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연법은 참으로 묘하고 신기해서 중생의 마음으로서는 헤아리기가 쉽지않다. 나는 일제시대 대대로 불교를 믿어온 농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수덕사에 불공하러 가실때마다 어린 나를 데리고 가셨다. 병약한 내가 조금이라도 더 부처님을 친견하고 기도공덕을 쌓으라는 바람이셨던것 같다. 신심 깊은 부친의 영향으로 나는 1955년 부친의 생일불공에 따라갔다가 출가했다. 내가 최초로 읽은 불서는 보조스님의 <수심결(修心訣)>이다. 강원에 가기전, 수덕사에서 한 철 선방에서 지내던 수좌 한 분이 한문으로 된 다 떨어진 책 한 권을 두고 가신 덕택에 접할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강원에 가서야 경전을 접할 수 있었다. 1장부터 12장까지 문수 보현 보안 금강장 미륵 청정혜 위덕자재 변음 정제업장 보각 원각 현선수 보살들이 출현한다. 내 몸의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집착, 어떤 법을 얻은 바가 있노라고 생각하는 집착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하게 해준다. 심성이란 허공과 같아서 삼라만상은 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차별 또한 없다. 중생이 바라보는 세계는 차별과 대립의 세계이다. 그러나 원각에서 관조된 세계는 평등부동(平等不動)이다. 부처님은 바로 이 청정원각으로 무명을 단절하신 도인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인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무엇인가 목표를 찾아 헤맨다. 이 과정에서 몸을 이루는 지수화풍 사대를 본신으로 착각하고 육신의 그림자를 본성인 양 집착한다. 부처님은 바로 이 환상을 깨뜨리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설정/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삼라만상의 생성소멸이 모두가 인연소치속에서 천태만상의 변화를 일으킨다.
사람의 성장단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책과 사람이라 한다. 특히 한참 배움이 필요한 어린 시절에는 책이 가장 많은 영향을 준다. 그리고 학창시절 또한 그사람의 격을 형성하는 직접적인 시기이다.
사미시절 수덕사는 벽초스님께서 주지이셨는데 가풍을 따르는데 엄격하신 어른이셔서 불립문자 견성성불(不立文字 見性成佛)만을 가르쳐 책을 본다는 것은 엄두도 못냈다.
학창시절인 해인사 강원 사교과때 배운 <원각경(圓覺經)>이었다. 당시 강당에서 수업받았는데 <원각경>에 나타난 12보살들과 문답하듯 몰입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각각의 보살들과 문답을 통해 대원각의 묘리와 그 관행을 설하신 내용은 성불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내게는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이정표를 만난 것과 같은 감동과 환희심 그 자체였다. <원각경>의 원래 이름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이다. 크고 방정하고 광대한 내용을 가진 원각을 가르침에 모든 수다라 중에서 으뜸이 되는 경이라는 뜻이다. 전체 1권이 12장으로 짜여졌으며, 각 장마다 보살들이 부처님과 대화한다.
가장 먼저 나타난 문수보살장에서는 누구나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원각의 자리를 밝히기만 하면 생사가 곧 열반이고 윤회가 곧 해탈임을 가르치고 있다. 제2 보현보살장부터 제11 원각보살장까지는 원각을 닦고 증득하는데 필요한 실천에 대하여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제 12장에 출현한 현선수보살에게 부처님은 <원각경>을 수지하는 공덕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총 12장 가운데 나를 사로잡은 부분은 ‘보안장(普眼章)’이다. 일체 여래의 근본 인지(因地)는 청정원각을 원만히 비춤으로써 무명을 영원히 끊은 뒤에 불도를 이룬다는 첫째 문수장과, 중생의 근본적인 병폐인 무명은 실체가 없는 환(幻)과 같아 허망하다는 둘째 보현장에 입각한 구체적인 수행밥법을 제시한 내용이다.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머물러야합니까. 중생들이 깨닫지 못하거든 어떤 방편을 써야 두루 깨달을 수 있습니까. 또 무엇이 지혜로운 관찰입니까.”본래 망념이 없어 성불이라고 보는 것을 하나하나 실수행을 거쳐 부처님의 경지에 다다르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어려서 큰스님들께 들은 법문을 다시 확연히 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바르게 머물러 지혜롭게 생각하되 방편없는 방편을 써야 한다. 머물 곳은 계와 정이요, 생각할 것이란 지혜로운 관찰이다. 이것은 나의 수행생활을 일깨우며 탄탄한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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