직 끝나지 않음․현재 작용하고 있음․이미 작용이 끝남 등에 의해 미래․현재․과거의 법이 구분된다고 한다. 또한 5온상속설(蘊相續說)을 주장하는데, 5온이 순간마다 상속하는 까닭에 인간이 존재한다고 한다. |
134) 범어로는 pudgala. |
135) 범어로는 dhātu. |
136) 범어로는 āyatama. |
137) 이 셋을 3과(科)라고도 한다. |
138) 대승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공(空)을 무(無)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
139) 저들 일체는 모두 스스로 애착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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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연의(摩訶衍義)의 게(偈)140) 가운데 설하는 바와 같다. |
말로써 표현할 길이 다하고 |
마음으로 따질 수도 없다. |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니 |
법이 그대로 열반이다. |
모든 지어감[行]을 말한 곳을 |
세간의 법이라 하고 |
지어감이 없음을 말한 곳을 |
제일의제라 한다. |
온갖 진실함과 진실 아님과 |
온갖 진실하기도 하고 진실하지 않기도 함과 |
온갖 진실 아니기도 하고 진실 아닌 것도 아닌 것 |
이들을 모든 법의 실상(實相)이라 한다. |
이와 같이 경전의 곳곳에서 제일의실단을 말씀했지만, 이 이치가 심히 깊어서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말씀하시기 위해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
또한 장조(長爪) 범지141) 등 큰 논사들로 하여금 불법에 대하여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하여 이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셨으니, 장조라는 범지가 있었고 선니(先尼)142)․바차구다라(婆蹉衢多羅)143)․살차가(薩遮 |
140) 범어로는 Mahāyānārthagāthā. |
141) 범어로는 brahmacārin Dīrghanakha. |
142) 범어로는 Seniya. 원래는 견계행자(犬戒行者)였으나 뒤에 불제자가 되었다. 승군(勝軍)이라고 의역하기도 한다. |
143) 범어로는 Śreṇika Vatsagotrā. 왕사성 부근에 거주하던 외도로 개나 소처럼 행동하며 살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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迦)144)․마건제(摩揵提)145)라는 이들도 있었다. |
이들은 염부제146)에서 큰 논사들로서 “온갖 이론은 모두 부술 수 있다. 온갖 이야기는 모두 무너뜨릴 수 있다. 온갖 집착은 모두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을 법도 없고 공경할 법도 없다”고 말한다. |
사리불본말경(舍利弗本末經)』147)에 설하듯이 사리불의 외삼촌인 마하구치라(摩訶俱絺羅)148)가 그의 누이인 사리(舍利)149)와 토론을 하다가 졌다. 이에 구치라는 생각했다. |
‘누이의 힘은 아닐 것이다. 반드시 지혜 있는 사람을 잉태했는데 엄마의 입을 통해서 하는 짓일 것이다.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러하니, 태어나서 자란 뒤엔 어떻게 감당하랴.’ |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교만한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널리 논의해 보기 위해 출가하여 범지의 몸으로 남천축(南天竺)150)에 들어가서 경서를 읽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물었다. |
“그대 범지는 무엇을 구하려는가? 그리고 어떤 경서를 배우는가?” |
장조가 대답했다. |
“열여덟 가지 대경(大經)151)을 모두 다 읽고자 한다.” |
144) 범어로는 Satyaka Nirgranthīputra. 바이샤리에 살던 쟈이나 외도로 나중에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
145) 범어로는 Mākandika. |
146) 범어로는 jambudvīpa.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대주 혹은 일곱 대륙 가운데 하나로 남쪽에 있기에 남섬부주(南贍部洲, Dakṣiṇa-jambudvīpa)라고도 한다. 원래는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
147) 범어로는 Śāriputrāvadānasūtra. |
148) 범어로는 Mahākauṣṭhila. 여기에서는 장조범지와 동일한 인물이다. 구지라(俱祉羅)․구치라(俱絺羅)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
149) 범어로는 Śārī. |
150) 범어로는 dakṣiṇāpatha. 남인도를 가리킨다. 천축(天竺)이란 인도를 가리키던 옛 말로서 이는 인더스 강의 옛 이름인 Sindhuḥ의 음사어이거나 혹은 Sindhu의 미얀마어인 Thindhu, Tindhu의 음역이라고도 한다. |
151) 열여덟 가지 바라문 성전(śāstra)을 말하며, 18명처(明處)라고도 한다. 인도의 정통 종교와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학술서를 열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Ŗg-veda(讚頌)․Yajur-veda(歌頌)․Sāma-veda(祭祀)․Atharva-veda(攘災)의 4베다, Śīkṣā(음운론)․Vyākaraṇa(어법)․Kalpa(제식)․Jyotiṣa(천문)․Chandas(詩)․Nirukta(語源)의 6론, Mimāṁsā(철학)․Nyāya(논리)․Itihāsaka(古事)․Sāṁkhya(數論)․Yoga(수습)․Dhanur-veda(弓杖)․Gandharva(음악)․Artha-śāstra(의약)의 8론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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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했다. |
