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의 새벽염불 소리를 듣고 뜻도 모른채 따라 하면서 성장하였다. 안지원/서울 산업대 강사
그 염불이 <천수경>이라는 것도, 예수님 이름은 하나여서 편한데 부처님의 이름은 석가모니불에서 관음보살로 또 지장보살로 약사불로 아미타불로 왜 자꾸 바뀌는지의 궁금증을 풀게 된 것도 훗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다. 대학에 들어가 불교사상에 매료되어 불교관계 서적들을 많이 읽게 되었어도 여전히 신행생활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처님의 무량무변하신 자비만을 바라며 속인으로서의 하루하루에 바쁘기만 하였다 할까? 더욱이 불교의 차별적(?) 여성관에 대한 거부감으로 부처님께 선뜻 귀의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 당시 나의 심정이었다. 현실에서 여성이 차별받는 것도 서러운데 수행에 있어서 차별이 심하고 더욱이 성불도 할 수 없다면, 여성에게 불교가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러한 오만한 아상과 편벽된 지식에 집착하여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였던 것이다.
그 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어 한국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자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불교에 대해서 자연히 더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신라 왕실은 이를 적극 후원하여 진평왕은 자신의 이름을 석가모니불의 부친이었던 정반왕을 본따 정반으로 하고, 왕비는 마야로, 동생들도 정반왕의 동생들의 이름인 백반과 국반으로 이름지었다. 진평왕의 딸인 덕만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이다. 선덕(善德)이란 왕명도 역시 <대방등무상경>에서 석가모니불로부터 전륜성왕이 되리라 예언받았던 선덕바라문에서 비롯된 불교식 왕명이다.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으로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진덕여왕의 이름은 승만이었는데 이는 <승만경>의 주인공인 승만부인으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세분 뿐인 여왕 가운데 두분이 통치했던 시대가 어떤 시대보다도 불교와 밀접하였던 것이 흥미를 끌었다. 더욱이 남자들 못지 않게 훌륭히 나라를 다스린 두 여왕을 배출해 낸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적인 배경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관련된 경전들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 가운데 <승만경>은 불교를 조금 안다고 자부하고 있던 내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부처님을 여성차별주의자로 생각하면서 그 가르침을 철학적인 관점에서만 받아들이고 실제 생활에서는 전혀 실천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중요 경전은 아닐지라도 <승만경>은 우리 여성불자들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경전이다. 여성인 승만부인이 후대에 인간과 천상세계를 다스리는 자재왕이 될 뿐만 아니라 장차 보광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석가모니불께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처님의 설법으로 펼쳐지는 다른 경전들과는 달리 승만이라는 한 재가여인의 입을 통하여 대승의 진리가 설해지고 있다.
승만경의 본래 이름은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으로, 중생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여래장사상을 언급하고 있는 초기 대승경전이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진흥왕 때인 576년 전래되었으니 무려 1400여년 동안을 이 땅에서 중생을 제도하고 있는 경이다. 승만부인이 부처님께 수기를 받고 감격하여 부처님께 서약한 열가지 서원은 <승만경>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첫째, 마음으로도 받은 바 계를 범하지 않겠다. 둘째, 윗사람에게 교만하게 굴지 않겠다. 셋째, 성내지 않겠다. 넷째, 질투를 하지 않겠다. 다섯째,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인색한 마음을 가지지 않겠다. 여섯째, 재산을 내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겠다. 일곱째, 사섭법을 모든 중생을 위해 행하겠다. 여덟째, 고독한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병에 걸리거나 재난을 당하여 고통받는 사람을 끝까지 돌보겠다. 아홉째, 죄업을 쌓는 사람을 때에 따라 굴복시키고, 때에 따라 받아들여 구제하겠다. 열째, 정법을 받아들이고 결코 잊지않겠다.
이상의 열가지 서원을 1300년전의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은 승만부인을 귀감삼아 열심히 실천하려 노력했던 것이다. 이 열가지 서원은 현대에 있어서도 하나하나가 바로 지금 시작하여야 할 절실한 생활의 실천지표들이기도 하다.
비로소 나는 <승만경>을 통하여 열가지 서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함을 늘 반성하면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경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 四十二章經(사십이장경) (0) | 2018.11.25 |
---|---|
[스크랩] 21. 大品般若經(대품반야경) (0) | 2018.11.25 |
[스크랩] 19. 那先比丘經(나선비구경-밀린다왕문경) (0) | 2018.11.18 |
[스크랩] 18. 盂蘭盆經(우란분경) (0) | 2018.11.18 |
[스크랩] 17. 雜阿含經(잡아함경) (0) | 2018.11.18 |