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스크랩] 17. 雜阿含經(잡아함경)

수선님 2018. 11. 18. 12:43


나는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주로 공부해 왔다.

 

하지만, <잡아함경>을 비롯한 초기 불교의 경전들이 우리나라 불교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 경전을 접하게 됐다.
 
아함부 경전의 하나인 <잡아함경>은 단편의 경전 1362경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경전속에 드러난 석가모니 부처님의 실제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는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우상화하는 일단의 잘못된 경향을 불식시킬 수 있으며, 그 가르침도 관념적 불교이해에만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천적 방향을 제시해 준다.
 
<잡아함경>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새로움 중 하나는 비유에 관한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을 설명하기 위해 들고 있는 비유들은 단순한 수사학적 비유가 아니라 실상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지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어떤 이론적인 설명이나 논리적인 설득보다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예를 들면 오온(五蘊)을 설명하면서 부처님은 바닷가에 밀려든 ‘물거품 산’에 뛰어든 원숭이를 비유로 들고 있다. 실체가 없는 오온의 허망함을 ‘물거품 산’에 비유한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오온의 허망함을 꿰뚫어 보는 ‘눈’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온을 물거품처럼 볼 줄 아는 ‘눈’이야말로 우리가 비유를 통해서 얻어야 할 실상의 지혜인 것이다.
 
이 경의 197에서는 대상에 유인되는 우리의 감각기관을 ‘눈이 불타고 있다. 코가 불타고 있다’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체가 욕망으로 ‘불타고 있다’는 이 가르침에서도 역시 욕망의 불을 ‘보는’ 부처님의 눈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눈은 인간의 육안이 아닌 지혜의 눈이다. 따라서 경전을 읽는 우리는 설사 우리가 갖고 있는 이해력의 정도에 따라서 문화적 차이는 있을지라도, 경문 구석구석에서 사물의 실상을 통찰하는 부처님의 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잡아함경>에 나타나고 있는 교설은 삶과 생명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깊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세계관이나 후기 대승불교와도 관련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해준다. <잡아함경> 371에 보면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법문이 나온다.

 

“네가지 먹이가 중생을 기른다. 삼켜 먹이, 닿아 먹이, 생각 먹이, 마음 먹이의 네가지이다”

 

이 네가지 유형은 모든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을 말하고 있다.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을 이렇게 분류하는 것은 생명의 실상을 통찰한 불교만의 독자적인 분류법으로서 현대의 어떤 학문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이 네가지 유형은 불교의 세계관인 삼계(三界)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즉 ‘삼켜먹이’는 우리들 입으로 들어가는 거친 음식물을 먹는 것인데, 사바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반드시 거친 음식물을 먹어야만 육체를 가진 생을 영위할 수 있다. ‘닿아 먹이’는 옷이나 향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을 말하는데, 이처럼 육체를 갖진 않지만 향이나 부드러운 촉감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욕계에 살고 있다. ‘생각먹이’는 온갖 인상과 기억을 통해 말하고 이런저런 것에 대해 사량(思量)하는 것인데, 이 생명들은 육체와 촉각을 벗어나 있지만 의사와 생각으로만 살아가는 중생이다. ‘마음먹이’는 식(識)으로 지각하면서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예컨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와 같은 천상계의 중생은 모든 생의 활동을 식(識)으로만 영위한다.
 
이처럼 궁극적으로 이 네가지 유형은 제각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모두 우리 마음속에서 유전하고 환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거친 먹이로부터 미세한 먹이로 가고 미세한 먹이에서 거친 먹이로 가는 윤회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처럼 거친 먹이의 욕계로부터 미세한 먹이의 무색계까지 이르는 상호 과정은 식(識)의 전변과정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대승불교의 유식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방법에서도 거친 데서 부터 미세한 데로 들어가는 점층적인 수행법과 선불교처럼 미세한 식(識), 즉 뿌리부터 뽑아버리는 경절문(經截門)의 수행법이 있을수 있으며, 이같은 수행법은 어느 것이 더 낫고 못한 것이 아니라 저마다 시대의 상황에 맞게 개발되어 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어떤 수행법이 맞을까? 이를 개발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부처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짊어진 책무가 아닐 수 없다. 
 

장순용/번역가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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