“그대의 수명이 다하더라도 한 가지도 알기 어렵겠거늘 하물며 어찌 다 알겠는가?” |
이때 장조가 생각했다. |
‘지난 날 교만을 부리다가 누이에게 졌는데 지금 또한 이 여러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는구나.’ |
이 두 가지 일 때문에 스스로 맹세했다. |
“나는 맹세코 손톱을 깎지 않으리니, 반드시 열여덟 가지 경서를 다 읽으리라.” |
사람들은 긴 손톱을 보고 그를 장조(長爪) 범지라 부르게 되었다. |
이 사람은 갖가지 경서의 지혜의 힘으로써 종종의 옳은 법과 그른 법,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진실함과 진실치 않음, 있음과 없음 등을 따지고 판단하여 남의 논리를 타파했으니, 마치 큰 힘을 지닌 미친 코끼리가 부딪치고 차고 밟고 설치면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것 같았다. |
이와 같이 장조 범지가 토론의 힘으로 여러 논사들을 굴복시킨 뒤에 마가다국152)으로 돌아와 왕사성153)의 나라(那羅)154)라는 마을에 이르렀다. 그리고 본래 태어난 곳[本生處]으로 가서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
“내 누이가 낳은 자식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152) 범어로는 Magadha. 고대 인도 왕국으로 이른바 16대국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의 인도 비하르주 갠지스강 남부 지역을 가리킨다. 고오타마 부처님이 활약하던 B.C. 6세기 중엽 불교를 보호한 왕인 빔비사라왕 때 강대해졌다. B.C. 3자성년 알렉산더 대왕이 북서인도에 침입했을 때까지도 마가다왕국은 강대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후에 아소카는 남인도로 세력을 뻗고 대제국을 창설했는데, 그는 불교정신에 기반한 복지국가를 실현시켰다. 아소카왕의 사후 급격히 쇠락해 붕괴했다. |
153) 범어로는 Rājagṛha. |
154) 범어로는 Nāḷaka-grāma. 나란타사(那爛陀寺)가 세워졌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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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대답했다. |
“그대 누님의 아들은 여덟 살에 모든 경서를 다 읽은 뒤에 열여섯 살이 되자 토론으로써 모든 사람을 이겼소. 그때 마침 석씨 종족의 도인(道人)으로 성이 구담(瞿曇)155)인 분이 있어, 그의 제자가 되었소.” |
장조가 이 말을 듣자 교만한 생각을 내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
“내 누이의 아들이 그토록 총명하다면 그는 도대체 어떤 술책으로 속이고 꾀어서 머리를 깎아 제자로 삼았겠는가?” |
이렇게 말하고는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향했다. |
이때 사리불은 처음으로 계를 받은 지 보름째가 되었는데, 그는 부처님 곁에 서서 부채로 부처님을 부쳐드리고 있었다. |
장조 범지는 부처님을 뵙자 문안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아 이런 생각을 했다. |
‘온갖 이론은 모두 깨뜨릴 수 있다. 온갖 말은 모두 무너뜨릴 수 있다. 온갖 집착은 모두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것이 모든 법의 진실 된 모습이며, 어떤 것이 제일의제인가? 어떤 성품과 어떤 모습이라야 전도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이처럼 생각해 봐도 마치 대해 가운데에서 살피나 바닥을 찾을 수 없는 것 같이,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진실로 마음을 기울여 들어갈 만한 법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그는 어떠한 이론으로 누이의 아들을 제자로 삼았을까?’ |
이런 생각을 한 뒤에 부처님께 말했다. |
“구담이시여, 나는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장조야, 그대가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는데, 그렇다면 그 견해는 받아들이는가?” |
부처님께서 물으신 뜻은 ‘그대가 이미 사견(邪見)의 독약을 마셨기에 지금 그 독기를 뿜어 말하기를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했지만, 그렇다면 지금의 이러한 견해를 그대는 받아들이는가?’ 하신 것이다. |
155) 범어로는 Gauta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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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장조 범지는 마치 좋은 말이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얼른 깨닫고 곧 바른 길로 들어서는 것같이 그 역시 이와 같았으니,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채찍의 그림자에 마음이 영입하게 되어 당장에 교만함을 버리고 뉘우치면서 고개를 숙여 이렇게 생각하였다. |
