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바람결에 구름 모일지. 어느 구름결에 비 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중생들의 살림살이는 모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평소 그저 평범한 수행승으로 살아가길 소원하고 있다. 특별나게 경전을 잘 알아서 강사도 아니고 참선을 골똘하게 하여 선사도 아니고 또 계율에 밝아서 율사도 아닌 그저 스님이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사미시절 불교전문강원에서 경전을 인연짓고 보니 부처님 말씀에 경 율 론 삼장이라고 배웠는데 강원이란 곳에서는 경만 가르치고 율을 가르치지 않아 그것도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가야산 해인사를 찾아가 어느 스님께 이야기하여 율장을 보게 되었다.
그해 겨울, 율장을 배워야 하는데 책이 없으므로 백련암 성철스님의 장경각에 깊이 잠든 속장경 속의 율부를 빌려오게 되었다. 그것을 매일 베껴쓰는 일이 일과의 대부분이었다.
그때 <범망경>을 접하였다. <범망경>의 갖추어진 이름은 <불설범망경보살심지계품>이다. 범망경을 일타스님께 강의 받았다. 그리고는 접어두었다. 그게 30여년전 일이다. 그런데 저지난해 해인강원 강주스님이 학인들을 위하여 특강을 해 달라기에 그저 인사말인 줄 알았는데 날짜가 잡혔다고 다시 연락이 와서 큰일났다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뒤적이던 중 우연찮게 <범망경>에 관한 좋은 자료를 발견하였다. 여지껏 우리나라 스님들이 <범망경>에 관하여 말씀이나 저술할 때 중국 스님네의 저서를 많이 의지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원효스님 <범망경보살계본사기>, 태현스님 <범망경고적기>, 의적스님 <범망경계본소>, 승장스님 <범망경술기>를 구하게 되어 그때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태현스님의 <범망경고적기>는 대만, 홍콩, 중국에서는 단행본으로 나와 읽혀지고 있다.
<범망경>은 대승불자로서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지니고 지켜야 할 계목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특히 열가지 무거운 죄를 범하지 말라는 십중대계는 불교윤리의 대표적인 계율로서 보살대승의 대계를 밝히고 있다. 십중대계란 첫째 살생하지 말라, 둘째 주지 않는 것은 훔치지 말라, 셋째 음행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 다섯째 술을 마시거나 팔지 말라 등의 기본적인 오계와 함께 여섯째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일곱째 자기를 높이거나 다른 사람을 헐뜯지 말라, 여덟째 자기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 아홉째 상대방의 참회를 성내지 말고 잘 받아주라, 열번째 불법승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등이다. <범망경>에서는 이 십중대계야 말로 깨달음으로 향하는 확실한 지표임을 설하고 있다. 출가·재가자의 구분을 떠나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할 금언이 아닐 수 없다.
흔히 계율을 지니면 살아가기 힘들고 우리네 생활을 얽맨다고 잘못 아는 이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계율은 어두운 마음에서 밝은 마음으로 가는 좋은 사닥다리이다. 계율을 가지므로 불자가 되고 또 크나큰 자유와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범망경>에도 ‘마음을 가진 일체 중생은 불계(佛戒)에 섭해 있으므로 계를 받은 중생은 부처의 지위에 들어가 대각을 이룰 수 있나니 대중들은 모두 다 공경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나의 계법을 들으라’고 하였다.
불자의 큰 소원은 보리를 이루는 일이다. 부처님의 말씀따라 큰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근본을 만드는 일은 불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보살계본 귀경삼보에 보면 ‘계(戒)는 밝은 등불과 같아서 능히 무명장야(無明長夜)의 어두움을 없애며, 계는 보배 거울과 같아서 법의 실상을 비추어 다하며, 또한 계는 마니주와 같아서 물건을 내려 빈궁을 구제하느니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은 인간의 근본 무명에서 속히 벗어나 크나큰 진리를 체득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키기 어렵다는 핑계를 의지한다. 중생은 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어렵겠지만 그러나 끝내 우리들에게 안락을 가져다주는 대승보살계법이야말로 부처님 자비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일체중생 모두에게 적응되며 설령 지금 다 지키지 못하더라도 지키려는 노력이 바로 보리로 나아가는 좋은 씨앗임을 명심해 <범망경>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성우/파계사 영산율원 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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