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8. 반야바라밀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항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수선님 2018. 10. 21. 13:20

[문] 부처님은 마음이 대자대비하시니, 다만 다툼 없는 법만을 말씀하실 것이거늘 어찌하여 다투는 법까지 말씀하시는가?

 

[답] 다툼 없는 법은 모두가 형상 없고 항상 적멸하여서 말할 수 없거늘 이제 보시(布施) 등과 무상․고․공 등의 모든 법을 말하는 것은 모두가 적멸하여 희론이 없는 경지를 나타내기 위한 까닭에 말한 것이다.

 

예리한 근기를 지닌 이는 부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다툼을 일으키지 않거니와

둔한 이는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형상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하는 까닭에 다툼을 일으킨다.

 

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이 끝내 공한 경지인 까닭에 다툴 곳이 없다.

 

 

 

만일 끝내 공한 가운데서 다툼을 얻을 수 있다면 끝내 공하다 할 수 없다.

 

끝내 공하다 함[畢竟空]은 유무(有無)의 두 일이 모두 멸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경』을 다툼이 없는 곳이라 한다.

 

또한 다른 경에서 흔히 세 가지 법으로써 모든 법문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선문(善門)․불선문(不善門)․무기문(無記門)163)이다. 이제는 선문이 아닌 도리․불선문이 아닌 도리․무기문이 아닌 도리의 모든 법의 모습[法相]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밖에 배울 것 있는 이의 법[有學法]164)ㆍ배울 것 없는 이의 법[無學法]165)․배울 것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 이의 법[非學非無學法]166)․진리를 보아 끊는 법[見諦斷法]167)․사유로써 끊는 법[思惟斷法]168)․끊어지지 않는 법[無斷法]169)과 볼 수 있고 대함이 있는 것[可見有對]․볼 수 없으나 대함이 있는 것[不可見有對]․볼 수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 것[不可見無對]과 위․중간․아래의 법 등 크고 작은 무수한 법(法)170)이 있는데

  
  
163) 범어로는 avyākṛta. 아직 선(善)이나 악(惡)이 발현하지 않은 상태이다.
164) 범어로는 śaikṣadharma.
165) 범어로는 aśaikṣadharma.
166) 범어로는 naivāśaikṣadharma.
167) 범어로는 darśanaheya-dharma. 4제(諦)를 관찰해 번뇌를 끊는 단계를 말한다.
168) 범어로는 bhavanāheya-dharma. 견제단의 관법수행을 마친 뒤 다시 수습을 더해 사유의 의혹을 끊는 단계를 말한다.
169) 범어로는 aheya-dharma.
170) 범어로는 dharma. 어근 √dhṛ(떠받치다)에서 보듯이 dharma는 그 어떤 현상을 근본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경전 속에서 법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데, 대략 ‘가르침,’ ‘속성,’ ‘덕성,’ ‘특성,’ ‘사물,’ ‘의식의 대상’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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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세 등급의 법문도 이와 같다.

 

또한 다른 경에서 4념처(念處)171)를 말씀하여 성문의 법문에 따르게 하였는데, 여기에서 비구는 안몸[內身]의 서른여섯 가지 부정물[三十六物]172)을 관찰하여 탐욕의 병을 제거하며, 마찬가지로 밖의 몸과 안팎의 몸을 관찰한다.

 

이제는 4념처에서 다른 법문으로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려 하니, 이른바 보살이 안몸을 관찰하되 몸에 대해서 각관(覺觀)173)을 일으키지 않고 몸을 얻지 않으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밖의 몸과 안팎의 몸을 관찰함에도 몸에 대해서 각관을 내지 않고 몸을 얻지 않으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신념처(身念處)에서 몸을 관찰하되 몸의 각관[身覺觀]을 내지 않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나머지 세 가지 염처도 역시 그러하다.

 

4정근(正勤)․4여의족(如意足)․4선(禪)․4제(諦)174) 등의 갖가지 네 수로 이루어진 법문[四法門]도 그러하다.

또한 다른 경에서 부처님은 5중(衆)의 무상․고․공․무아상을 말씀하셨는데,
  
  
171) 범어로는 catvāri smṛtyupasthānāni.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에 염을 집중하는 관법이다. 4념주(念住)라고도 한다.
172) 인간에 몸에 있는 서른여섯 가지 부정한 것을 말한다.
173) 범어로는 각각 Vitarka, Vicāra이다. 각과 관은 선정 중에 나타나는 일종의 사유작용으로 선정이 깊어감과 더불어 소멸된다. 대표적인 선정 수습법인 4선(禪) 가운데 초선과 제2선은 각관이 소멸해 가는 순서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각은 어떤 대상이 문득 떠오르고 다시 이를 분별하는 사유작용으로 일종의 ‘거친 사유’이다. 한편 관은 이렇게 떠오른 사유작용이 점점 미세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곧 정신집중이 깊어지고 안정됨에 따라 생각이 사라져 가는 와중에 해당된다. 이 두 사유작용이 완전히 그친 경지가 다름 아닌 제4선의 사념청정(捨念淸淨:대상에 무관심해진 채 다만 의식만이 맑게 존재하는 상태)이라 하는 것이다.
174) 범어로는 cataḥ satya. 깨닫지 못한 생존은 고(苦)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리[苦諦]․고의 원인을 밝히는 진리[集諦]․고가 멸한 경지에 관한 진리[滅諦]․고의 소멸로 이르는 길에 관한 진리[道諦]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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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는 5중을 다른 법문으로 말씀하시기 위하여 『반아바라밀경』을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보살이 만일 색(色)175)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상․행․식176)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색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이는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상․행․식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하셨다.

