坐禪三昧經 좌선삼매경

[스크랩] 좌선삼매경 39. 위빠사나 - 법에 대한 마음챙김(법념처/法念處)

수선님 2018. 10. 28. 12:24

좌선삼매경 39. 위빠사나 - 법에 대한 마음챙김(법념처/法念處)

 

 

 

復次觀心爲屬誰. 觀想ㆍ 思惟ㆍ 念ㆍ 欲等, 諸心相應法不相應法, 諦觀其主, 主不可得. 何以故, 從因緣生故無常, 無常故苦, 苦故不自在, 不自在故無主, 無主故空. 前別觀身痛心法不可得, 今更總觀四念止中主不可得. 離此處求亦不可得. 若常不可得無常亦不可得. 若常應當常苦常樂, 亦不應忘, 若常有神者無殺惱罪亦無涅槃. 若身是神, 無常身滅, 神亦應滅亦無後世, 亦無罪福. 如是遍觀無主, 諸法皆空不自在. 因緣合故生, 因緣壞故滅, 如是緣合法. 是名法念止.

또한 마음은 어느 것에 속한다고 관하는가?

인식〔想〕ㆍ 사유(思惟)ㆍ 마음챙김〔念〕. 열의〔欲〕 등의 여러 가지 마음의 상응법(相應法)과 불상응법(不相應法)을 관하고, 그 주체를 잘 관하되, 주체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연 따라 생기기 때문에 무상이며, 무상이기 때문에 괴로움이고, 괴로움이기 때문에 자재(自在)하지 못하며,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체가 없고, 주체가 없기 때문에 공이다.

 

앞에서는 몸과 느낌과 마음의 법이 얻을 수 없는 것임을 특별히 관하였다.


이제 다시 사념지(四念止) 중에서 주체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총체적으로 관하며, 이곳을 떠나서 찾아도 역시 얻을 수 없다. 만일 항상함〔常〕이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무상도 역시 얻을 수 없다.

 

만일 항상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항상 괴롭고 항상 즐거우며, 또한 마땅히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항상 정신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살뇌죄(殺惱罪)도 없고 또한 열반도 없다.

만일 육신이 바로 정신이라면 무상한 몸이 없어지면 정신도 역시 없어져야 하며, 또한 후세도 없고 죄와 복도 없다.

 

이와 같이 두루 주체가 없음을 관해야 하며, 일체의 법은 모두가 공이며 자재하지 않다.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생기고 인연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없어진다.

 

이처럼 인연이 화합하여 법(法)이 된다. 이것을 법념지(法念止)라고 한다.

若行者, 得法念止, 厭世間空ㆍ 老ㆍ 病ㆍ 死法, 都無少許常樂我淨. 我於此空法復何所求. 應當入涅槃最善法中住. 建精進力得深舍摩陀故〈深舍摩陀者 住心一處名也 此土無是名〉, 是時得深舍摩陀住第四法念止中. 觀諸法相皆苦無樂, 無樂是實餘者妄語. 苦因愛等諸煩惱及業. 是非天非時非塵等種種妄語中生, 是煩惱及業出生此苦. 是苦入涅槃時一切滅盡. 非色無色界及世界始〈外道謂一切有法之初 名爲世界始 外道 謂涅槃也 以此有始 能化作萬物 卽名造化也〉 等種種妄語, 能滅此苦. 正見等八直36)是涅槃道. 非餘外道苦行種種空持戒ㆍ 空禪定ㆍ 空智慧37). 何以故, 佛法中戒定慧三法合行能入涅槃. 譬如人立平地, 持好弓箭能射殺怨賊, 三法合行亦如是. 戒爲平地, 禪定爲快弓, 智慧爲利箭, 三事備足能殺煩惱賊. 以是故外道輩不得涅槃.

만일 수행자가 법념지(法念止)를 얻는다면, 세간의 공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법을 싫어하며, 모든 것은 조금도 상락아정(常樂我定)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공한 법에서 다시 무엇을 찾을 것인가?

 

마땅히 열반의 최선법(最善法) 가운데 들어가서 머물러야 한다.

정진의 힘을 내세워 깊은 사마타(舍摩陀)38)를 얻으며(사마타라는 것은 마음이 한곳에 깊이 머무는 것을 말한다. 이 땅에서는 적절히 표현할 이름이 없다.), 이때 깊은 사마타를 얻어서 제사(第四)의 법념지 속에 머문다.


일체 모든 존재〔諸法〕의 모습을 관하건대 모든 것이 괴롭고, 즐거움이 없으며, 즐거움 없는 것이 진실이며, 나머지는 거짓말이다. 괴로움은 애착 등의 여러 가지 번뇌와 업에서 연유한다.

 

이것은 하늘이 내린 것도 아니며 시간도 아니고 티끌 등의 가지가지 허망한 말 속에서 생기지는 않는다.

이 번뇌와 업(業)이 이 괴로움을 발생시킨다.

 

이 괴로움은 열반에 들어갔을 때 일체가 남김없이 소멸한다.

색계ㆍ 무색계와 세계시(世界始)〔외도는 일체 유위법의 처음을 세계시라 하며, 열반이라 말한다.

 

이 처음이 있다는 것이 만물을 교화하므로 곧 조화(造化)라고 말한다.〕 등의 여러 가지 허망한 말로는 능히 이러한 괴로움을 소멸할 수 없다.

정견(正見) 등의 팔정도가 열반의 길이다. 나머지 외도의 고행이나 가지가지 공지계(空持戒)ㆍ 공선정(空禪定)ㆍ 공지혜(空智慧)는 열반의 길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법(佛法) 가운데에 계(戒)ㆍ 정(定)ㆍ 혜(慧) 세 가지 법이 종합적으로 행해져야 열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이 평지에 서서 좋은 활과 화살을 가져야 원수인 적을 사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세 가지 법이 종합되어 행해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계율을 평지로 삼고, 선정을 훌륭한 활〔快弓〕로 삼으며, 지혜를 예리한 화살로 삼아야 하며, 세 가지 일이 구비되어야 능히 번뇌의 적을 죽일 수 있다. 그러므로 외도의 무리는 열반을 얻을 수 없다.   

 

 

 

출처 : 무인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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