‘부처님은 내게 두 개의 지는 문[負門]을 제시했다. 만일 내가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면, 이 지는 문은 거칠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알고서 [스스로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그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는가?] 하리라. 이는 망어를 눈앞에 드러냄이니 거칠게 지는 문으로, 여러 사람이 다 알게 된다. 두 번째 지는 문은 미세하니 나는 이것을 받아들여야겠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이렇게 생각하고는 부처님께 대답했다. |
“구담이시여, 나는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이 견해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
“그대가 온갖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견해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니, 그렇다면 아무것도 받아들이는 것이 없어서 범부와 다를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도도하게 교만을 부리는가?” |
이에 장조 범지는 대답하지 못한 채 스스로 졌음을 알고는 곧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156) 앞에 공경하는 마음과 믿는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다. |
‘내가 졌건만 세존(世尊)께서는 나의 진 곳을 드러내시거나 시비도 따지지 않으시고 전혀 개의치도 않으신다. 부처님의 마음은 부드러우시고 으뜸가게 청정하시니, 온갖 말과 논의의 근거가 멸하고 크고 깊은 법을 얻게 하신다. 이것이야말로 공경할 만하다. 마음이 청정하기가 으뜸이니,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시어 삿된 소견을 끊어 주는 까닭이다.’ |
그리고는 앉은 자리에서 객진[塵]157)을 여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에 대하여 법의 눈이 맑아졌다. |
156) 범어로는 sarvajñāna. |
157) 범어로는 āgantukopakleśa. 우연히 만나게 된 번뇌를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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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사리불이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아라한을 얻었으며, 이 장조 범지는 출가하여 사문158)이 되었으니, 큰 힘을 가진 아라한과를 얻었다. |
만일 이 장조 범지가 반야바라밀의 기분(氣分)인 네 구절을 여의고 제일의제와 상응하는 법을 듣지 못했더라면 조그마한 믿음도 얻지 못했을 것이거늘 하물며 출가해서 도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큰 논사들과 예리한 근을 지닌 이들을 인도하시려는 까닭에 이 『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셨다. |
또한 부처님들의 설법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사람의 마음이 제도할 만한가를 관찰하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법의 모양[相]을 관찰하는 것이니, 지금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의 실상을 말씀하시고자 하여 이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
「상불상품(相不相品)」159)에 설한 것처럼 모든 천자(天子)160)들이 부처님께 물었다. |
“이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습[相]161)을 짓는지요?” |
부처님께서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공(空)162)이 곧 모습이니, 모습도 없고 지음도 없는 모습․생멸이 없는 모습․지어감이 없는[無行] 모습․항상 나지 않아 성품과 같은 모습․적멸의 모습이니라.” |
또한 두 가지의 설법이 있으니, 첫째는 다투는 곳이요, 둘째는 다투지 않는 곳이다. 다투는 곳이란 다른 경에서 말씀하신 것들이니, 이제는 다툼이 없는 곳을 말하려는 까닭에 이 『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셨다. |
이 밖에 형상 있음과 형상 없음, 물건 있음과 물건 없음, 의지할 곳 있음과 의지할 곳 없음, 대할 것 있음과 대할 것 없음, 위 있음과 위없음, 세계․ 비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다. |
158) 범어로는 śramaṇa. 출가 수행자를 가리킨다. |
159) 범어로는 Lakṣanālakṣaṇa-parivarta. |
160) 범어로는 devatā. |
161) 범어로는 lakṣaṇa. |
162) 범어로는 sūnyat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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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大智度論) 7. 반야바라밀이란 공(空)이요, 적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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