 

이밖에 5수중(受衆)177)․5도(道)178) 등 갖가지 다섯 수로 된 법문들도 모두 이와 같으며, 그 밖의 6․7․8에서 무량한 법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다.

 

마하반야바라밀이 한량없고 끝이 없듯이 반야바라밀의 인연을 말하는 일 역시 한량없고 끝이 없다.

이 일은 광대하기에 이제 간략히 마하반야바라밀다의 인연법을 말하기를 마친다.
  
  
2. 초품(初品) 중 여시아문일시(如是我聞一時)를 풀이함
  
  [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論] [문] 모든 불경(佛經)에는 어찌하여 첫머리에 ‘이와 같이[如是]’라고 말하는가?
  [답]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다.
  
  
175) 범어로는 rūpa. 물질 일반 혹은 유정의 몸을 말한다. 어근√rūp(모양을 취하다)에서 만들어진 말로 ‘형태나 색깔을 갖춘 것’을 의미한다. 한편 √rū(무너지다)에서 파생되었다고 보아 ‘무너지는 존재,’ ‘변화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176) 수(受, vedanā)는 외부로부터 인상(印象)을 받아들이는 감수작용, 상(想, saṃjñā)은 마음으로 생각을 일으키는 표상작용, 행(行, saṃskāra)은 의지 혹은 잠재적 형성력, 식(識, vijñāna)은 인식 혹은 식별작용을 말한다.
177) 범어로는 pañca-upādānaskandha.
178) 범어로는 pañca-g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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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179)라고 함은 곧 믿음이니, 만약에 마음속에 믿음이 청정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이 없다면 불법에 들어갈 수가 없다. 믿지 않는 자는 ‘이 일은 이와 같지 않다’ 하니, 이는 믿지 않는 모습이거니와 믿는 이는 ‘이 일은 이와 같다’ 한다.

 

마치 쇠가죽이 부드러워지기 전에는 꺾어 구부릴 수 없는 것과 같나니, 믿음이 없는 사람 역시 그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쇠가죽이 이미 부드러워진 뒤에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나니, 믿음이 있는 사람 역시 그와 같다.

 

또한 경에서 믿음에 대해 ‘손과 같다’ 하셨는데, 마치 손이 있는 사람은 보배산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보물을 취하는 것과 같다. 믿음이 있는 사람 역시 이와 같아서 불법의 무루180)의 근(根)181)․역(力)182)․각도(覺道)183)․선정(禪定)184)이라는 보배산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취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이는 마치 손이 없는 것과 같다. 손이 없는 이는 보배산에 들어가도 아무것도 취할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믿음이 없는 이는 불법의 보배산에 들어가도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이 사람은 나의 큰 법의 바다에 들어와서 사문의 과위를 얻어 헛되지 않으리라. 머리 깎고 물든 가사185)를 입었지만 만약에 믿음이 없다면 이런 사람은 나의 법의 바다 속으로 들어올 수가 없느니라. 마치 죽은 나무가 꽃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하리니, 비록 머리를 깎고 물든 옷을 입고 갖가지 경전을 읽고 갖가지 진리를 묻거나 대답할 수 있어도 불법 가운데에서는 전혀 얻는 바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이와 같이”라는 구절[義]이 불법의 첫머리에 있나니, 좋은 믿음의 상징인 까닭이다.

  
  
179) 범어로는 evaṃ.
180) 범어로는 anāsrava.
181) 범어로는 indriya.
182) 범어로는 bala.
183) 범어로는 bodhimārga.
184) 범어로는 dhyāna.
185) 범어로는 kāṣāya. 가사의(袈裟衣)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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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불법은 깊고도 멀어서 부처님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나니,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비록 당장에 부처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믿음의 힘 때문에 불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범천왕(梵天王)이 부처님께 최초의 법륜을 굴려 주시기를 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염부제(閻浮提)에서 먼저 벗어나셨으니
  온갖 부정한 법이 많습니다.
  바라건대 감로186)의 문을 여시어
  청정한 도법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나의 법은 매우 어려워서 얻기 어려우나
  능히 모든 번뇌를 끊나니
  3유(有)187)에 애착심이 있는 이는
  이 법을 알지 못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 8. 반야바라밀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항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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