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雲庵:1025~1102, 眞淨克文)스님이 동산(洞山)에 살때 어느 스님이 물었다.
“「화엄론」에 말하기를 ‘무명주지(無明住地) 번뇌로 제불의 부동지(不動智)를 이룰 수 있는데,
중생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그 지혜 자체는 성품도 의지할 것도 없는 까닭에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인연을 만나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선 무명주지 번뇌로 어떻게 제불의 부동지를 이룰 수 있는지, 그 이치가 매우 깊어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운암스님은 대답하였다.
“이는 가장 분명하여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때마침 동자 하나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운암스님이 그를 부르니, 동자가 머리를 돌리자 그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것이 부동지가 아닌가!”
이어 동자에게 물었다.
“어느 것이 너의 불성이냐?”
동자가 좌우를 돌아보다가 어리둥절하여 떠나가 버리니, 운암스님은 이어 말하였다.
“이것이 주지번뇌(主地煩惱)가 아닌가! 만일 이 이치를 깨닫는다면 당장 성불할 것이다.”
언젠가는 강사(講師)에게 물었다.
“불이 일어나 산하대지가 모두 타버리면 세상이 텅텅 빈다고 하는데 정말인가?”
“경문에 분명히 있는데 옳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 많은 잿덩이를 어디다 둔단 말인가?”
강사가 혓바닥을 쭈욱 내밀며 헛웃음을 치면서 말하였다.
“모르겠읍니다!”
그러자 운암스님 또한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가 강론하는 것은 종이 위에 있는 말일 뿐이다.”
이렇듯 그는 막힘 없는 논변으로 설법하기를 좋아하여 대답을 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뛰어나고 질문을 하면 학자들이 기가 죽었다.
그것은 스승에게 배울 것 없는 본래 지혜[無師自然智]이므로 보통사람의 지혜와는 비할 바 아니었으니 참으로 당대의 법을 베푸는 공덕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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